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세에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합의는 불가능하다. 노동배제를 넘어 노동탄압으로 치닫는 박근혜 정권의 속성, 전투적 반노조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자본의 고집, 정권과 자본의 억압을 돌파할 정책과 조직 역량이 모자란 노동운동의 상태가 겹쳐 있다.

노사정 3자 사이에 오가는 지금의 힘 관계로는 합의는커녕 협의나 대화 자체도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노동운동의 입장에서 노사정위원회, 나아가 노사정 3자의 사회적 대화는 무용·무익하기 때문에 폐기처분해야 할 낡은 유물인가.

여기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입장이 다르다. 한국노총은 최소한 전술상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 같다. 1998년 1월 노사정위원회 출범 이후 꾸준히 참여해 왔으며, 노사정 합의도 여러 차례 했다. 물론 한국노총의 참여가 노동기본권 신장과 노동조건 개선, 노동조합 정책참가에 남긴 발자국은 뚜렷하지 않다. 공공부문을 뺀다면 노동기본권에서 별다른 성과가 없었고(이마저도 박근혜 정권하에서 퇴행했다), 장시간-저임금 노동체제는 달라진 게 없다. 행정부나 입법부를 향한 조직노동의 발언권과 영향력이 커진 것도 아니다. 아무튼 한국노총은 7월29일 열린 노사정대표자 간담회에 참여했다. 이는 “노사정 대화 복원”의 명분 아래 노사정위 복귀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노총은 전술적 고려 대상조차 안 된다는 입장이다. 98년 2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 참여에 따른 내홍으로 노사정위를 탈퇴한 이후 실질적인 복귀나 참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 안에서는 자본과 국가가 합작해 신자유주의 정책을 관철시키는 도구라는 목소리가 크다. 노사정 대표자 간담회를 거부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노사정 대화기구는 오히려 노동자를 탄압하는 도구로 활용됐다”고 말한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 민주노총은 올해 2월 말에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제안한 ‘노사정 사회적 대화 촉진을 위한 소위원회’ 참여를 거부했다.

그렇다고 민주노총이 무조건 거부하는 모양새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돌아보면 민주노총은 노사정위를 거부하면서도 노정 대화틀은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7월29일 노사정 대표자 간담회와 관련해서도 “노사정위를 고집하지 말고 새로운 사회적 논의기구를 만들어 노동현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여기서 헷갈린다. 민주노총이 말하는 '새로운 사회적 논의기구'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현재의 노사정위는 법정기구다. 정부를 대표해 기획재정부 장관과 고용노동부 장관이 나온다. 필요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행정기관의 장을 부를 수 있다. 법 목적을 보면, 노사정위는 노사정이 모여 노동·경제·사회 정책을 '협의'하는 기관이다.

2월 국회 환노위가 제안한 기구의 구조는 좀 달랐다. 여야 각 2인으로 국회 노사정소위를 구성하고, 위원회 회의에 고용노동부 장관, 민주노총 위원장·한국노총 위원장, 경영계 대표를 참여시킨다는 구상이었다.

노사정 3자가 전국 중앙에서 엉키고 부딪히는 '사회적 대화'의 장에서는 결국 힘이 그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 노동운동의 입장에서 볼 때 힘에는 조직동원과 시위 같은 투쟁역량을 넘어 현실에 맞는 정책을 만들고 정세에 맞게 전략전술을 기획하는 역량, 산업 혹은 국가 수준에서 계급 이해가 부딪히는 첨예한 사안에서 더 많은 것을 따낼 수 있는 교섭역량, 논의 과정과 결과를 조직 내부의 논의체계와 의사결정구조에 연결시킬 수 있는 조직역량, 마지막으로 국민여론과 시민사회의 동의와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선전역량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노사정 대표자 간담회를 개최하고 노사정위를 복원하려는 이유는 “노동계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산적한 노동현안에 대한 진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새로운 사회적 논의틀”을 만들 계획이나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 “노사정위 복원이나 국면 전환을 위해 노동계를 정책의 들러리로 동원하려는 발상”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민주노총도 알고 있듯이 박근혜 정권은 민주노총과 대화할 생각이 없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국가가 갖는 고유한 성격을 고려할 때, 오늘날 형편없이 추락한 노동운동의 정치적 영향력과 사회적 발언권을 고려할 때, 이러한 정부의 반노동-친자본 편향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문제는 사회적 대화의 판을 짜고 엮어 가려는 노동운동의 전략과 전술이다. 민주노총이 말하는 “사회적 논의를 위한 새판”의 내용과 형식이 무엇인지 모호하기 그지없다. 공공부문 총파업 주장을 보면 더더욱 감을 잡기 어렵다. 글머리에 썼듯이 현 정세에서 노사정위를 통한 사회적 합의는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사안에 대한 논의나 협의, 무엇보다 정보 습득조차 불가능하다고 선험적으로 예단할 필요는 없다. 이유야 어찌 됐든 현재의 역량과 수준에서 '새판 짜기'가 불가능하다면, 지금 갖고 있는 제도와 자원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다. 노동운동, 특히 민주노총 안팎의 객관적 환경과 주체적 역량을 고려할 때 기존 노사정위를 뛰어넘는 '사회적 논의를 위한 새판'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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