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업계에 구조조정 광풍이 불고 있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증권사에서 수천명이 소리 없이 직장을 떠났다. 지난해부터는 보험사까지 구조조정이 번지고 있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구조조정된 증권사와 보험사 노동자가 각각 2천명이 넘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런데도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이유는 따로 있는 듯하다. 제2금융권 금융기관 노동자들로 구성된 사무금융노조에 따르면 최근 벌어지는 구조조정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먼저 구조조정 방식이다. 열이면 열, 희망퇴직 형식을 띤다. 공공연하게 목표 인원이 떠돈다. 이를테면 씨티은행의 경우 희망퇴직 규모가 650명 수준일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는데 노조의 반발에도 결국 그 숫자는 채워졌다. 전체 직원의 20%, 30% 이런 식으로 목표를 정하고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것이다.

목표는 대부분 달성된다. 그도 그럴 것이 ‘맞춤형’으로 희망퇴직을 ‘유도’하기 때문에 그물망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우선 희망퇴직을 실시하기 전에 새로운 회사 안에 부서를 하나 만든다. 대개 저성과자들이 포함되는 해당 부서는 희망퇴직 전후로 확대된다. 그리고는 대상자를 불러 면담을 한다. 한 회사는 8차례까지 면담을 진행해 직원이 쇼크를 받아 쓰러지기도 했다. 면담에서 단골로 거론되는 말이 저성과자 부서로 발령낸다는 것, 혹은 먼 지점으로 발령한다는 것이다. 인간적인 모멸감을 주는 언사도 횡행한다. 이러니 희망퇴직자를 미리 점찍어 놓는다는 ‘찍퇴’가 유행어가 될 만하다. 언젠가는 그만둘 직장, 그냥 나가기보다 조건이 그나마 나은 희망퇴직을 선택하는 게 낫지 않을까 고민이 들고도 남는다.

희망퇴직은 노동현장에서 대규모 정리해고의 다른 말이다. 요건이 까다로운 정리해고 대신 희망퇴직이라는 가면을 쓴 것이다. 그야말로 정리해고의 사각지대다. 그럼에도 고용노동부는 이런 가짜 정리해고에 제동을 걸지 않는다. 파악만 할 뿐이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이 올해 6월 기준으로 파악한 대규모 구조조정 사업장만 해도 삼성·교보·한화생명을 비롯해 12곳이나 된다.

7일 오후 사무금융노조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국회에서 간담회를 했다. 희망퇴직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안이 많았다. 금융위원회에 대량퇴직 승인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조용하다고 가만두면 쌓이고 쌓여 폭발한다.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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