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의 지휘를 받는데도 개별도급계약을 맺은 것처럼 노동자를 고용하는 거대 통신기업 협력업체의 변종 고용관행이 고용노동부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노동부는 통신대기업 협력업체 전반에 걸쳐 퍼져 있는 개별도급계약 일부를 인정해 부실조사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건당수수료 받아도 실제는 근로자”=노동부는 29일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협력업체 27곳의 노동관계법 위반 여부에 대한 수시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했다. 노동부는 올해 4월 희망연대노조의 요청에 따라 서울지방노동청을 포함해 7개 지방노동청 주관으로 5월19일부터 6월20일까지 근로감독을 실시했다.

근로감독 결과 노동부는 23개 업체가 최저임금·연장근로수당·휴일근로수당·퇴직금·연차휴가수당 4억9천192만원을 노동자들에게 지급하지 않은 사실을 적발했다. 이와 함께 서면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16개 업체, 근로계약서상 기재사항을 누락한 3개 업체의 위법사실도 확인했다.

특히 건당 수수료 방식으로 급여를 받는 협력업체 인터넷 개통기사들에 대한 근로자성 인정 여부가 주목을 받았다. 개별도급계약을 체결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사용자들의 지휘·명령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개통기사들이 4대 보험 미가입과 근로기준법 미적용 등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개통업무 전체를 외주화한 2곳을 제외하고 25곳 489명의 개통기사를 조사한 결과 19곳 332명에 대해 근로자성을 인정했다.

노동부는 협력업체들이 이들 개통기사들을 직접고용한 것으로 간주하고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내용의 확인서와 시정계획을 제출하도록 했다. 동시에 미지급 금품을 청산하고 노사가 협의해 임금·근무체계를 정비하도록 했다.

노동부는 “협력업체들이 근로자성이 인정된 개통기사의 근로자성을 부인하거나 확인서 제출을 거부할 경우 검찰과 협의해 수사착수 등 사법처리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4월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가 설립된 뒤 통신기업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고용형태가 논란이 됐다. 근로계약을 체결했으면서도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거나 기본급과 함께 건당수수료를 받고, 개별도급계약을 체결했으면서도 근로소득세와 사업소득세를 나눠 내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근로자영자’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무노조 사업장 ‘봐주기 감독’ 의혹=근로자성 판단기준이 된 23개 업체 중 19곳의 전부 또는 일부 개통기사들만 근로자성을 인정받으면서 의혹이 불거졌다. 개별도급계약을 맺었더라도 사용자로부터 실질적인 지휘·명령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임에도 노동부가 조사를 부실하게 해서 사실상 노동자들인 일부 개통기사들을 구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비판이다.

노조는 이날 오전 정부세종청사 노동부 건물 앞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노동부의 통신업체 개통기사 근로자성 인정은 환영하지만, 일부 지청의 기업 봐주기식 노동자성 부정 감독 결과는 인정할 수 없다”며 재조사를 요구했다.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논평을 내고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협력업체는 조금씩 차이가 있더라도 업무형태가 유사하기 때문에 사용종속관계가 크게 다르지 않다”며 “그럼에도 노동부가 특정 지역 사업장에 대해서만 근로자성을 부인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노조와 은 의원은 노동부가 무노조 사업장의 경우 개통기사들을 대상으로 구체적인 조사를 하지 않은 채 사용자들의 입장만 듣는 바람에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노동부 조사 결과를 보면 부산·대구·경기지역 협력업체 개통기사들은 전부 또는 대부분 사업자인 개별도급직으로 분류됐다. 이들 사업장에는 지금도 노조가 없거나 조사 당시 노조가 없었다.

은 의원은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노동부가 사업장별 감독 결과와 ·판단근거를 가감 없이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권혁태 노동부 근로개선정책관은 “모든 개통기사를 만나 근로자성 여부를 확인하기는 어렵다”며 “조사대상 사업장의 근로계약서와 4대 보험 가입 여부, 사용자의 지휘 정도를 종합적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권 정책관은 “두 개 이상의 협력업체에서 동시에 일하거나 출퇴근 시간이 자유롭고, 본인의 능력에 따라 급여를 받는 개통기사들은 개별도급직으로 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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