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굴뚝으로 올라간 마지막 농성자였다. 차광호(43)씨는 경북 구미산업단지 스타케미칼의 해고자다. 스타케미칼은 폴리에스테르 원사를 생산하는 업체인데 지난해 1월 폐업했다. 회사측은 2011년(156억원), 2012년(160억원)에 적자가 발생해 이 같은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회사측은 폐업을 강행하면서 228명의 노동자와의 근로계약을 종료했다. 당시 노사 양측은 퇴직위로금 지급을 전제로 희망퇴직에 합의했다. 차씨는 희망퇴직을 거부한 28명의 해고자 중 한 명이다. 이들은 스타케미칼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를 결성한 후 '분할매각 중단, 공장 재가동'을 요구하고 있다. 차씨는 지난 5월27일 스타케미칼 공장부지 45미터의 굴뚝에 올라 21일 현재 87일째 고공농성 중이다.

"사장은 기업하다 손 털면 그만이고, 은행은 담보로 삼은 공장 팔아 챙기면 끝이에요. 결국 피땀 흘려 일한 노동자들만 빈털터리가 된 채 쫓겨나는 거죠."

지난 2007년 금속노조 한국합섬·HK지회 이정훈 지회장은 <매일노동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합섬은 스타케미칼의 전신이다. 모회사인 스타플렉스가 한국합섬을 인수하면서 사명을 바꾼 것이다. 한국합섬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폴리에스테르 원사 분야에서 아시아 최대의 공장이었다. 하지만 지난 95년 이후 중국 후발업체의 추격과 공급과잉 사태에 직면하면서 국내 화섬업체는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동국무역·금강화섬이 무너진 데 이어 한국합섬에도 구조조정의 태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한국합섬은 2006년 말 정리해고를 강행한 데 이어 공장가동을 중단했다. 결국 한국합섬은 2007년 5월 파산했고, 매물로 나왔지만 인수 회사를 찾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2005년 이후 한국합섬 노동자들의 체불임금 총액은 300억원, 1인당 5천만~6천만원에 달했다. 파산한 기업이니 체불임금을 받을 길이 막막했던 노동자들은 공장 재가동에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정말 빈털터리였고, 빚쟁이들이었다. 고통의 십자가는 노동자만 졌다. 차씨도 이들 중 한 사람이었다.

4년 만에 한국합섬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회사가 바로 스타플렉스다. 2010년 10월 스타플렉스는 399억원으로 한국합섬 2공장을 인수했고, 고용도 승계했다. 당초 400여명이었던 한국합섬·HK지회 조합원은 100여명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꿈에 그리던 공장으로 돌아갔으나 2년여 만에 다시 거리로 내쫓기는 신세가 됐다. 한국합섬을 거쳐 스타케미칼까지 20여년을 근무했던 차씨는 지난해 1월 두 번의 해고를 경험한 셈이다.

이번에도 노동자만 당했다. 한국합섬 인수 당시 스타플렉스는 큐캐피탈과 중소기업은행의 자금을 끌어들였다. 큐캐피탈의 스타케미칼 지분율은 39.06%(투자금 250억원), 기업은행의 지분율은 7.81%(50억원)였다. 큐캐피탈과 기업은행은 스타케미칼에 투자하면서 전환상환우선주(RCPS)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을 이행하지 않고 스타케미칼이 임의로 조업을 중단할 경우 모기업인 스타플렉스가 지분을 환매하기로 한 것이다. 때문에 큐캐피탈과 기업은행은 투자에 실패했음에도 투자원금뿐 아니라 수익도 얻었다. 우선주의 조기상환이율(12%)에 따라 큐캐피탈은 30억원, 기업은행은 5억7천만원의 차익을 남겼다.

그렇다면 스타케미칼의 조업중단과 우선주 환매에 따라 스타플렉스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커졌을까. 스타플렉스는 기존의 폴리에스테르 원사업체나 사모펀드가 인수해 공장을 재가동하기를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원사의 공급과잉이 해소되지 않아 기존의 원사업체들은 인수를 꺼렸다. 때문에 스타플렉스가 생산설비를 해외에 매각하고, 공장부지를 별도로 매각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화섬업계에선 스타케미칼이 생산설비와 공장부지를 분리 매각할 경우 투자금액 이상의 수익을 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타플렉스는 자산가치가 900억원에 달하던 한국합섬 2공장을 399억원의 헐값으로 인수했다. 스타플렉스의 '먹튀 논란'이 제기된 배경이다. 투자한 사모펀드나 은행 그리고 스타플렉스까지 아무도 손해 보지 않는 장사를 한 셈이다.

"회사는 많은 돈을 벌었다. 경쟁력 있는 특수섬유를 개발하는 일에 소홀했고, 원사 대량생산에만 매달렸다. 잘나가던 회사는 경쟁력을 잃어버렸다. 2007년 한국합섬은 이렇게 폐업했다. 스타케미칼이 회사를 인수했지만 2년 만에 어렵다며 다시 공장 문을 닫았다. 아무 잘못도 없는 우리만 일자리를 잃었다."

차광호씨가 쓴 굴뚝농성 일기의 일부다.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차씨와 그의 동료들의 요구는 달라진 게 없다. 삶의 터전인 공장을 다시 가동하자는 것이다. '함께 살자'는 소박한 요구다. 이달 23일 차씨가 있는 구미산업단지의 스타케미칼 고공농성장으로 16대의 희망버스가 출발한다. "내가 차광호다"는 노동자·시민들이 버스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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