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산업단지를 잇따라 찾아갔다. 대구창조경제단지 예정 부지에 이어 서울디지털단지(옛 구로공단)가 방문지다. 박 대통령이 창조경제의 전도사로 나선 모양새다. 지난 17일 50년 전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우리나라 최초의 산업단지로 조성된 구로공단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의 감회는 남달랐다.

박 대통령은 “산업단지는 문화·편의시설 등이 부족하고 기술개발과 정보통신서비스 기반 융복합 역량이 낮아 젊은이들이 산업단지 취업을 기피하고 있다”며 “이제 산업단지도 젊은 인재들이 스스로 찾아오는 혁신적이고, 창조적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50년 전이나 후나 대통령 부녀의 생각은 다르지 않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산업화의 주역으로, 딸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경제의 거점으로 서울디지털단지를 언급했다. 아버지가 첫 삽을 뜬 구로공단을 딸이 이어받아 신바람 일터로 만들면 좋으련만 그런 기대는 아예 접어야 할 것 같다. 산업단지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진단부터 헛다리짚었고,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려는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청년들이 산업단지를 기피하는 이유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한다. 문화나 편의시설이 부족하고, 정보통신서비스 기반이 낮기에 청년들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오늘날 서울디지털단지는 고층빌딩과 복합쇼핑몰이 즐비한 공간으로 변모했다. 적어도 담벼락 두고 굴뚝 공장들이 마주보던 옛 구로공단의 흔적은 이젠 찾아보기 어렵다. 기존 제조업체는 지방으로 이전하고, 정보통신서비스(IT)와 패션아울렛 매장·서비스업체가 입주하면서 서울디지털단지의 외형은 화려해졌다. 이런 분위기라면 젊은 노동자들이 꺼려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젊은 노동자들은 서울디지털단지를 ‘비정규직의 무덤’이라 부른다. 한 번 들어가면 떠나기 어렵고, 더 나은 곳으로 가기도 어렵다는 의미에서다. 노동단체의 실태조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노동자의 미래’가 지난해 서울디지털단지 노동자 2천800여명을 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었다. 생산직 노동자들의 50% 가량이 파견업체를 통해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디지털단지 주변에는 200여개의 파견업체가 성업 중인데 대부분 불법파견 업체다.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196만원으로 같은 기간 전국 평균임금(218만원)의 80%에 불과하다. 최저임금도 못 받는 노동자는 15.7%에 달했다. 평균노동시간은 1주 45.6시간으로 전국 평균(42.8시간)보다 3시간가량 길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공식 노동시간이다. 2명 중 1명의 노동자는 근로계약서를 서면으로 체결하지 않았으며, 임금은 포괄적 방식으로 지급됐다. 이러다 보니 초과근로가 관행화됐는데도 시간 외 수당은 전혀 지급되지 않았다. 서울디지털단지는 겉만 달라졌을 뿐 70~80년대 시절 ‘잘린 손가락과 밤샘 노동’으로 악명 높았던 구로공단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서울디지털단지를 포함해 전국의 산업단지들이 공동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단지마다 아파트형 공장이 속속 늘어나고 있지만 공실률이 높고, 임대기간도 매우 짧다. 정부 지원과 세금 혜택을 고려해 IT업체와 제조업체들이 찾아오지만 오래 버티는 업체는 소수다. 폐업 신고조차 하지 않고 야밤에 도주하는 사업주도 속출하고 있다. 영세 IT·제조업의 높은 체불률이 산업단지에서 발생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물론 서울디지털단지는 패션아울렛 매장과 서비스업체들이 떠나간 업체들의 자리를 메우고 있어 타 산업단지와 차별화된다. 서울디지털단지는 어느새 정부 지원금을 노린‘떳다방(부동산 투기꾼)’들의 천국으로 변질됐다. 이는 산업생산 활성화라는 국가산업단지 조성의 취지에서 벗어난다. 국민 혈세를 악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니 청년들에게‘산업화의 주역에서 창조경제의 거점으로’라는 구호가 뜬 구름 잡기로 들리는 것이다.

찾아오는 산업단지로 거듭나는 방법이 없지 않다. 양 노총 지역조직, 경영계, 고용노동부 관악지청과 구로·금천구청은 지난해 5월 ‘일하기 좋은 서울디지털단지 위한 공동 선언식’을 했다. 한 마디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자”는 선언을 했다. 아울러 “청년·고령자 일자리 창출과 고용안정, 비정규직과 사내하도급 노동자에 대한 차별철폐를 위해 적극 노력하자”고 결의했다. 서울디지털단지가 옛 구로공단의 오명에서 벗어나 신바람 일터로 거듭나려면 이것부터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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