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기구(ILO)는 10월30일부터 11월13일까지 제322차 이사회를 연다. 이번 이사회가 세간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ILO 협약 제87호가 규정하는 결사의 자유에 파업권이 들어가는지"에 관한 해석을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할지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국제노동기준의 감시·감독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기관인 ILO의 전문가위원회는 협약 제87호가 규정한 결사의 자유에 파업권이 들어간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이러한 원칙은 1957년 ILO 총회에서 “회원국의 법률은 노동자의 파업권을 포함해 노동조합의 권리를 조금도 제한받지 않고 제대로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한 'ILO 회원국에서의 반(反)노동조합 법률 폐지에 관한 결의문'을 채택한 이래 반세기가 넘도록 ILO 활동과 정책의 근간을 이뤄 왔다.

그런데 2012년부터 사용자그룹은 결사의 자유를 명시한 ILO 협약 제87호에는 파업권에 관한 구체적인 규정이 들어 있지 않다면서 전문가위의 결정과 권고를 무시해 왔다. 그 결과 올해 6월 열린 제103차 ILO 총회에서는 회원국에서 벌어진 대표적인 노동권 위반 사례를 정리한 ILO의 전문가위 보고서가 사용자그룹의 거부로 채택되지 못하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국제사용자기구(IOE)가 주도하는 공세에 대해 국제노총(ITUC)을 비롯한 노동계는 국제노동기준을 명시한 ILO 협약과 권고의 적용을 감독하는 ILO의 체계와 기능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ILO 안에서 사용자그룹의 공격에 맞서 노동자그룹은 협약 제87호의 파업권 포함 여부에 관한 국제법적 결정을 국제사법재판소가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를 위해 11월 열리는 ILO 이사회가 결사의 자유에 관한 해석을 둘러싼 분쟁을 국제사법재판소로 회부하는 결정을 내리도록 로비를 벌이고 있다.

매년 3월·6월·11월 세 차례 열리는 이사회는 ILO의 집행기구다. 그 구성은 정이사 56명(정부대표 28명, 노동자대표 14명, 사용자대표 14명)과 부이사 66명(정부대표 28명, 노동자대표 19명, 사용자대표 19명)으로 구성된다. ILO 이사회는 주요 정책을 결정하고, 총회에 제출할 사업계획과 예산안을 작성하며, 총회 안건을 결정한다.

2014년 6월부터 2017년 6월까지 3년 임기의 정이사로 정부대표를 보내는 28개국은 알제리·독일·앙골라·아르헨티나·브라질·불가리아·캄보디아·중국·한국·아랍에미리트·미국·프랑스·가나·인도·이란·이탈리아·일본·케냐·멕시코·파나마·루마니아·영국·러시아·수단·트리니다드토바고·터키·베네수엘라·짐바브웨다. 이 가운데 독일·브라질·중국·미국·프랑스·인도·이탈리아·일본·영국·러시아 등 10개국은 ILO 규약에 따라 '산업적 중요성'을 고려해 영구적으로 정이사를 맡는다. 나머지 18개국은 ILO 총회에서 선거로 정하는데, 한국정부는 6월 총회에서 정이사로 뽑혔다.

노사정 3자로 구성된 ILO 이사회에서 노동자대표와 사용자대표의 의견이 대립하는 사안에서는 정부대표의 입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국제노동계에서는 ILO 이사회에서 정부대표를 맡고 있는 28개국 정부에 대해 해당 나라의 노동조합들이 적극적으로 압력을 행사해 협약 제87호를 둘러싼 해석 건을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할 수 있도록 하는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11월 ILO 이사회가 협약 제87호 해석의 국제사법재판소 회부 건을 다룰 때 이변이 없는 한 노동자대표 14표는 회부를 해야 한다는 쪽으로, 사용자대표 14표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쪽으로 나뉠 것이다. 결국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할지 여부는 정부대표 28표의 향방에 달려 있다.

국제노동계 입장에서 볼 때 상황은 만만치 않다. 정부대표 이사를 파견하는 28개국 중에서 ILO 협약 제87호를 비준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과 미국을 포함해 10개국이나 된다. 협약 비준을 한 18개국 중에서도 그 이행을 위한 법집행을 태만히 하는 나라가 많다.

필자의 개인적인 관심사는 노동계의 지지를 받고 대통령이 된 오바마의 미국 정부, 우파지만 사회민주당과 대연정을 하고 있는 독일 정부, 역시 노동계의 지지를 받고 대통령이 된 지우마 호세프의 브라질 정부, 사회주의를 선언한 베네수엘라 정부의 선택이다.

6월 총회에서 새로 정이사로 선출된 내 나라 한국정부의 선택은 무엇일까. 한국은 헌법이 파업권을 보장하고 있음에도 “사측이 예측하지 못한 파업은 불법”이라는 기상천외한 법리를 만든 대법원을 둔 나라다. 파업 지도부가 있다며 한 국가의 노총본부를 포위하고 경찰병력을 투입하는 대통령을 둔 나라다. 예의상 11월 ILO 이사회에서 한국정부의 선택은 무엇일지 궁금해진다고 써야 하는 걸까. 오랜만에 가동되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한국정부의 선택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논의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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