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인력공단

이달 17일 외국인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지 10주년을 맞는 가운데 단순기능인력 도입창구 기능에 머물러 있는 현행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산업별 쿼터를 적용해 인력을 도입하는 현행 체계에서 벗어나, 직종별 숙련 수준을 반영해 인력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외국인 인력수급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의미다.

고용노동부 주최로 13일 오후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콘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고용허가제 시행 10주년 평가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여한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과 같은 ‘단순인력 교체 순환형’ 고용허가제는 3D업종에서 외국인력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외국인들이 주로 취업하는 일자리의 저임금 현상을 고착화한다”며 “이 같은 일자리 양극화 현상을 해소하고 외국인 숙련기능인력 양성을 위해 고용허가제의 산업별 모집체계를 직종별 모집체계로 개편하고, 직종과 노동자 숙련을 연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열악한 중소·영세기업의 인력난을 메워 주기 위한 ‘땜질식’ 제도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내외국인 노동생산성 격차 축소, 일자리 잠식 가능성 상존

우리나라에 비전문 외국인력 도입이 본격화된 것은 1994년 외국인 산업연수생 제도가 시행되면서부터다. ‘근로자’가 아닌 ‘연수생’ 신분이 부여된 산업연수생들은 우리나라에 입국하기 전에는 송출브로커들의 비리에 노출되고, 입국한 뒤에는 사업주의 인권침해와 노동권침해에 노출됐다. 이 과정에서 불법체류(미등록)로 전락하는 연수생이 급증하면서 사회 문제로 비화됐다.

산업연수생 제도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전제된 외국인 고용허가제가 2004년 8월 시행됐다. 고용허가제는 △내국인을 고용하지 못한 사업장에 외국인력 고용을 허용하고(보충성) △송출비리 근절을 위해 공공부문이 직접 관리하고(투명성) △시장수요에 따라 외국인력을 선발·도입하고(시장수요 존중) △외국인력의 국내 정주화를 방지하고(단기순환) △내국인 근로자와 동일하게 대우하는(차별금지) 것을 주요한 특징으로 한다.

고용허가제 시행 이후 현재까지 연인원 40만명이 우리나라를 다녀갔다.<표1·표2 참조> 제도 도입 초기에 비하면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외국인력의 체류기간도 크게 늘었다. 초기에는 3년으로 체류기간이 한정됐지만, 현재는 4월10개월까지 한국에 머물 수 있다. 또 재입국 취업특례자인 ‘성실근로자’로 분류되면 1회에 한해 4년10개월을 추가로 체류할 수 있다.

이 연구위원은 이날 토론회에서 고용허가제 사업장 395곳과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 1천73명에게 고용허가제 활용실태를 설문조사한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고용허가제 인력 대부분이 단순업무에 투입되고 있다. 사업체의 44.7%가 ‘다소 단순한 업무’, 26.7%가 ‘매우 단순한 업무’라고 답했다. 외국인 노동자의 32.5%도 ‘단순한 업무’라고 답했고, 업무를 숙달하는 데 필요한 기간으로 응답자의 80% 가량이 ‘3개월 이내’라고 답했다.

이런 현실과 별개로 기업의 71.2%가 ‘숙련을 갖춘 인력을 도입해야 한다’고 답했다. 기능훈련에 대한 외국인 노동자의 수요도 높았는데 ‘입국 전 본국에서 기능훈련을 실시해야 한다’는 응답이 82%에 달했다. 기업도 노동자도 숙련도 향상을 원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결과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대목이다.

업무 자체가 단순하다 보니 외국인 노동자와 내국인 노동자 사이의 노동생산성 격차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현재 비슷한 일을 하는 한국인 노동자를 기준(100)으로 볼 때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100.6, 업무량은 99.9, 생산성은 92.0, 임금은 87.3인 것으로 파악됐다. 내국인과 외국인의 임금 격차를 고려하면, 둘 사이 노동생산성의 격차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언어소통 등의 어려움에도 외국인 노동자가 내국인 노동자의 일자리를 잠식하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이 연구위원은 “외국인력 공급증가가 임금의 하락을 초래할 가능성이 큰 만큼 외국인력이 집중적으로 취업하는 분야의 일자리에서는 이들과 경쟁관계에 있는 내국인 노동자들이 부정적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가 외국인력 유입과 별개로 내국인 노동시장 보호라는 정책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출산·고령화, 외국인력 수요확대 불가피 … 외국인 숙련도 제고해야

고용허가제에서 가장 큰 쟁점은 ‘사업장 변경’ 문제다. 현행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는 처음 일하기 시작한 사업장에서 계속 근무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사용자가 정당한 사유로 근로계약기간 중 근로계약을 해지하려고 하거나 근로계약이 만료된 후 갱신을 거절하려는 경우 △휴업·폐업이나 고용허가의 취소, 고용의 제한, 사용자의 근로조건 위반 또는 부당한 처우 등 외국인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유로 인해 사회통념상 그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근로를 계속할 수 없게 됐다고 인정해 고용노동부 장관이 고시한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3회까지 사업장 이동(고용허가제 연장기간 동안은 2회)이 허용된다.

이는 외국인 노동자의 직장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등 노동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번 조사에서는 노동자의 절반 가량(48.8%)이 사업장 변경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장을 변경한 사유는 ‘임금을 더 받기 위해서’(39.9%)가 가장 많고, ‘기숙사 등 주거환경 때문에’(22.8%)·‘회사의 부도’(17.7%)가 뒤를 이었다. 단순인력 교체 순환형으로 설계된 고용허가제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들은 사용자들의 귀책사유가 없는 한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이동하기 어려운 구조다.

이처럼 가장 열악한 일자리의 가장 단순한 업무에 지속적으로 종사하도록 설계된 현행 고용허가제에서는 입국 전 어느 정도 숙련을 갖춘 인력이 들어오더라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또 이런 일자리일수록 임금 수준이 낮아 내국인 노동자를 유인하기 어렵고, 점점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는 악순환이 나타난다. 외국인 노동자 공급 확대가 저임금 일자리의 외국인력 의존도를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행 제도가 단기적으로는 인력부족의 완화에 기여할 수 있지만, 인력부족의 궁극적인 해법이 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이 연구위원은 내국인 유휴인력의 활용을 높이는 동시에 외국인 노동자의 숙련도를 높이는 방향을 개선책으로 제시했다. 먼저 낮은 임금으로 내국인 장기근속을 유도하지 못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노동 여건을 개선해 내국인 비경제활동인구의 취업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현재 산업별 쿼터에 따라 숙련을 배제한 채 외국인 노동자를 도입하고 있는 고용허가제 인력수급 방식을 직종별로 숙련도가 높은 노동자부터 낮은 노동자까지 골고루 유입하는 방식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저출산·고령화라는 우리나라의 인구변동 추세를 고려할 때 외국인력에 대한 수요 확대는 불가피하다”며 “고용허가제 시행 10년을 맞아 보다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외국인력 수급정책을 고민해야 하고, 특히 외국인력의 직종별 숙련도를 구분해 자격을 부여함으로써 외국인력의 활용도를 높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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