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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평전-어머니의 길 23] 노조 탄압에 치받친 분노, 집단 분신까지 고민하다

2014년 9월3일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영면한 지 3주기가 되는 날이다. 1970년 11월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는 어머니에게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 주세요”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소선 여사는 2011년 9월3일 목숨을 다할 때까지 아들의 유언을 지키는 데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매일노동뉴스는 이소선 여사 3주기를 맞아 <이소선 평전-어머니의 길>을 연재한다. 저자 민종덕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는 1990년 이소선 여사 회갑 즈음에 구술을 받아 평전을 집필했다. 당시 1979년의 삶까지 담았는데, 이번에 그 이후 삶을 보강할 예정이다. 평전은 오마이뉴스와 동시에 연재된다.<편집자>



사용주들과 정부당국은 노동자들의 노조가입을 방해하기 위해 다양한 악선전을 퍼뜨렸다.

"너희들이 노조에 가입하면 첫째 조합비를 내야 된다. 그러면 갑근세까지 내야 되니 너희들 손해다."

"노조에 가입하면 세금 물고 너도나도 다 죽는다."

그들은 엉뚱한 이유를 들어 노동자들을 방해하고 또 노조에 가입하면 해고시켜 버리겠다고 위협했다. 업주들의 협박은 집요했다. 그 결과 조합원 숫자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조합 재정도 바닥이 났다. 간부들은 매일같이 굶주림 속에서 사업장을 방문해 조합 가입을 권유하느라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그래도 길이 있겠지. 끝까지 버텨야지. 제 몸을 불살라 죽은 태일이가 오죽했으면 죽음이라는 방법을 선택했겠는가.’

이소선이나 전태일의 친구들은 죽은 전태일을 생각해서 고통 속에서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참고 견뎠다.

1971년 12월21일 노동자들의 노조가입을 권유하기 위해 현수막을 크게 만들어서 평화시장 입구에 높이 달았다.

"노동조건 개선 위해 노동조합 가입하자."

"분신으로 쌓은 터전 단결하여 주권 찾자."

글씨는 눈에 잘 띄도록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큼지막하게 썼다.

“현수막도 못 거는 노조 해서 뭐해”

그날 밤이었다. 경찰관 몇 명이 노조사무실에 찾아왔다. 현수막 무단설치는 광고물 단속법 위반이므로 뜯어내라는 것이다. 노조 간부들은 노조활동이기 때문에 철거할 수 없다고 버텼다.

“저렇게 빨간 글씨로 근로자들을 선동하는 플래카드를 거는 것은 이북 놈들이나 하는 짓으로 완전히 불법이다. 빨갱이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노동조합을 할 수 없으니 콩밥을 먹을 줄 알아!”

경찰들은 위압적으로 현수막 철거를 요구했다.

“이 밤에 뜯을 수는 없으니 뜯더라도 내일 낮에 뜯겠소.”

노조 간부들이 이렇게 말하고, 정당한 노조활동을 방해하는 것에 항의했다. 그러나 경찰들은 간부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철거하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래 좋다. 이 더러운 놈들아! 내가 당장 뜯겠다. 우리가 죽어 줄 테니, 어디 너희 놈들끼리 잘살아 봐라!”

“현수막 하나 못 달게 하는 노조 해서 뭐해.”

이소선은 열불이 나서 분노를 폭발시켰다. 그리고 그 밤중에 전신주에 올라가서 단숨에 현수막을 뜯어 버렸다.

“에이 시팔, 다 죽어 버리자! 현수막 하나 못 달게 하는 노조 해서 무엇해!”

사무실에 있던 간부 10여명이 화를 참지 못하고 노조결성을 축하하기 위해 답지한 수많은 화분과 서류철 등 사무실 집기를 닥치는 대로 내던졌다. 삽시간에 사무실 안은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최종인은 얼굴빛이 시퍼래져서 경찰 놈의 새끼들 다 죽인다고 설쳐댔다. 간부들이 의자며 화분들을 사무실 계단이며 창밖에 내던지고 경찰들과 싸움을 벌였다. 이소선은 전신주에서 내려와 걷어 낸 현수막을 들고 경찰의 모가지에 감았다.

그리고 그 현수막을 잡고 나뒹굴었다. 현수막으로 있는 힘을 다해 경찰의 목을 졸랐다. 경찰은 이소선의 손목을 잡고 떠밀었다. 이소선은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경찰의 잠바와 이소선의 옷에는 채 마르지 않은 페인트가 덕지덕지 엉겨 붙어 있었다. 사무실은 엉망이 돼 버렸다. 이렇게 한바탕 싸움 끝에 경찰이 물러갔다. 경찰이 물러간 뒤 한밤중에 회의를 열었다.

“현수막도 못 걸게 하고, 콩밥 먹이겠다고 하는데, 형무소 가는 것도 무섭지 않다. 이렇게 당하고만 있으면 태일이하고 한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다 죽어 버리자!”

저마다 분을 삭이지 못하고 감정이 폭발했다. 씨근덕거리며 누군가 말을 토해 내자 여기저기서 그 길밖에 없다고 큰소리로 외쳤다. 모두가 똑같은 심정이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한 사람이 부리나케 밖으로 나가더니 석유 두 말을 사 가지고 왔다.

“자, 석유를 사 왔으니 우리도 태일이처럼 분신을 하든지, 여기서 전부 다 불을 붙이고 창밖으로 뛰어내리든지 합시다!”

석유통을 열고 곧장 기름을 끼얹을 듯했다. 누가 나서 말린다 해도 전혀 통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때 누군가 한마디 했다.

“잠깐만, 우리가 매일 굶다시피 하다가 이제 죽기로 했으니 기왕에 죽는 것 먹는 것이나 한번 실컷 배 터지게 먹어 보고 죽읍시다. 먹다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고 했으니.”

늘 고픈 배를 안고 살아와서 한이 맺혀 있었나 보다. 죽음을 각오한 그 순간에 오죽했으면 먹을 것을 찾았을까. 또 한 사람이 우당탕거리며 갈비탕을 시키러 계단을 내려갔다.

“여태껏 헛발질했으니 차라리 다 죽자”

그때 마침 서울대 대학원생인 이영희가 사무실에 와 있었다. 이영희는 전태일 사건이 터지자 평화시장에 관심을 가지고 자주 들러서 간부들을 격려해 줬다. 이런 난리가 터졌으니 그냥 갈 수도 없고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이소선은 하도 답답해서 이영희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어머니, 이렇게 죽으면 어떻게 합니까. 태일이의 죽음은 어떻게 하고요? 아무리 어려워도 살아 있어야지 태일이 뜻을 이룰 수가 있지요. 이렇게 죽는다면 뭐 할라고 노조를 만들었습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서 열심히 해야지요.”

노조 간부들은 이영희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모두가 살기등등해서 눈빛만 불그죽죽한 형편이었다.

이들은 화분과 사무실 집기로 바리케이드를 쳤다. 12명이 모두 집단 분신을 하기로 결정하고 온몸에 석유를 끼얹었다. 몇몇 간부들은 ‘허수아비 근로기준법’이라고 혈서를 써서 벽에 붙였다. 간부들은 그 경황에서도 전태일을 추도하는 의식을 갖기로 했다. 이들이 추도식을 하고 있는데 기동경찰이 들이닥쳐 바리케이드를 뛰어넘어 들어왔다. 경찰은 분신을 중지할 것을 요구해 왔다.

“야, 이 개자식들아! 물러가! 물러가지 않으면 불을 싸질러 버릴 테다!”

간부들은 라이터를 꺼내들고 위협했다. 경찰은 간부들이 석유를 끼얹고 있는 것을 보고 순순히 물러섰다.

이들은 구호를 외치면서 연좌농성을 시작했다.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밤 11시30분쯤 갑자기 유리창이 사방에서 깨졌다. 소방호스가 사무실 안으로 들이닥치더니 거센 물줄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간부들은 물줄기에 얼굴을 맞고 퍽퍽 쓰러져 나갔다. 마스크를 쓰고 군복을 입은 경찰 기동대들이 군홧발을 앞세워 침입하더니 이소선의 팔을 꺾었다. 나머지 간부들도 물과 기름이 범벅된 처참한 몰골로 순식간에 잡혔다. 모두들 배가 고파 기진맥진한 상태니 제대로 저항할 수도 없었다.

이들은 싸움도 해 보지 못하고 몽땅 체포됐다. 경찰은 이들을 트럭에 집어던졌다. 까만 천막이 드리워진 경찰 트럭에 실린 이들은 어두워서 서로의 얼굴조차 바라볼 수가 없었다. 간간이 신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12월 한겨울, 물에 흠뻑 젖은 이들은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보다 차가운 현실에 몸을 떨고 있었다.

이소선은 탈진한 상태에서 경찰서 의자에 늘어져 있었다. 그의 옆구리에서 엉덩이 하나가 들썩거렸다. 이소선은 어둠을 가르고 손으로 더듬어 봤다. 경찰 하나가 전태일의 친구 머리를 다리 사이에 끼워 놓고 입을 막은 채 조이고 있는 것이다.

전태일의 친구는 입을 열지도 못하고 “음음”거리며 신음만 내뱉고 있었다. 이소선은 어둠 속에서 그 광경을 보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런 나쁜 놈들이 있나. 이소선은 허리를 폈다. 있는 힘을 다해 경찰의 다리를 물어뜯었다. 경찰은 “아악!”하고 비명을 지르더니 전태일의 친구를 조르고 있던 다리를 풀었다. 그때서야 전태일 친구는 목을 매만지며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한겨울 군홧발에 짓밟히고, 흠뻑 젖어 연행되다

중부경찰서에 연행된 뒤에도 이소선과 노조 간부들은 굴복하지 않고 구호를 외쳤다.

“노조활동 방해 말라!”

“근로조건 개선하라!”

이들은 보호실이나 유치장도 아닌, 문만 닫으면 깜깜한 방에 갇혔다. 경찰은 끼니때가 되면 밥을 시켜다 줬다.

“절대로 먹지 말라! 여기서 죽으면 저놈들 책임이 될 테니깐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된다!”

이소선은 간부들에게 “우리 모두 단식해서 죽자”고 소리쳤다. 경찰이 날라다 준 밥을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경찰은 밥을 먹든 안 먹든 끼니때면 밥을 가져왔다. 쟁반이 들어오면 이들은 계속해서 쌓아 뒀다. 그동안 워낙 굶주려서 밥을 옆에 놔두고 안 먹는다는 것은 굉장히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이들은 단식을 하면서 3일을 버텼다. 어떤 간부는 똥물을 쌀 정도였다. 곳곳에서 토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이영희는 이들과 달리 몇 차례 조사를 받았다.

“배후조종을 하지 않았느냐?”

“죽으라고 석유를 사 주지 않았느냐?”

경찰은 이영희를 추궁했다.

며칠 뒤 이영희의 형님 되는 분이 이영희를 면회했다. 이소선은 그 형님 되는 분을 만났다.

“죄송합니다. 이 선생은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공연히 우리 때문에 이영희 선생이 생고생을 하는군요. 참 죄송합니다.”

이소선은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어려운 때일수록 협심해서 잘 견뎌야지요.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동생 걱정일랑 마시고.”

이영희의 형님은 동생에 대해서는 걱정하는 눈빛도 없이 이들의 건강을 염려하고 격려의 말씀을 남기시고 돌아갔다.

‘세상에 저렇게 훌륭한 형도 있을까.’

이소선은 뒤돌아가는 그분을 보고 탄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영희는 이 사건 이후에도 청계노조와 노동운동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대학원 졸업 이후에는 한국노총에도 관계하고 크리스찬아카데미에도 근무하면서 노동문제에 관심을 보였다. 특히 조합 간부들이 노동법을 잘 모르는 데다 탄압이 가중돼 어찌할 바를 모를 때 많은 자문을 해 줬다.

노조 간부들은 무슨 일을 하다가 서로 의견이 맞지 않으면 싸움을 자주했다. 그럴 때면 이영희는 돈을 가져와서 간부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마련했다. 술자리가 무르익으면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 간부들을 부드럽게 결집시켜 줬다.

간부들 다툼 조율하는 이영희

한번은 간부들이 어떻게 심하게 싸우는지 이소선으로서는 도저히 말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서로 엉겨 붙어 주먹질과 발길질이 오가고 있었다. 노조 간부들은 한창 젊은 나이 때문인지 걸핏하면 싸움을 했다. 하지만 한바탕 싸우고 나서 일단 화해를 하면 언제 싸웠느냐는 듯이 금세 풀어졌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달랐다. 정도가 너무 심해 어떻게 해 볼 방도가 생각나지 않았다. 이소선은 고민을 하다가 저녁에 이영희를 찾아갔다.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다음날 이영희는 사무실에 오더니 간부들을 종로5가에 있는 홍어횟집으로 데리고 갔다. 방을 잡고 자리에 앉자마자 간부들은 어제 일로 또 싸우기 시작했다. 참 지긋지긋하게도 싸웠다. 이소선이 가만히 들어보니 “누가 이 선생님한테 일러바쳤느냐”는 것으로 싸우고 있었다. 서로 상대방을 의심해 가며 주먹질까지 오갈 판이었다.

“이 선생님! 바라만 보고 있지 말고 어서 말려 보세요.”

이소선은 걱정이 돼서 이영희에게 도움을 청했다.

“가만 내버려 두세요. 한바탕 신나게 싸우게. 하루 이틀 싸운 것도 아닌데, 음식값이야 어차피 낼 것이고 그릇값만 더 주면 될 테니까.”

이영희는 팔짱을 끼고 속 편하게 간부들이 싸우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음식을 담은 그릇이 날아가고 주먹질이 왔다 갔다 했다. 음식점 안이 난리가 났다. 종업원들이 오고 주인이 달려왔다.

“이 선생님, 어서 말리세요. 이러다 뭔 일 나겠어요.”

이소선은 조바심이 나서 어쩔 줄을 몰랐다.

“내버려 둬요. 실컷 싸우고 나면 그때는 슬슬 말리지요.”

이영희는 여전히 천하태평이었다. 이소선이 식당주인을 겨우 달래서 보내고 보니 술상이 엉망이 됐다. 싸움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그래, 다들 잘 싸웠는가?”

이영희는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보는 듯이 아쉬운 표정으로 웃었다. 간부들은 서로 노려보며 아직까지 씩씩거리고 있다.

“이 방에 있는 것은 나중에 계산하기로 하고 저 옆방에다 새로 한상 차려 주시오.”

이영희는 종업원을 부르더니 점잖게 주문했다.

“아니, 이렇게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 또 상을 차리라고요?”

종업원들은 어이가 없는지 화부터 냈다. 밥과 술을 먹으러 왔다가 상을 뒤엎으며 싸움만 했으니 화가 날만도 할 것이었다.

“미안해요. 여기 것은 내가 알아서 다 처리할 테니, 말한 대로 다시 상을 차려 주시오.”

이영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하자 간부들이 미안한지 슬금슬금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했다.

“한 사람도 나가면 안 돼! 그렇게 싸우고 어딜 내빼려고 그래!”

이소선은 꽁무니를 빼려는 간부들에게 소리쳤다.

옆방으로 자리를 옮기니 다시 번듯한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모두들 술상을 마주하고 둘러앉았다. 이영희는 간부들에게 일일이 술을 따라 줬다.

“이 사람들아, 태일이가 오죽했으면 죽었겠는가? 여러분들은 살아 있으니까 이 정도 어려움이 있다 해도 극복해 나가면서 잘해야지 태일이 보기에 부끄럽지 않아?”

이영희가 침착하게 타이르자 간부들은 서로 오해했다면서 악수를 주고받았다. 다시 잘해 나가자면서 굳은 악수를 나눴다. 그리고 술과 밥을 맛나게 먹었다. 이소선은 간부들이 악수를 나누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 끈끈하고 두터운 우정을 살갗으로 느낄 수 있었다. 죽은 태일이가 내려다보고 있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이영희는 이런 식으로 노조 간부들한테 애정 어린 도움을 많이 줬다.

민종덕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
<계속 이어짐>

편집부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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