▲ 민주노총 주최로 29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비정규직 정책토론회에서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원장이 발제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정부가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의 입법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일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기간제 근로계약 체결이 가능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해 기간제 남용을 방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민주노총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저임금·고용불안·차별해소와 정규직 전환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주제로 비정규직 종합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기간제 쪼개기 계약' 관행화 … 사용기간 연장 무의미

발제자로 나선 이창근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100만 해고 대란설’을 유포하며 기간제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의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개정을 추진했던 고용노동부가 최근 규제완화 차원에서 또다시 기간제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기간제법이 갖고 있는 최소한의 입법취지조차 무력화하는 주장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기간제법 제정 당시 노동계는 "합리적인 사유가 있을 때만 기간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간제 사용사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간제법에는 2년이라는 기간 안에서는 기간제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됐다. 당시 정부는 2년 뒤에도 지속될 필요가 있는 업무라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이 필요한 업무로 간주해야 한다는 이유로 노동계의 사용사유 제한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이창근 실장은 “기간제 기간 제한을 3년으로 늘리자는 정부의 주장은 결국 기업의 정규직 전환 부담을 줄여 주고 더 오래 비정규직을 쓸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이 해당 노동자의 고용불안을 해소해 줄 수 있다는 정부 주장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이 실장은 “현행 기간제법하에서 벌어지고 있는 관행처럼 사용기간이 3년으로 연장되더라도 3년이 되는 시점에 해고를 하고 다른 기간제 노동자로 교체하는 기업들의 관행을 방지할 수 없다”며 “기간제 노동자의 고용불안을 해소하려면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이 원칙임을 명확히 하고 일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기간제 근로계약이 가능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간제법상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기 위한 기업들의 편법적인 행태는 최근 벌어진 중소기업중앙회 비정규 노동자 자살사건에서도 확인된다. 중기중앙회는 ‘임시직 활용방안’이라는 내부문건을 통해 △계약직 근로자의 누적 근로계약 기간 2년 초과 불가 △동일인의 계속되는 근무기간 11개월 초과 불과 등의 내부지침을 각 부서에 하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근거해 중기중앙회는 대부분의 임시직을 상대로 1~11개월씩 ‘쪼개기 계약’을 했다.

기간제 계약해지 악용한 부당노동행위 기승

기간제법을 악용한 기업들의 기간제 활용 유형은 세 가지로 구분된다. 먼저 기존의 정규직을 기간제로 일괄 전환하는 경우다. 정규직 채용 우수기업으로 표창까지 받은 레이테크코리아는 지난해 5월 전 직원을 일괄 기간제로 변경하기 위해 근로계약서 갱신을 요구했다. 직원들이 노조를 결성하는 등 반발하자 회사는 직원들을 원거리 발령을 하는 등 노조탈퇴를 유도하기 위한 부당노동행위를 시도해 빈축을 샀다.

박주영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는 “전원 정규직인 사업장에서 직원을 기간제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최근 100~200인 규모의 중소사업장에서 두드러지고 있다”며 “공단의 간접고용화와 호출노동화 경향의 영향을 받은 사용자들이 기간제 전환을 시작으로 점진적으로 외주화를 추진하기 위한 시도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유형은 노조를 와해하기 위해 기간만료를 문제 삼아 해당 노동자를 해고하는 경우다. 현대제철 당진공장 비정규직의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제조업 사내하청 노동자 대부분은 간접고용과 기간제가 중첩된 고용형태로 일하고 있다. 원청과 도급계약을 맺은 사내하청 업체의 경우 2~3년 단위로 계약이 변경되거나, 몇몇 업체 간 통합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간제 고용이 일반화돼 있다. 2012년 현대제철 사내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해 해당 업체에 교섭을 요구하자, 사용자들은 교섭을 지연하며 시간을 끌었다. 업체들은 또 근로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지회간부들을 해고했다. 박 노무사는 “사내하청 비정규직의 경우 기간제 근로계약을 통한 부당노동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2년간 기간제를 사용할 수 있다는 법 조항을 악용해 수습 시용기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정규직 전환을 지연시키는 경우다. 버스업체들이 주로 이 방식을 활용했다. 과거 버스업체들은 3개월에서 6개월의 수습과정을 거친 버스기사를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이제는 수습시용기간을 2년까지 늘리는 방식으로 정규직 전환을 늦추고 있다. 노동자들은 임금·근로시간과 관련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고, 정식직원이 될 때까지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놓이게 된다.

박 노무사는 “기간제 사용기간이 3년으로 늘어난다고 해서 노동자들의 고용이 3년간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며 “3개월 또는 6개월 등 단기계약을 체결하면서 1~2년 내에 얼마든지 계약해지를 할 수 있고, 앞에서 살펴본 사례와 같이 불안정한 고용상태가 3년으로 길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간제 '해고제한 규정' 도입 시급

기간제 고용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해고제한 규정’ 도입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김선수 변호사(법무법인 시민)는 “기간제 문제의 본질은 노동법의 핵심인 해고제한 규정의 적용이 배제됨으로써 고용불안이 발생한다는 점이고, 이는 모든 비정규직 문제의 근원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기간제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차별, 이들에 대한 단결활동 제한이 고용불안에서 비롯되므로 기간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고제한 규정을 통해 고용안정을 도모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김 변호사는 “정부의 ‘기간제 고용안정 가이드라인’에 ‘상시·지속적 업무에 종사하는 경우 무기계약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사실에 비춰 봐도 정부 역시 상시·지속적 업무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있고, 따라서 상시·지속적 업무에 대한 무기계약 원칙과 기간제 사용제한 방식의 입법이 충분히 가능함을 알 수 있다”며 “상시·지속적 업무에 대한 규율방식과 어떤 업무가 해당하는지에 대한 해석이 문제로 제기될 수 있지만, 노동법의 ‘실질 중시 원칙’에 따라 해석하면 타당한 해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이어 사용기간 2년이 경과한 기간제의 정규직 전환을 규정한 현행 기간제법이 외주화의 확대라는 풍선효과를 낳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직접고용 원칙과 간접고용의 예외적 허용을 입법하는 방식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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