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노사관계가 매우 불균형적이고, 노동에 대한 정당한 분배가 이뤄지는지를 보여 주는 ‘형평성’ 지수가 세계 꼴찌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권위적인 노사관계 학술지인 영국 노사관계저널(British Journal of Industrial Relations)에 등재된 국내·외 연구진의 연구 결과다.

14일 김동원 고려대 교수(경영대) 연구팀에 따르면 김 교수와 김윤호 한국기술교육대 HRD센터 대우교수 등 한국과 미국·일본의 연구진이 참여한 ‘1993~2005년 OECD 국가들의 노사관계 시스템’ 연구보고서가 최근 BJIR 인터넷판에 등재됐다. 내년 상반기 중 정식 출판이 예정돼 있다.

◇허약한 노조, 이중노동시장 고착=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의 노사관계를 ‘효율성’과 ‘형평성’ 차원에서 분석했다. 이를 위해 OECD와 국제노동기구(ILO)·세계경제포럼(WEF)·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에서 1993~2005년 발표한 각종 지표를 활용했다.

분석 결과 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효율성은 1993·1999·2005년 각각 12·9·17위를 기록하며 중위권에 포함됐다. 투입 대비 산출, 즉 이익의 극대화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뜻이다.

구체적 지표를 보면 △노동조합 분권화 수준 1위 △계약직 활용의 자유 8위 등이 효율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정규직 해고절차의 유연성 24위 △노사관계의 생산성 기여수준 30위 △파업참여자수 25위 등이 효율성을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분석됐다.

산업 차원의 노조 결속력이 떨어지고, 비정규직은 쓰기 쉽지만 정규직은 해고하기 어려운 이중노동시장의 특성을 보여 주는 결과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노사관계가 기업의 생산성에 기여하는 수준은 회원국 중 꼴찌로 집계됐다.

특히 정당한 분배와 차별금지, 안전한 작업환경 등으로 설명되는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형평성 지수는 1993·1999·2005년 모두 꼴찌를 기록했다. 구체적으로는 △정부 사회보장 지출수준 30위 △연평균 노동시간 길이 1위 △ILO 핵심협약 비준수준 29위 △노동조합 조직률 29위 △산업재해 사망자수 3위 등으로 파악됐다.

노사관계 안정화를 위한 정부 차원의 정책적 개입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그 결과 노동시간이나 산업안전 같은 기본적인 노동조건이 최악의 상황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노동시간단축 등 형평성 회복 시급"=이 같은 결과에 대해 김동원 교수는 “한국의 경우 효율성은 중위권인 반면 형평성은 1993·1999·2005년 모두 최하위를 기록했다”며 “한국 노사관계가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불균형적인 상태를 지속해 왔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노사관계가 균형을 회복하려면 형평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관련 정책들이 신속하게 수립되고 실행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하루아침에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노사관계 불균형이 구조화돼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에서 연구팀은 OECD 회원국 노사관계를 크게 세 가지로 유형화했다. 효율성과 형평성이 모두 높은 조정시장경제 유형(노르웨이·스위스)과 효율성은 높고 형평성은 낮은 자유시장경제 유형(미국·영국), 중간수준의 형평성과 낮은 효율성을 보이는 라틴유형(프랑스·이탈리아)으로 분류했다.<그림 참조>

김 교수는 “13년치 자료를 바탕으로 각국의 노사관계를 종단적으로 분석한 결과 개별국가 노사관계의 특성은 큰 변화를 나타내지 않았다”며 “각국의 노사관계가 경로의존성을 갖고 발전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정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한번 고착화된 구조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노사 당사자의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는 “노동시간단축이나 최저임금 확대처럼 노사관계 형평성을 높일 수 있는 사안에 대한 노사정 대타협이 하루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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