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영 기자

"○○○ 사업장 임금협상 타결 소식이 들리던데 합의안 가지고 있으면 좀 보여 주세요."

기자가 한 상급단체 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했다.

"말도 마요. 임단협 타결돼도 상급단체에 보고를 안 해요. 합의안 구경도 못했어요."

전화기 너머 한숨을 내쉬는 상급단체 간부의 목소리에 답답함이 묻어난다.

모든 사업장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올해는 그런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통상임금 범위를 재조정한 사업장치고 합의 내용을 가감 없이 공개하는 곳은 드물다. 노든, 사든 숨기고 감추기에 급급하다. 왜 그럴까.

노사관계 전문가들은 지난해만 해도 통상임금이 누더기 같은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지렛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상임금이 이슈화하면 어떻게든 임금체계를 손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조나 사측 관계자들도 이런 전망에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지난해 말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오고, 노동부가 올해 두 번에 걸쳐 임금 관련 행정지침과 매뉴얼을 발표한 뒤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일례로 <매일노동뉴스> 지면에 소개됐던 경기도 성남의 S전자 사례를 보자. 그간 기본급의 800%를 1년에 8차례 상여금으로 지급했던 S전자는 올해 임금협약을 맺으면서 상여금을 없애고 8개의 복리후생수당을 신설했다. 1월 설날휴가비, 2월 체력단련비, 3월 자기개발비, 5월 근로자의 날 기념비, 7월 하계휴가비, 8월 추석휴가비, 9월 건강관리비, 11월 김장비로 명칭을 바꾼 것이다. 동시에 퇴직자 일할지급 규정은 재직자에 한해 지급하도록 변경했다. 법원이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하기로 정해진 복리후생비는 고정성이 결여돼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을 악용한 것이다.

'노동의 대가'라는 임금이 실제 노동의 가치를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해지고 있다. 심각한 것은 임금협상에서 통상임금을 정리한 사업장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올해 5월 현재 임금협상 타결률이 역대 최저치라는 사실과 지난달부터 급증하고 있는 통상임금 소송은 상당수 사업장에서 노사가 자율적으로 통상임금 문제를 매듭짓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노사가 임금협상을 한 뒤 법정에서 다시 공방을 벌이는 관행이 고착화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될 지경이다.

대법원의 모호한 판결과 노사에 공정하지 못한 노동부의 행정지침, 여기에 현장과 동떨어진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이 지금의 현실을 초래했다. 당장 눈앞의 손익계산서만 따지고 있는 노사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반기 국회가 새롭게 구성됐다. 환경노동위원회 진용도 짜여졌다. 상반기에 시간만 끌다 미뤄 놓은 숙제를 해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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