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은 명절을 두려워한다.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에는 주로 정치가 밥상에 오르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여야의 성적표가 매겨지고, 정치인들에 대한 성토대회로 이어진다. 그런데 웬걸. 이번 추석 식탁의 화두는 ‘정치’가 아니었다. ‘담뱃세 인상’이었다. 가족들은 두 파로 나뉘어 설전을 벌였다. 주로 흡연을 하는 남자들이 벼랑으로 몰리는 형국이었다. 담뱃값이 올라 가계에 부담을 주고, 건강도 해치니 이번 기회에 금연을 하라는 주문이 쏟아졌다.

하지만 “담뱃값을 한꺼번에 많이 올리는 것 아니냐”라는 지적 앞에서는 가족 모두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금연을 유도하는 취지는 좋지만 인상액이 ‘충격적’이라는 평가다. 담뱃값은 지난 2004년 2천원에서 500원 인상된 2천500원으로 정해져 10년 정도 가격을 유지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90%(2천원)를 올릴 것이라고 예고했다. 자연스레 대화는 ‘금연’보다 ‘담뱃세 인상’이라는 초점으로 이동했다. 진정 담뱃값 인상은 국민건강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을까. 정부가 이 시점에 담뱃값 인상을 기습적으로 발표한 의도는 무엇일까.

11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내년 1월1일부터 담뱃값을 2천원 인상하고,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지속적으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조치로 담배 소비량은 약 34%(가격탄력도 0.425 기준) 정도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재 43.7%(2012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이르는 성인 남성 흡연율은 오는 2020년께 29% 수준까지 떨어진다는 것이다. 정부는 담뱃값이 500원 오르자 성인 남성 흡연율이 떨어진 전례를 들어 이를 설명했다. 담뱃갑에 흡연 폐해 경고그림을 삽입하고, 소매점의 광고 금지라는 비가격 정책을 병행하면 흡연율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담뱃값 인상이 흡연율을 낮추는 전가의 보도일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납세자연맹은 담뱃값 인상이 금연을 유도하는 효과가 실증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납세자연맹은 복지부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가격 요인보다 가족의 건강을 금연 이유로 꼽았다. 또 지난 10년간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담배값 인상(500원)이 흡연율 감소에 영향을 줬다고 결론내리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되레 이 기간 동안 하위 소득계층 여성 흡연율이 높아졌다는 조사를 제시했다. 담뱃값 인상은 모든 계층에 영향을 주지 않으며, 금연의 결정적 요인도 아니라는 얘기다.

이쯤되면 담뱃값 인상에는 또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담뱃값 인상에 따른 세목 구성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담배값이 인상되면 담배소비세·지방교육세·건강증진부담금·폐기물부담금 등이 덩달아 오른다. 올해에만 걷히는 담뱃세는 약 7조원에 달한다. 정부는 여기에 새로운 세목을 추가했다. 종가세(가격기준 세금) 방식의 개별소비세(2천500원 기준 594원)를 포함시킨다는 계획이다. 비싼 담배를 사는 사람들이 개별소비세를 더 내는 방식이다. 정부는 저렴한 담배를 사는 서민층에게는 세금 부담이 적은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정부가 담뱃값 인상분에 개별소비세라는 세목을 추가하는 이유는 ‘국세’를 늘리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담뱃세 인상을 통해 세수 부족을 메우려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당초 박근혜 정부는 증세에 반대하면서 세출구조조정을 통해 재원을 조달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를테면 정부지출은 아끼고 4대강 사업과 같은 토목예산은 줄여 복지예산을 확대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말로만 세출구조조정을 떠들었을 뿐 담뱃값만 덜컥 올렸다. 간접세·소비세 인상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세수증대를 추진한 것이다. 부자감세 철회라는 효과적인 세출구조조정 방안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결국 담배값 인상과 같은 손쉬운 방식으로 서민증세를 단행한 셈이다.

담뱃세가 흡연자에게 어느 정도 쓰이는 지도 살펴볼 대목이다. 담뱃세에는 건강증진부담금이 있는데 올해에만 약 2조원이 조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가운데 금연과 흡연예방 사업에 쓰인 돈은 고작 1%에 불과하다. 흡연자의 호주머니를 털어가면서도 그들이 받는 혜택은 미미하다. 그렇다면 담뱃값 인상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국민건강을 위해서"라고 에둘러 말해선 안 될 것이다. 서민들의 부담만 커질 것이 불 보듯 뻔 하기 때문이다. 담뱃값 인상이 금연을 유도하는데 효과가 있더라도 이를 결정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국회가 충분히 검토해 서민 피해를 줄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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