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제재심의위원회의 경징계 결정을 뒤집고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KB국민은행장을 중징계했다. 로비에 의한 외압설에 시달렸던 금감원으로서는 올해 6월 사전에 통보했던 대로 소신을 지킨 셈이다.

최수현 원장은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건호 행장에 대해서는 제재심의위에 상정한 원안대로 중징계를 확정하고, 임영록 회장에 대해서는 금융위원회에 중징계 조치를 건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21일 금감원 제재심은 6월 사전통보된 ‘문책경고’를 경징계인 ‘주의적 경고’로 한 단계 경감했다. 최 원장은 2주간의 장고 끝에 제재심 결정을 재가하지 않고 원래 상태로 돌려놓았다. 해임권고·업무집행 정지·문책경고·주의적경고·주의로 수위가 나뉘는 임원 징계에서 문책경고는 중징계에 해당한다. 3년간 임원과 준법감시인 선임자격이 제한된다.

최 원장은 “임 회장과 이 행장이 직무상 감독의무를 태만히 함으로써 심각한 내부통제 위반행위를 초래했을 뿐 아니라 이로 인해 금융기관의 건전한 경영을 크게 저해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공개된 주전산기 전환사업과 관련한 부문검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주전산기 관련 컨설팅 보고서가 유닉스에 유리하게 작성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 주전산기의 유닉스 전환 관련 성능검증(BMT) 결과와 소요 비용을 이사회에 허위보고한 사실도 드러났다.

금감원은 이를 주도한 IT본부장을 교체하도록 지시하고, 이 행장은 직무상 감독의무 이행을 태만히 해서 위법·부당행위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는 관리감독 책임을 물어 문책경고 조치했다. 임 회장은 주전산기 전환사업과 그에 따른 리스크에 대해 수차례 보고받았으면서도 감독의무 이행을 태만히 한 것은 물론 주전산기의 유닉스 전환사업을 강행하려는 의도로 자회사 임원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최수현 원장의 기자회견 뒤 이건호 행장은 사의를 표명했다. 임영록 회장에 대한 결정은 차기 금융위 정례회의에서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두 최고경영자의 사퇴를 요구해 왔던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위원장 성낙조)는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지부 관계자는 “금융위가 신속하게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서도 “임 회장은 금융위 결정 전에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 관계자는 “임 회장과 이 행장이 나간 자리에 다시 관치 낙하산이 내려오는 비극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금융노조는 논평을 통해 “관치금융 철폐와 낙하산 인사 척결을 위해 행정부와 입법부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해 왔고 3일 총파업 투쟁을 펼쳤다”며 “금융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이뤄 낸 소중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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