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3일 오후 여직원이 면담 뒤 쓰러진 사실이 알려지자 사무금융노조 ING생명지부가 퇴근시간에 긴급 규탄집회를 열었다. 사무금융노조

"희망퇴직 신청하지 않으면 대기발령 내겠다. 더 이상 여기에 네 자리는 없다. 더 이상 너랑 일하고 싶지 않다."

5년차 이상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있는 ING생명보험에서 부서장 면담에 불려간 하소정(32·가명)씨가 들었다는 얘기다. 두 번째 면담을 마친 지난 22일에는 비슷한 내용의 메일을 받았다. 두 번의 면담에서 퇴직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하씨는 23일 오후 3차 면담에서 같은 얘기를 반복해서 들었다.

세 차례 면담 시달리다 쓰러져

그리고 면담이 끝난 뒤 동료들에게 “더는 못 견디겠다”는 말을 하고는 쓰러졌다. 임신 6주차였던 하씨는 응급실로 실려 갔고, 밤이 돼서야 의식을 차렸다. 한 동료는 “하씨가 어눌해진 말투로 ‘직장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다’는 얘기를 해서 마음이 아팠다”고 24일 전했다.

ING생명이 희망퇴직을 가장한 강제퇴직 논란에 휩싸였다. ING생명은 지난 16일 사무금융노조 ING생명지부(지부장 이명호)에 희망퇴직 실시 사실을 통보하고, 21일부터 신청을 받고 있다. 신청 만료일은 29일이다. 규모는 전 직원의 30%인 270명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말이 희망퇴직이지 직원들은 대상자를 찍어 퇴직강요를 하고 있다는 의미로 ‘찍퇴’라고 부른다. 증거는 지부에 속속 제보되고 있다. 한 직원은 “원격지 발령을 받아도 상관없느냐”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퇴직 강요가 여성, 그것도 육아휴직 중이거나 하씨처럼 임신 중인 여성에 집중되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지부 관계자는 “육아휴직자를 회사로 불러내 ‘복귀해도 네 자리는 없다’는 말로 협박했다는 증언을 여러 건 확보했다”며 “회사가 육아휴직 중인 여직원과 임신한 여직원을 찍퇴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임원과 부서장들이 본래 업무는 하지 않고 퇴직 면담을 하느라 사실상 보험업무는 올스톱 상태”라며 “정문국 사장이 취임한 뒤 한 일은 경영이 아니라 구조조정뿐이었다”고 비판했다.

MBK파트너스 인수 당시 약속 뒤집나

사무금융노조 관계자는 “정 사장은 알리안츠생명에서부터 온갖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며 구조조정 칼날을 휘둘렀던 악명 높은 인물”며 “취임을 막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ING생명은 “강제퇴직은 없다”고 부인했다. 홍보담당자는 “면담은 회사에서 지정한 부서를 제외하고 전 직원을 대상으로 진행한다”며 “희망퇴직 제도를 안내하고, 퇴직 의사를 확인하는 수준에서 이뤄진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발령 문자 등에 대해 “희망퇴직 뒤 부서가 바뀔 수 있다는 얘기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논란으로 MBK파트너스가 지난해 11월 ING생명을 인수하면서 인위적 인력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고용안정협약을 승계하겠다던 약속을 뒤집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한편 한국여성단체연합·여성의 전화 등 여성단체들은 25일 오전 MBK파트너스가 입주한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여성 강제 구조조정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연다. 야당 국회의원들도 같은날 오전 국회에서 ING생명을 비롯한 HMC증권·대신증권의 강제 구조조정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제2금융권 구조조정이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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