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근
이화여대
고진로사회권
연구소 연구교수

자, 한번 생각해 보자. 한국 최고의 기업에 근무하며 평균적으로 연봉 1억원을 받는 노동자들이 경영진을 불신하고 고용불안에 떨면서 매년 파업을 벌인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떤가. 거의 매년 크고 작은 파업으로 생산이 중단되고 노조와의 단체협약에 의해 경영 자율성이 제한되며 경영진을 못 믿는 노동자들이 낮은 생산성으로 일하는 회사가 경이적인 성장을 거듭해 세계 5위의 자동차메이커로 발돋움했다면?

자동차산업의 전문가든 노사관계 연구자든 이러한 현대자동차의 ‘신비’는 오래된 숙제였다. 그 숙제를 이 책의 저자는 풀어냈다.

참여관찰 통해 현대차 노사관계 통찰

 
박태주 박사의 역작 <현대자동차에는 한국 노사관계가 있다>(매일노동뉴스 펴냄·사진)를 읽고 처음 떠오른 생각은 다소 엉뚱하게도 인류학에서 말하는 ‘참여관찰’이었다.

남태평양의 외딴섬에 사는 원주민의 문화를 연구하거나, 열대우림에 서식하는 침팬지 무리의 군집생활을 조사하거나, 아니면 안산 원곡동의 이주자 공동체의 문화를 탐구하려고 할 때 인류학자들은 보통 참여관찰이라는 조사 방법을 사용한다. ‘우리와 다른’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인류학자들이 낯선 사회의 생활방식에 가능한 한 깊이 참여하고 관찰하면서 그 사회의 문화질서와 사회관계의 구조를 이해하고 추론하는 것이 참여관찰법이다.

현대차 노사관계를 다룬 책의 서평에서 인류학의 참여관찰법을 얘기하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일반 시민의 눈에 현대차 노사관계는 어쩌면 서구인의 눈에 비친 남태평양 원주민들의 결혼 풍습처럼 이해하기 힘든 괴상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의 보통 사람들에게 현대차 노사는 ‘우리와 다른’ 문화를 지닌 사람들이다. 대다수 봉급쟁이들이 평생 단 한 번도 노동조합에 가입해 보지 못한 채 은퇴를 하고, 더구나 임금인상을 위해 파업은커녕 회사에 찍소리도 못 내고 주는 대로 받는 문화에 젖어 있는 ‘우리’에게, 매년 임금인상을 위해 파업에 나서는 노동조합이나 그런 노동조합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사측이나 모두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로 보이기 십상이다.

그래서 현대차 노사관계를 접하며 나오는 일반 국민의 반응이 오해와 편견에 휩싸인 것도 무리는 아니다. 또한 그들이 보수언론의 악명 높은 반(反)노조주의 프레임으로 걸러지는 정보를 주로 접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인류학자들이 자민족중심주의를 벗어나 선입견 없이 원주민 사회를 들여다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처럼, 온갖 억측과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현대차 노사관계의 속내를 드러내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공장장 네 번, 지부장 여섯 번 바뀐 10년의 세월

이 책이 거둔 첫 번째 성과는 무엇보다도 세간의 풍문과 억측에 정면 도전해 현대차 노사관계의 실체로 과감하게 육박해 들어갔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민주노조운동의 맏형’이라는 미사여구를 걷어낸 현대차 노조의 민낯을 목격할 수 있고, ‘글로벌 톱 5’의 빛나는 경영성과의 이면에 누적된 회사의 오래 묵은 문제점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 책은 노와 사 양측이 지난 30년 남짓한 시간 동안 하나둘씩 만들어 온 노사관계의 여러 제도와 관행이 어떻게 서로 맞물려 작동하며 하나의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는지, 그 속에서 노와 사는 무엇을 주고받았는지, 그리고 한국의 자동차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하는 수많은 중소기업과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현대차는 도대체 무엇인지 하나씩 차근차근 말해 준다.

또한 이 책의 저자가 한국의 노사관계 연구에 있어 지금까지 그 누구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장기간의 깊숙한 ‘참여관찰’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것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다. 다시 인류학자의 처지로 돌아와 보자. 그들의 참여관찰이 성공하려면 우선 현지 주민들과 함께 음식을 먹고 언어를 배우며 신뢰를 쌓아야 한다. 그런 후에야 주민들은 외지에서 온 ‘친구’에게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결국 인류학자는 처음에는 기괴하고 낯선 문화 속에도 그들 나름의 ‘합리성’이 굳건하게 재생산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점은 현장 노사관계 연구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점에서 저자는 다름 아닌 인류학자였다. 저자 스스로 책의 서두에서 현대차 노사관계에 대해 참여관찰을 했던 지난 10년을 “술과 논쟁으로 지새운 나날”이었다고 표현했는데, 이것은 과장이 아니다. 그 10년은 강산이 한 번 바뀌는 시간이고, 현대차에서 공장장이 네 번,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이 여섯 번 교체된 시간이었다. 저자는 지치지 않고 새로 등장한 사람들에게 의문을 머금고 줄곧 물었다고 한다.

끈기 있는 질문의 결과가 이 책에 담겨 있다. 현대차 조합원의 고임금의 비밀, 연례적인 행사가 된 파업과 노사 담합, 고용불안 심리의 진정한 원인, 풍요롭지만 비참하게 ‘일하는 기계’로 살아가는 조합원의 모순적 삶, 숱한 난관 속에서 어렵게 합의된 노동시간단축 의제, 해외생산 확대와 생산의 세계화, ‘죽여도 죽지 않는’ 기업별 노조주의, 현대차 노사관계의 치부인 비정규직 문제 등 저자의 메스가 닿지 않은 주제가 거의 없을 정도로 종횡무진이다.

경영 파트너 인정과 윈윈 전략, 그리고 연대의 길로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상당한 분량을 ‘대안 찾기’에 바치고 있다. 노사 당사자는 물론 여러 전문가들과의 오랜 토론과 논쟁을 거쳐 저자가 도출한 현대차 노사관계의 대안은 세 가지다.

회사는 이제 부디 노조를 인정하고 경영의 파트너로 참여시키라는 것이 첫 번째고, 생산의 세계화에서 자칫 공동화될 수 있는 국내 공장을 글로벌 허브로 육성해 노사 간에 고용안정과 경쟁력을 교환하는 윈-윈 전략을 짜라는 것이 두 번째며, 노동조합은 사측과의 담합에서 벗어나 연대의 회복을 위한 길로 나서라는 것이 최종적인 주문이다.

저자 스스로는 최대한 ‘대중적 글쓰기’를 했다고는 하지만, 노사관계론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이 책을 완독하는 것은 쉽지 않을 듯하다. 그것은 온전히 저자만의 책임은 아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사회현상보다 노사관계는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이해하기 힘든 언어와 몸짓이 난무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책 곳곳에 묻어 있듯이 저자는 한국의 노동 문제, 특히 노사관계의 엉킨 실타래에 관심 있는 모든 시민들을 독자로 염두에 두고 이 책을 기획하고 집필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더 나아가 나는 이 책이 노사관계의 영역을 넘어 한국의 기업조직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분배 문제를 놓고 대립하는 집단 간의 갈등적 상호작용이 실제로 어떻게 벌어지는지 관심 있는 모든 독자들에게 상당히 많은 통찰과 시사점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측면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나로서는 이 책의 제목을 <현대자동차 노사관계에는 한국 사회가 있다>로 바꿔도 무방하리라 본다.

끝으로 나는 저자가 수행한 참여관찰이 매우 깊은 종류의 참여를 동반한 관찰이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저자는 단순히 국외자로 서성이기보다는 노사관계의 한 당사자로 깊숙이 발을 담갔다. 더 나아가 그는 수년간 남의 제상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참견을 마다하지 않았고, 현대차의 노동시간단축을 이끌어 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노조나 회사, 누구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할”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이러한 점에서 서너 명의 관계자를 인터뷰하고 그들이 건네준 자료를 읽고 바로 몇 달 만에 논문을 써내는 데 익숙한, 필자를 포함한 우리 곁의 많은 노사관계 연구자들의 습속이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 이 책은 무겁게 말해 준다. 당분간 현대차 노사관계에 대한 논쟁과 토론은 이 책에서 출발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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