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변호사)

“관치금융 철폐, 낙하산 인사 저지, 금융산업 재편 등 구조조정 분쇄, 정부의 노사관계 개입 분쇄 및 복지축소 저지!”

3일 금융노조 총파업에서 나온 구호다. 이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굵은 비가 내리는 서울 목동종합운동장을 조합원들이 가득 메웠다. 하루 종일 정부와 사용자의 반노동정책을 비판하는 집회와 발언이 이어졌다. 이러한 조합원들의 목소리가 널리 퍼지길 소망한다.

14년 만에 금융노조가 총파업에 나선 이유를 보자. 이번 총파업은 노사 간 쟁의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금융노조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행동이다. 노조는 파업까지 가지 않으려 많은 노력을 했지만 사측은 쟁의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그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노조는 사측을 향해 우리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들어 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문호 위원장은 총파업 대회에서 "관치금융 철폐, 금융공기업에 대한 무차별적인 복지축소 중단 등 금융노동자 옥죄기를 중단하기를 요구했지만 정부와 사측은 이 시간까지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내용적으로는 금융노동자의 삶과 금융산업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 ‘이대로 두면 모두 망할 수도 있다’는 우려다. 2000년 총파업 이후 14년이 지났지만 금융노조 조합원들의 삶과 금융산업에 전혀 발전이 없었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정체하거나 오히려 퇴보했다.

노동 3권에 있어 확실한 신장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우리나라 금융산업이 규모나 기술에서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다는 IT산업처럼 앞선 수준에 달한 것도 아니다.

지난 국회에서는 전임자 활동을 사용자 통제하에 두고 교섭창구 단일화를 교섭의 전제조건으로 만들었다. 정부는 한술 더 떠서 법보다 못한 행정집행을 강요했다. 새로 들어선 정부는 매번 주요 은행 인사를 주물렀고 입맛에 따라 구조조정을 일삼았다. 국민은행 내부 싸움은 세간의 웃음거리로 전락했고 박근혜 정부 들어 약속을 뒤집고 은행 간 합병(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을 맹목적으로 서두르고 있다. 지난해부터 ‘정상화’를 외치고 있지만 정작 그 내용은 노사관계에 개입하는 것이 전부라 할 정도로 빈약하다. 그저 정권 유지의 수단일 뿐이다.

오히려 우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금융의 뒷모습을 봤다. 개인 금융거래 정보가 단돈 몇 푼에 팔려 나가고, 노동자들은 꿈도 꾸지 못한 거액이 암암리에 대출되는 사고가 터지고 있다. 아마도 20~30년 전에는 더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알았던지 공교롭게도 세계경제포럼(WEF)은 이날 우리나라 금융시장 성숙도를 80위로 평가했다. 한마디로 금융‘산업’이 아니라 완전 사금융 수준이 아닌가. 전체 경쟁력은 26위인데도 말이다.

파고들면 들수록 현재의 금융산업의 후진성과 여기서 비롯된 모든 문제점의 근본원인은 정부와 사용자에게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럼에도 정부와 사용자는 늘 그 결과를 조합원들에게 전가한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단 한 번도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고서 말이다.

그래서 금융노조가 나선 것이다. 모든 노동자와 노조의 단결권 행사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어떠한 이유로도 침해돼서는 안 된다.

아마도 노조의 총파업을 두고 “제조업이나 비정규 노동자들에 비하면 훨씬 많은 것을 누리고 있지 않는가, 은행에 다니는 사람들이 파업이 웬 말인가”라는 보수언론의 호도가 이어질 것이다. 이 같은 허위광고가 봇물을 이루는 것은 그만큼 노조의 총파업이 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과 노동조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

요컨대 금융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노동권이 향상된다면 이들보다 못한 노동자들의 생활을 견인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금융노조의 제대로 된 목소리는 전체 노동환경을 바꾸는 데 기여해 온 노동의 역사다. 주 40시간·육아휴직·노동시간단축과 같은 굵직한 노동제도 변혁에 금융노조가 앞장섰음을 잘 알고 있다.

머지않은 날 “이번 총파업이 금융산업에서 정치를 분리하고 더 이상 사적영역인 노사관계에서 정부의 개입을 차단하는 시발점이었다”고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 시기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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