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노사의 싸움은 이제부터다. 지금까지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넣을지 말지’를 협의했지만, 앞으로는 통상임금 문제의 본질에 해당하는 노동시간단축과 이에 따른 생산성 향상이라는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노동자 고령화에 따른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 시행, 신입사원부터 다른 임금체계를 적용하는 이중임금제(two-tier wage system) 도입과 같은 매머드급 의제가 협상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도 점쳐진다.

◇현대차 계열사 노사, 통상임금 교섭 줄줄이 연기될 듯=현대차 노사는 지난 29일 밤 “통상임금 문제는 개별기업 차원이 아닌 산업 전체와 국가경제 측면을 고려해 거시적·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데 노사가 인식을 같이했다”며 “선진 임금체계 도입을 위한 임금체계 및 통상임금 개선위원회를 구성해 내년 3월31일까지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통상임금 확대 절대 불가"를 주장한 회사는 자존심을 지켰고, 현재 진행 중인 통상임금 소송의 결과를 낙관할 수 없는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시간을 벌었다.

모기업 노사가 통상임금에 대한 결론을 유보한 상황에서 현대차그룹 계열사 노사는 난감한 입장에 처했다. 예를 들어 기아자동차나 현대제철처럼 ‘통상임금 고정성’ 논란이 없는 회사라도, 모기업을 넘어서는 노사합의를 도출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임금교섭을 조기에 마무리한 A계열사 노사는 “당사와 상여금 등 임금제도를 같이 하는 그룹사가 합의하는 경우 그에 준하는 합의결과(적용시점 포함)를 도출해 적용한다”는 내용의 단서조항을 남겼다. 현대차 노사의 통상임금 협상 결과가 계열사에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현대차 임금체계개선위, 무엇을 논의하나=관건은 현대차 노사가 임금체계개선위에서 무엇을 논의할 것이냐다. 노사가 임금협상에서 정년연장과 2016년부터 잔업 없는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8시간+8시간), 물량확보·고용안정·일자리 창출을 위한 미래발전전략위원회 설치에 합의한 만큼 임금체계개선위에서는 보다 포괄적이고 확장적인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민주노총을 대표하는 대공장 사업장인 현대차에서 노사가 주도하는 임금체계 개편논의가 본격화하는 것이다. 현재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의 임금체계 개편 논의보다 한 템포 빠른 것이다.

무엇을 논의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노사의 생각이 다르다. 회사측 관계자는 “지금처럼 임금이 무한정 오르는 연공급 체계가 계속되면 회사는 경쟁력 약화를, 노조는 고용불안을 걱정해야 한다”며 “윈윈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본급 확대와 제 수당 통·폐합을 통해 임금구성을 단순화하고, 노동시간단축(8시간+8시간 도입)에 따른 생산성 향상 방안을 종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장기적으로는 표준 맨아워(Man Hour·1인 1시간의 작업분량) 도입 등으로 노동강도의 균일화를 이뤄 ‘덜 일하고 많이 받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곽상신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더라도 잔업이 없는 '8시간+8시간' 체계에서는 임금인상의 파급력이 생각만큼 크지 않다"며 "오히려 노사는 삶의 질 향상과 생산성 확대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할 수 있는 임금체계 개편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임금피크제도 다루나=임금피크제가 현대차 협상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도 있다. 베이비붐 세대를 대표하는 ‘58년 개띠’ 노동자 1천5명이 4년 뒤 정년퇴임하는 등 앞으로 20년간 3만2천520명(연평균 1천626명)의 노동자가 정년을 맞기 때문이다. 회사는 숙련인력 확보가, 노동자는 고용연장이 눈앞의 과제로 떠올랐다. 현대차 안팎에서 “임금피크제 도입시기가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신입사원부터 다른 임금체계를 적용하는 이중임금제 논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노사의 입장이 다소 엇갈린다.

회사측은 “노조가 연공급제에 따른 기득권을 고수한다면, 회사는 새로 입사하는 직원에게 차등적인 임금을 적용해서라도 인건비 부담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반면 지부는 “현재 신입사원 연봉에서 통상임금 비중은 절반을 겨우 넘는 수준이며 나머지는 변동급이거나 일시급·성과금”이라며 “숙련도나 기여도와 무관하게 노사협상의 대가로 동등하게 지급돼 온 일시급이나 성과금을 합리적으로 조정한다면 회사도 통상임금 확대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접근방식은 다르지만 노사 모두 이중임금제를 협상 의제로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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