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훈 기자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50대와 20대가 만나 늙은 대한민국을 젊게 바꿔 보자고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오마이뉴스>가 지난 17일 저녁 서울 마포구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젊은 국가>(매일노동뉴스) 저자 박세길씨와 20대 청년세대가 함께하는 ‘새로운 출발선에 선 5·18 세대와 2030세대와의 대화’ 토크 이벤트를 열었다. 역사연구가 박세길씨는 <다시쓰는 한국현대사> <한국경제의 뿌리와 열매> <자본주의 그 이후> 등을 집필했고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을 지냈다.

그는 최근 <젊은 국가>를 통해 “5060세대가 새로운 시대를 열지 못한 무능함과 신자유주의에 편승한 무책임이라는 빚을 갚는 길은 젊은 세대로의 세대교체를 통해 젊은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라며 “이것이 정체된 한국 사회가 살 길”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인생 2막, 정년 50세’를 제시했다. 정년을 50세로 앞당기고 그 후의 삶을 새롭게 개척하는 인생 2막을 여는 방식으로 과감한 세대교체를 이루자는 것이다. 5060세대가 떠난 자리에 젊은 세대가 들어가 대한민국을 이끌어야 한다는 도발적인 내용이다. 그렇지 않으면 '늙은 대한민국'의 침몰을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이 저자의 경고다.

이날 토크 이벤트에는 저자와 같은 50대인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20대인 권지웅 민달팽이 유니온 위원장이 함께했다. 은 의원이 사회를 맡았다.

다른 나이, 그러나 같은 고민

은수미 : 저자의 20대 시절부터 얘기해 보자. 저자가 20대에 쓴 <다시쓰는 한국현대사>는 1988년 출판 후 80~90년대 대학생 필독서가 된 한편 역사왜곡 논란 등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직후 갑자기 다시 팔리기도 했다. 어떻게 이 책을 쓰게 됐나.

박세길 : 대학생 때 구속돼 옥중에서 우연히 한국현대사 자료를 보고 역사 이야기를 써 보자고 생각했다. 당시 감옥에서는 집필활동이 허용되지 않아 볼펜심만 얻어다가 우유팩 껍질을 벗겨 만든 종이에 글을 썼다. 한 50장 정도를 써서 감방 내 양심수들에게 보여 줬더니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현대사로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 낼 수 있겠구나 싶었다. 출소 후 그 책을 썼고 그게 소위 ‘대박’이 나면서 이름을 알렸다. 영등포산업선교회를 통해 노동자 역사교육을 진행하면서 본격적으로 사회운동을 시작했다.

은수미 : 20대인 권지웅 위원장도 저자처럼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포부가 있지 않나.

권지웅 : 민달팽이 유니온이 다루는 문제는 불평등, 특히 2030세대의 주거불평등이다.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너무 많은 것이 미리 결정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앞으로 나의 다음 세대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은수미 : 저자가 책을 써서 ‘선생님’으로 불릴 당시 나는 ‘수감번호 601번’으로 불렸다.(웃음) 나도 20대 때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나의 다음 세대는 노동인권 침해나 불평등 문제가 없기를 바랐다. 그런데 권 위원장이 그 나이에 불평등 문제로 싸우는 것을 보니 미안하고 부끄럽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나이 차이가 나도 같은 목표로 함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기훈 기자


“5060세대 낡은 삶 벗어나 세대 간 상생 추구해야”

은수미 : 이제 현재로 넘어가자. 권 위원장은 <젊은 국가>를 읽어 보니 어땠나.

권지웅 : 최근 세대를 주제로 한 책이 많이 나온다. 기성세대가 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 세대 문제가 사회적 화두가 되고 따뜻한 성찰도 보여 반갑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청년이 말해야 할 담론마저 기성세대가 차지하는 모순도 느껴진다. 더 똑똑한 기성세대가 청년이 말하도록 도와주기보다는 문제를 끊임없이 분석·주장하는 것이 청년세대가 다시 서는 데 큰 도움이 될까. 그런 두 가지 감정이 든다.

은수미 : 저도 우리 5060세대가 그냥 비켜 주기만 하면 되느냐는 고민이 든다. 현재 스스로 말하기도 힘든 조건의 2030세대가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함께할 다른 방안을 내놔야 하는 것은 아닐까.

또한 이러한 반성을 5060세대 전체의 문제로 보는 게 맞을까 의문스럽다. 통계적으로 한국에서 58세를 꽉 채워 정년퇴직하는 사람은 5%에 그친다고 한다. 대부분은 지금 2030세대처럼 비정규직으로 살면서 간신히 집 한 채 갖고 집값이 안 떨어지기를 바라며 교육비와 생활비를 감당한다는 얘기다. 과거에 기회를 부여받고 오피니언 리더로 자리 잡은 소수의 반성문이 세대 전반의 얘기가 될 수 있을까.

박세길 : 87년 민주화투쟁에 이어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각종 문제를 전부 젊은 세대에 떠넘겼고 그것이 구조화됐다. 과거 민주화투쟁에 헌신한 사람들조차 50대를 넘어가며 급격히 보수화됐다. 부동산이 대표적이다. 그러다 보니 민주노총이 청년실업 해소를 말해도 그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할 정도다. 모든 문제를 ‘우리 세대’로 뭉뚱그리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적어도 5060세대가 간과했던 문제들을 저마다의 지점에서 성찰해 보자는 고민거리를 던지려고 했다.

5060세대는 낡은 삶을 벗어나 세대 간 상생을 추구해야 한다. <젊은 국가>에서 말한 ‘인생 2막’에는 엄격한 전제가 있다. 그 삶은 과거보다 나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저출산 고령화 사회라는 우리 사회의 프레임 자체를 통째로 바꿔야 하는 거시적이고 장기적 과제가 제기된다. 수많은 법·제도, 정책적 노력도 필요하다.

지금 50대 노동자들은 굉장히 피곤하다. 비록 시간이 걸리고 근본적 사회구조의 변화를 전제하지만 이제는 다른 방향을 추구할 때가 되지 않았나. ‘나는 비정규직으로서 제대로 못 누리고 살았으니 기존 산업사회의 틀 안에서 60세까지 버텨 봐야겠다’고만 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차별을 야기할 뿐이다.

“2030세대 미래 준비하며 역사의 주역으로 데뷔하길”

권지웅 : 세대 간 상생이라는 대목에 공감한다. 어느 날 어머니가 “그래도 너희는 해외여행 마음대로 하잖아. 우리 때는 못 그랬어”라고 하셨다. 5060세대는 2030세대가 자신들의 고충·희생을 잊고 배척하려는 듯해 불안감을 갖는 것 같다. 우리는 그것을 존중하면서 보통의 삶을 살기 힘든 현실을 함께 해결하자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정부가 청년들을 위한 행복주택을 서울 목동에 짓는다고 했더니 목동 주민들이 집값 떨어진다고 결사적으로 반대한 적이 있다. 4억원짜리 집을 힘들게 지켜 첫째 자녀에게 주고 나면 둘째 자녀에게는 뭘 줄 것인가. 우리는 기성세대의 자산이 줄기를 원하는 게 아니다. 개인·가족들이 각자 감당해야 했던 문제를 국가 차원에서 해결하는 복지체계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큰 틀에서는 50대나 20대나 입장이 다르지 않다.

박세길 : 80년대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노동자를 역사의 창조자로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만난 노동자들은 순응적이고 모순투성이였다. 투쟁을 거치며 변화한 것이다. 2030세대도 비슷한 것 같다.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 이들은 지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등 다양한 형태로 긍정적 메시지를 사회에 던졌다. 윗세대가 이를 제대로 인식하고 젊음을 마음껏 발산하게끔 노력하고 있는지 근본을 되짚어야 할 때다. 2030세대가 미래를 준비하며 새로운 주역으로 역사의 무대 앞에 당당히 데뷔하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에서 이것은 절박한 과제다.

정리=윤성희 기자

사진=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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