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한 손님에게 뺨을 맞고, 발에 차이면서도 제대로 대항하지 못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청년의 CCTV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한숨 한 번 쉬고 지나쳐 버릴 진상고객의 수준을 넘어 엄연한 범죄 상황이었음에도 청년은 무방비 그 자체였다. 충격과 분노도 잠시, 조금만 검색해 보면 비슷한 종류의 다른 영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밤새 영업하고 심야시간대에는 한 사람이 매장을 홀로 책임져야 하는 편의점 운영의 특성상 아르바이트 청년은 이런 상황을 매순간 감당해야 한다. 편의점뿐만 아니라 패스트푸드·커피전문점·음식점·주점·디저트카페·의류·화장품 등 각종 판매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비스업종에 종사하는 아르바이트 청년에게 가해지는 고객의 일상적 하대와 비인격적 대우, 폭언과 폭행, 성희롱은 매우 흔한 일이다. 아르바이트 잔혹사라 칭할 만하다.

왜 참아야 했을까. 서비스업계의 철칙, 손님이 왕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객이 부당한 요구나 잘못된 행동을 해도, 종업원에게 거부할 권리는 없다. 잘못한 것이 전혀 없지만 결과적으로 잘못한 것이 돼 버린다. 항상 웃는 얼굴과 상냥한 목소리로 고객을 대해야 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게 아닌 이상 웃어라.”

'손님이 왕'이어야 하는 서비스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좋은 서비스라는 명목의 '감정노동'이 강제되고, 수많은 노동자의 마음이 병들어 가고 있다. 이들은 어느 학자가 개념화한 것처럼 '배우가 연기를 하듯' 타인의 감정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수행한다. 우리 사회에서 감정노동은 여성 서비스노동자의 문제로 다뤄지기 시작해 승무원과 콜센터 상담원, 마트·백화점 판매원, 서비스센터 직원, 음식점·호텔 접객원 등 고객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양한 직종의 노동 문제로 확대돼 왔다.

이제는 감정노동의 문제를 청년까지 확장해야 할 시점이다. 서비스업종에서 아르바이트 형태로 일하는 수많은 청년은 자신보다 어리다는 이유로 다짜고짜 반말을 하고, 아르바이트라는 이유로 무시하는 ‘진상고객’의 비인격적인 언행과 폭력적인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채 강도 높은 감정노동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감정적 소진과 사회심리적 건강악화로 이어진다.

청년들은 아르바이트로 생애 첫 노동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청년들의 아르바이트 노동은 근로기준법의 기본적인 보호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처우도 열악하며, 임금수준도 딱 최저임금에 불과하다. 설상가상 청년들의 감정노동 실태가 이대로 방치되면 결국 이들의 첫 노동은 상처가 될 수밖에 없다.

몇몇 질이 나쁜 사람들 탓일까. 아니다. 노동인권 감수성 제로의 사회에서 소비자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감정노동 피해자에 대한 공동가해자다. 자신의 직장에서 고객을 응대하며 감정노동에 지쳐 가는 우리는, 뒤로 돌아서면 스스로 그렇게 욕해 온 소비자의 모습으로 돌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비자인 우리는 비용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이용할 뿐이지, 인간의 감정까지 상품으로 구매한 것은 아니다. 이미 인간의 감정마저 상품으로 사고파는 세상이지만 적어도 그런 선언은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바꿀 수 있을까. 소비문화 개선 캠페인이라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당장의 가장 큰 책임은 사용자가 분명하게 져야 한다. 손님은 왕이 아니다. 손님이 왕이라면, 일하는 사람도 왕이다. 똑같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 청년들도 각자 집에 가면 귀한 자식이다. 감정노동자들에게 고객의 부당한 요구와 행동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그것을 사장님의 ‘새로운 의무’로 제도화해야 한다.

“최소한 인간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더 이상 우리의 고객이 아니다. 그들을 상대하는 것 또한 당신의 업무가 아니다.” 이런 문화와 관행을 기대하는 것이 과한 일인가.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scottnearing8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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