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리후생성 금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하급심 법원의 판단이 엇갈리고 있다.

9일 노동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제42민사부(재판장 마용주)는 최근 교보생명보험 전현직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소송에서 “지급일 현재 재직하는 사원 중 근속기간이 6개월 이상인 자에게만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은 고정성이 결여돼 통상임금이 아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개인연금지원금과 교통지원금은 근로의 대가인 임금이라기보다는 각각 은혜적·실비변상적 성격에 가깝다”며 “이는 통상임금에도 평균임금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부활하는 임금이분설=서울중앙지법은 먼저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산입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지난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통상임금 판결의 법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른바 ‘재직자 요건’이 붙은 임금은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는 논리다. 최근 하급심 판례경향과 동일하다.

눈에 띄는 대목은 복리후생금품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이다. 서울중앙지법은 개인연금지원금에 대해 “회사측에 지급의무가 있는 금원이라기보다는 사원들의 복리후생을 위해 은혜적으로 지급하는 것으로 임금에 해당하지 않으며, 통상임금이나 평균임금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교통지원금에 대해서도 “영업활동 가능성이 있는 사원만을 지급대상으로 하고, 취약지역 근무자에게는 추가비용이 지원되는 등 개별근로자의 사정에 의해 지급 여부와 금액이 좌우되므로 근로의 대가인 임금이라기보다는 실비변상적 성격에 가깝다”며 “통상임금이나 평균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요컨대 정기상여금은 고정성 때문에 통상임금에서 제외되고, 복리후생금품은 그 자체를 임금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보다도 통상임금 범위를 좁게 해석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지급 직전 노사협의로 금액을 정하기로 한 김장보너스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하기로 한 명절상여금·휴가비·선물비·생일지원금·개인연금지원금·단체보험료 등에 대해 “고정성이 결여돼 통상임금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해당 금품의 임금성 그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통상임금의 요건인 고정성·정기성·일률성을 제대로 갖췄는지 다시 검토하라는 것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요지다.

그런데 서울중앙지법은 개인연금지원금이나 교통지원금이 통상임금으로서의 고정성을 갖췄는지 여부를 살피기도 전에, 해당 금품의 임금성 자체를 부정했다. 임금이 ‘근로의 대가(교환적 대가)’와 ‘근로자 지위를 가짐으로서 발생하는 금액(생활보장적 임금)’으로 양분된다고 본 임금이분설에 입각한 판결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95년 폐기한 임금이분설이 통상임금 하급심 판결에서 되살아난 셈이다.

◇통상임금 소송, 노동자 백전백패?=반면 서울남부지법 제13민사부(재판장 진창수)는 최근 한국공항 주식회사 전현직 근로자들이 “상여금과 개인연금보험료를 통상임금으로 인정해 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상여금과 개인연금보험료 모두 지급일 당시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되므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임금성 자체는 부정하지 않았지만, 재직자 요건으로 인해 통상임금의 고정성 요건이 부족하다고 봤다. 유사한 사건이지만 하급심 판결이 미묘하게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이거나 앞으로 진행될 통상임금 소송에서 "고정성 없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다", "고정성 없는 복리후생금품은 통상임금이 아니다", "고정성 여부는 따질 필요도 없이 복리후생금품은 임금(통상임금)이 아니다" 같은 판결이 뒤섞여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서울중앙지법과 서울남부지법의 판결처럼 어떤 법리를 적용하든지 간에 근로자들이 통상임금을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장진영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는 “하급심 법원이 이미 폐기된 임금이분설까지 끄집어내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보다도 보수적인 판결을 내리고 있다”며 “소송을 통해 권리를 구제받으려는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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