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사회보장이 취약하고 계층 간 이동의 사다리가 꺾인 사회에서 교육은 전 생애에 걸친 소득보장과 그것을 통한 생계유지의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운이 좋아 복권에 당첨되거나 불로소득의 원천이 될 자산을 상속받지 않는 이상 우리 사회 대다수 보통 사람의 합리적 전략은 교육수준을 최대한 높임으로써 보다 안정적이고 임금 수준이 높은 일자리를 얻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교육마저도 부모의 소득에 의해 양극화하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긴 하지만 개인이 그나마 기대어 볼 수 있는 보험은 교육뿐이다. 유난히 높은 한국의 대학진학률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는 대학졸업장을 들고 노동시장 주변을 맴도는 이들을 고용할 질 좋은 일자리를 충분히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고학력 실업자가 범람하는 시대에 대학 교육의 성과를 측정하는 최고의 지표는 ‘취업률’이 됐다. 비판적으로 사고해야 할 문제다. 순수학문 탐구라는 대학 본래의 사회적 역할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미 수많은 이들의 취업의 경로로 어쩔 수 없이 대학을 선택하고 있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요구는 당장의 절박한 현실이다.

이런 추세에서 각 대학은 기업과의 산학협력을 계속 강화하고 있다. 특히 현장경험 제공과 맞춤형 직무능력 향상을 목적으로 방학 등의 기간을 활용해 학생들을 기업체로 파견하는 현장실습이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제조업·사회복지·보건의료·미용업·스포츠·외식 및 관광서비스산업 등 전 업종에서 관련 학과와의 제휴를 통해 현장실습이 이뤄진다.

현장실습 자체는 각종 인턴제도와 마찬가지로 교육과 노동시장 사이의 제도적 교량을 튼튼히 한다는 점에서 잘 발전시켜야 할 제도임에 분명하다. 현장실습이 명실상부하게 운영된다면 참가자의 입장에서는 일에 대한 경험을 얻는 동시에 직업훈련을 통해 숙련을 향상시킬 수 있고, 기업의 입장에서는 직무에 적합한 교육과정을 통해 검증된 인원을 채용할 수 있는 순기능이 있다.

문제는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산학협력 실습이 교육적 기능을 상실한 채 사실상 상시적 단순노무의 대체, 즉 아르바이트 노동을 대신하는 값싼 노동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스포츠학과 학생이 프로축구 구단에서 ‘볼 보이’ 업무를 하면서 배울 수 있는 직무능력은 무엇이고, 조리학과 학생이 대형호텔 주방에서 다른 아르바이트 노동자와 나란히 서서 설거지를 하면서 얻을 수 있는 현장경험은 무엇인가. 광고학과 학생이 편의점으로 현장실습을 나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제대로 감독되지 않는 산학협력의 밑바닥에서 수많은 청년이 결국에는 이력서 한 줄로 적고 말 경력을 채우기 위해 지금도 계속해서 소비되고 있다.

특히 그들이 업체에 제공하는 노동에 대해 정당한 대가가 지급되지 않고 있다. 산학실습비로 책정돼 있는 금액은 최저임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이뤄지는 노동착취에 다름 아니다. 많은 당사자들이 부당함을 느끼고 있음에도 결국 해당 직종에 취업을 해야 하는 절박함에 문제제기를 포기하거나, 졸업을 위한 의무요건에 얽매여 참고 버텨야 하는 형편이다. 대학과 기업 간 산학협력 체결 계약서는 도대체 어떤 내용을 규정하고 있기에 문제가 이렇게까지 심각할까.

교육당국과 노동당국의 전면적인 실태조사와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행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제도에 허점이 있으면, 그 틈새에서 고통 받는 것은 결국 가장 약한 이들이다.

그것에 인턴이라는 이름을 붙이든,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을 붙이든, 개선의 방향은 분명하다. 교육은 교육답게, 노동은 노동답게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루는 형태로, 그것 모두가 권리로서 다뤄져야 한다. 정부는 이름도 야심 찬 ‘일·학습 병행제’를 대규모로 실시하기 전에 권리보호 사각지대에 방치된 산학협력 현장실습의 나쁜 관행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scottnearing87@gmail.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