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민영화’ 반대 의견이 폭발적이다. 보건의료노조가 파업을 시작한 지난 22일 하루 동안 의료 민영화 반대 서명에 참여한 시민만 60만명에 달한다. 지난 1월 28일부터 시작한 서명에는 24일 현재 171만명이 참여했다. 당초 100만명 서명을 목표로 했으나 6개월 만에 이를 상회했다. 의료 민영화에 반대하는 국민여론을 재확인 셈이다. 지난 6월 보건의료노조가 발표한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국민 10명 중 7명이 의료 민영화에 반대했다.

공교롭게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변사체 논란이 불거졌음에도 이런 열기는 식지 않았다. 이날(22일)은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 입법예고가 만료되는 날이다. 보건복지부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6만 건의 반대의견이 쏟아졌다. 반대 의견서가 폭주하면서 복지부의 서버는 한 때 다운됐다. 지난해 철도 지킴이를 자처하며 철도노조 파업을 지지했던 국민여론이 되살아난 셈이다.

복지부가 마련한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의 쟁점은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범위 문제다. 개정안에 따르면 영리목적의 의료법인 부대사업 범위가 확대됐다. 한편으론 복지부는‘자회사 설립 운영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병원의 영리자회사 설립을 허용했다. 자회사 설립안은 의료법인을 돈벌이 기관으로 전락시키는 발상이다. 비영리법인을 이윤추구가 목적인 영리법인처럼 운영하라는 식이다.

이런 개정안을 두고 극단적 전망도 나온다. 환자가 적은 병원은 본래의 치료행위보다 부대사업에 치중할 수 있다. 이를테면 건물을 소유한 병원의 경우 병상규모를 줄여 병동은 최소한으로만 유지한다. 남는 공간을 활용해 임대사업을 벌일 것이라는 예상이다. 부대사업 범위가 확대되고, 영리자회사가 허용될 경우 병원이 임대사업에 나설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사실상 영리병원의 전 단계이자 우회로다. 이것이 그저 괴담이길 바라지만 현실성이 없지 않다. 규제완화를 밀어붙이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행보를 볼 때 충분한 가능하다.

복지부의 입법예고는 형식에서도 문제가 있다.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과 영리자회사 가이드라인은 상위법인 의료법에 반한다. 의료기관의 영리행위 추구를 금지하는 의료법을 무력화한다. 그럼에도 복지부는 상위법을 개정하지 않고, 국회와의 논의도 생략한 채 강행하고 있다. 구조엔 무능하고, 규제완화엔 유능한 정부가 또다시 꼼수를 부리고 나선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의료를 하나의 '산업'으로 규정해 영리병원을 허용하려 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적은 공공병원을 확대하기보다 되레 축소하는 데 열을 올렸다. 지난해 공공병원인 진주의료원을 폐쇄한 홍준표 경상남도 도지사의 일방적 행정이 대표적 사례다. 비록 복지부는 반대의사를 표명했지만 경상남도의 탈주를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 민간병원의 경우 대형병원 환자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고, 중소병원은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의원-중소병원-대형병원으로 이어지는 의료전달체계는 무너진 지 오래다. 게다가 정부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기보다 민간의료보험의 영역을 확대하는데 힘을 실었다. 국민건강보험 보장성의 사각지대를 민간의료보험 상품이 차지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의료 민영화 또는 영리화에 대해 반대한다. 그러다 보니 정부는 의료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의료 민영화’가 아니라는 궁색한 변명을 했다. 박근혜 정부는 서비스산업 발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강변했다. 지난해 연말 정부가 수서발 KTX 자회사를 띄우면서 주장한 논리와 유사하다. 영리를 추구하는 자회사를 허용했음에도 민영화는 아니라는 모순된 주장을 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주춤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의료 민영화 정책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가 일깨운 ‘돈보다 생명’이라는 가치를 철저히 외면했다.

보건의료노조는 26일까지 의료 민영화 반대 파업을 벌인다. 노조는 의료 민영화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도록 국회에서 '의료 민영화 방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다수 국민들이 이를 지지하고 있다. 서명운동에 폭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정치권은 이를 외면해선 안 된다. 무너진 의료전달체계를 복구하고, 의료 공공성을 회복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국회가 나서 박근혜 정부의 변칙행정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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