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지난달 11일 정부가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목적 자법인 설립 운영에 관한 가이드라인'과 병원 부대사업 확대를 골자로 한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의료 민영화' 논란이 뜨겁다. 노동계는 이를 의료행위의 철학적 근간을 '생명'에서 '돈벌이'로 옮긴 상징적인 사건으로 보고 있다. 시행규칙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의료기관이 '제2의 세월호'가 될 것이란 절망적인 우려까지 나온다. 매일노동뉴스와 보건의료노조가 박근혜 정부 의료정책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좌담회를 마련했다. 특히 매일노동뉴스와 보건의료노조 공동기획으로 지난 3월부터 7월까지 총 23회에 걸쳐 게재된 ‘연속기고-의료 민영화’를 총괄 정리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좌담회는 지난 8일 오후 서울 서교동 매일노동뉴스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김창엽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이사장·정소홍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공공의료팀장·유지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정남 중앙대의료원지부장·정연준 한국원자력의학원지부장이 참석했다. 사회는 박성국 매일노동뉴스 대표가 맡았다.
 

박근혜 정부, 의료를 산업으로 인식

사회 : 그동안 매일노동뉴스에서 23회에 걸쳐 여러 전문가들이 기고를 통해 의료 민영화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다. 박근혜 정부의 의료정책이 과거 정권과 비교되는 특징이 무엇인지 김창엽 이사장이 포문을 열어 달라.

김창엽 : 한국 자본주의 자체가 갖고 있는 문제는 98년 IMF 위기 이후 더 심화돼 왔다. 그런 상황에서 의료산업 자체가 새로운 성장 동력이다, 경제산업의 먹거리다 하는 얘기가 나왔다. 구체적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돼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산업적인 기대를 받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박근혜 정부가 정치·사회적으로 받는 압력은 크게 두 가지다. 경제적인 새로운 모델을 찾으라는 것과 복지확대다. 복지 압력을 받고 있으면서 경제성장의 모델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과거에 비하면 의료를 산업적인 측면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강화됐다.

사회 : 박근혜 정부의 이른바 의료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돌발적인 사건이 진주의료원 폐업이라고 본다. 경상남도와 보건복지부가 제스처가 달랐는데,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유지현 위원장이 짚어 달라.

유지현 : 박근혜 정부 출범 다음날인 지난해 2월26일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진주의료원을 폐업하겠는 방침을 밝혔다. 5월 말 공식적으로 폐업이 이뤄졌다. 이후 경상남도 서부청사로 활용하겠다는 말이 나오더니 도민 여론이 안 좋으니까 진주시보건소를 이전하겠다는 얘기도 나온다. 현재도 복지부는 이 같은 방안에 찬성하지는 않는다. 복지부는 공공의료시설로 가야한다는 입장인데, 박근혜 정부도 말은 공공병원의 적자는 착한 적자라고 얘기한다. 복지부 장관이 다시 문을 열어라 할 수 있는 권한도 있는데 청와대의 의지가 있다면 왜 문을 못 열겠나. 홍준표 도지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공공병원 30% 확대 공약을 했지만 5년 동안 이행이 안 됐다. 이명박 정권으로 넘어간 뒤에는 공공병원 비중이 줄어들었다. 현재 병원수 대비 6%, 병상수 대비 10%에 그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안 되는 공공병원을 적자 때문에 문을 닫는단다. 그것도 도지사 하나 때문에. 책임은 박근혜 정부가 있다.

사회 : 이정남 지부장과 정연준 지부장도 공공병원에서 오지 않았나.

정연준 : 한국원자력병원을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다. 특히 젊은층이 잘 모르더라. 우리는 여러 어려운 여건 속에서 공공의료를 지속적으로 수행해 왔다. 기관의 역사가 50년이나 됐다. 공공병원은 특히나 구조적으로 흑자를 내기 어렵다. 그런데 적자가 나면 모든 책임을 직원에게 전가시킨다. 제가 볼 때 새로운 공공의료기관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있는 공공병원을 어떻게 발전적으로 이끌고, 확장시켜 나가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자본의 논리 때문에 공공병원을 확대하기는 어렵고 돈벌이 병원을 늘려야 한다? 지금 있는 공공병원을 어떻게 더 확충하느냐가 현재 필요한 고민이라고 본다.

의료 민영화 기재부 기획하고 복지부는 거수기 노릇

사회 : 공공의료 확대와는 반대로 정부가 민영화라고밖에 볼 수 없는 의료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게 기획재정부 정책에서 비롯됐고, 복지부가 거수기 노릇을 한다는 비판도 있다.

정소홍 :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핵심적으로 내세운 것이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 민영화 정책을 내세워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이전부터 의료를 산업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었다. 노무현 정부 때도 그랬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여론의 반대와 사안의 중대성 때문에 이를 감히 건들지 못했다. 병원의 산업화를 이루고 싶었던 정권이 많았지만 이를 묵혀 두고 있었다. 그런 것이 지금 터진 게 아닌가 싶다. 제가 경제분야 전문가는 아니지만 한동안 저성장을 겪지 않았나. 아까 잠깐 얘기가 나왔지만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에서 정부가 가장 손쉽게 꼽은 것이 의료가 아닌가 싶다. 복지부가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과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을 때 기재부에 휘둘리는 것이 싫어 이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김창엽 : 경제부처는 성장산업에 대한 일종의 신앙 같은 것이 있다. 이게 민간기관들이 갖고 있는 압력을 어떻게 해소할 것이냐 하는 문제로 이어졌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에서 지금의 저수가 구조로는 민간이 충분히 잘할 수 없기 때문에 길을 열어 줘야 한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번에도 유심히 자료를 보면 중소병원의 살 길을 터줘야 한다는 식의 표현이 곳곳에 있다. 수가가 낮다, 중소병원 어렵다, 이런 지적에 대한 복지부 나름의 대응이 필요했고, 그런 게 경제부처의 압박과 더해졌다. 의료관광도 마찬가지다. 복지부가 내놓은 의료정책을 보면 그동안 공적 체제와 사회보험을 중심으로 의료가 이뤄져서 민간기관이 어려우니 길을 터 줘야 한다는 의식이 조금씩 숨어 있었다. 이번 정책에도 이게 일부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이정남 : 결국 강한 자들이 살아남는 제도를 만들었다. 정부는 중소병원을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말뿐이다. 결국은 독식을 방조한다고 본다. 생명과 건강은 결코 돈으로 살 수도 없다. 그런데 의료소비자와 환자들의 피를 빨아서 돈을 벌라고 한다. 아무리 경제와 자본의 논리를 갖다 대도 아픈 환자들을 대상으로 병원에 돈을 벌게 해 주겠다는 발상은 그 자체로 안타깝다. 경제를 활성화시키려고 한다면 보건의료 인력 확충이 우선시돼야 한다. 의료인력 확충으로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현 정부의 의료정책은 약자를 더욱 약자로 만드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사회 : 원격진료 등에 대한 사안으로 의사협회가 먼저 정부에 반기를 들었다. 의약분업 이후에 의사들이 진료를 거부한 사태는 처음 봤다.

유지현 : 최근 의사협회 보궐선거에서 회장이 당선됐다. 내년 3월까지 임기다. 진료거부 상황을 보면 노환규 전 회장이 보수화된 구조 속에서 뭔가 좀 해 보려고 했던 거다. 국민과 같이 호흡하지 않고 의료제도를 바꿔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저는 이런 생각은 좋은 거라고 본다.

노 전 회장 탄핵으로 다시 보수적인 분위기로 가고 있다. 대의원들이 의사협회 회장을 선출하는데, 시도의사회 별로 성향과 대정부 투쟁에 대한 인식도 다르다. 진료거부 이후 엄청난 탄압이 가해졌고 각개격파가 되는 분위기였다. 이를 감안하면 새 회장이 정책적으로 추진력을 발휘하기 어려워 보인다. 기존 의사협회에 반기를 들었던 사람까지 끌어안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 때도 단식투쟁 때도 노환규 전 회장이 찾아왔다. 경남도의사회는 폐업을 찬성했는데, 노 전 회장은 진주의료원을 다시 열라는 성명도 발표했다. 최소한 얘기는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영리병원과 자회사 설립은 막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는데 탄핵 사건이 터지면서 다시 이런 흐름을 만들기는 힘들어 보인다. 정부가 노조와 의사협회가 다시 손을 잡느냐 마느냐 주시하고 있다. 어려워 보이지만 의사협회가 다시 투쟁에 나서길 기대한다. 하반기 10만 궐기대회를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김창엽 : 의사협회는 한마디로 얘기하면 불안정하게 동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태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본다. 의사협회는 개업의사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현재 정부의 의료정책들은 개업의사들의 이해와도 관련 있지만 연관성이 약하기도 하다. 이번에 원격진료라는 것이 포함되면서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가 된 것처럼도 보였지만 크게 보면 정부 정책에 대한 불안정한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많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영리자회사 허용은 의료법 위반”

사회 : 정 변호사가 의료 민영화와 연관된 기재부와 복지부 발표 내용과 차이점을 소개해 줬으면 좋겠다.

정소홍 : 요약을 하자면 병원 부대사업을 확대하고 영리사업을 할 수 있는 자회사를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의료법인 간 인수합병도 허용하겠다고 한다. 복지부가 이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외부 의견을 수용해 건강기능식품이나 의료기기 판매 등은 제외했지만 큰 틀에서 보면 문제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병원 영리자회사 설립을 허용해 준 것이다. 기재부가 투자활성화 정책을 발표할 때 자회사의 성공적인 예로 안연케어와 헬스커넥트를 들었다. 하지만 안연케어는 복지부가 문제를 지적한 회사였고 헬스커넥트는 며칠 전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설립 자체가 위법이라는 법적 해석을 내놨다. 그동안 복지부는 제주도 영리병원 승인 요청을 유보하는 등 적어도 말로는 '의료의 기본은 공공성'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복지부가 기재부에 끌려가는 것인지 아니면 태도를 바꿨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재부가 제시한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유지현 : 과거 전재희 복지부 장관 시절에는 복지부와 기재부가 영리병원을 해도 된다, 안 된다며 싸웠는데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김창엽 : 정부조직 간의 갈등이나 불협화음은 항상 있을 수 있지만 국정기조가 중요하다. 투자활성화 대책에서 박근혜 정부의 모든 정책 드라이브가 걸려 있다고 본다. 복지부 관료들은 우리가 이렇게 막으려고 애쓰는데 하며 억울해할지도 모르겠지만 개별적인 태도는 중요하지 않다.

대형병원은 활개치고 중소병원은 죽을 수밖에 없다

사회 : 정부는 서비스산업을 활성화하고 중소병원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현장의 의견은 어떤가.

이정남 : 과연 살릴 수 있을까. 대형병원이 더 활개를 칠 것이고, 그쪽으로 환자가 더 몰리고, 중소병원은 고갈될 것으로 본다. 중소병원은 자회사를 만들 여력도 없다. 직원들 인건비 주기도 모자란 병원이 많다. 중소병원을 찾는 환자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그곳에 자회사가 세워진다고 해서 환자 보호자가 얼마만큼 소비할지도 모르겠다.

유지현 : 조금 규모가 되는 중소병원이 있다고 치자. 한 개의 병동에 사람이 잘 안 오면, 문을 닫고 그 자리를 임대해 줄 수 있게 된다. 병원이 병원이 아닌 게 된다.

이정남 : 그렇게 돼서 발길을 돌린 환자들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고, 대형병원 쏠림 현상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김창엽 : 하나가 풀리면 그 다음을 푸는 것은 굉장히 쉽다. 복지부는 여러 안전장치를 마련했다고 하지만 가이드라인에 포함된 숫자는 조정하면 그만이다. 그것을 조정할 때는 사회적 의제도 되지 않을 것이다.

사회 : 요새 병원을 보면 이미 부대사업을 하는 곳이 많다. 이미 하고 있는데 또 허용하냐며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유지현 : 현재는 사업범위가 정해져 있다. 의료법에는 환자와 직원들의 편의를 위한 것에 한해 부대사업을 할 수 있다고 돼 있고, 그 아래 시행규칙에 7가지가 명시돼 있다. 그런데 이번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부대사업 범위가 큰 폭으로 늘어난다. 마음만 먹으면 큰 리조트를 만들어서 온갖 사업을 하고, 구석에 작은 병원 하나만 만들어도 된다.

사회 : 중소병원 얘기를 더 해 보자. 중소병원 고사 원인은 뭐라고 보나.

이정남 : 대형병원에서는 소위 말하는 스타 의사를 영입하려는 경쟁이 무척 치열하다. 스포츠 선수를 스카우트라도 하는 듯하다. 이런 의사들이 움직이면 환자들도 함께 움직인다. 대형병원이 처음 자리 잡기 위해 시작했던 영입경쟁으로 환자 쏠림 현상이 심화된 것이 원인이다.

정연준 : 제가 95년에 입사했는데 그때만 해도 원자력병원이 잘나갔다. 그런데 이후 삼성아산병원 등 빵빵한 병원 5곳에서 의사들을 모두 데려갔다.

김창엽 : 정부가 의료전달 체계를 제대로 조정하지 못한 탓이다. 의원·중소병원·종합병원 등 규모 따른 의료전달체계 흐름을 조정해야 하는데 현재 중소병원의 역할이 없다. 정부가 이에 대한 반성과 조명 없이 중소병원을 살려야 한다며 현재와 같은 정책을 내놓는 것은 뿌리를 건드리지 않고 결과물을 달리 하겠다는 것과 같다. 정부가 중소병원을 살리겠다고 나선 것은 옳은 일이다. 그러면 본질적인 가치인 의료활동을 통해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줘야지 어떻게든 돈을 벌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유지현 : 의료전달체계 이미 무너진 지 오래라서, 요즘은 의료공급 체계를 다시 정비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국내 의료시스템을 보면 원자력의학원·중앙의료원·보훈병원·산재의료원 등 각각의 역할이 있는 여러 공공병원이 있다. 그런데 기관마다 소관 부처가 다 제각각이다. 그런 걸 정부에 얘기하면 부처 위의 부처인 기재부가 ‘기능이 중복이 됐네, 합쳐’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의료를 바라보는 철학의 문제와 연관된다. 박근혜 정부가 공공기관 정상화와 맞물려 모든 것의 규모를 줄이고 민영화시키려 한다. 의료 역시 같은 테두리에서 바라보고 있다. 각각의 목적을 갖고 있는 의료기관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그 과정에서 의료공급체계 역시 바로 설 수 있다.

사회 : 현장에서 바라볼 때 공공의료 기관이 제 역할을 못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정연준 : 일단 구조 자체가 수익을 낼 수 없는 한계가 있고, 이런 상황에서 자꾸 돈을 벌라고 해 과잉진료가 발생한다. 원자력의학원은 2007년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독립 출범하면서 연구소와 진료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 틀에서 공공의료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세월호 참사 이후 고리원전의 안전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그렇게 되면 안 되겠지만 만일 사고가 난다고 가정하면 끔찍하다. 의료원 안에 국가 방사선 비상진료센터가 있긴 하지만 제 기능을 할까 의심스럽다. 인력 부족으로 비상시 많은 환자를 감당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 공공의료 지원이라는 본래적 역할에 대한 고민 없이 단지 돈 없으니 줄여라, 없애라 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사회 : 다시 가이드라인과 시행규칙 얘기를 해 보자. 혹시 여기에 담긴 내용 중 외국에서 벤치마킹한 게 있나.

정소홍 : 벤치마킹을 했다기보다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영리병원체계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법상 병원은 영리행위를 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미국을 대놓고 따라하지는 못하고, 중간 단계로 영리자회사와 부대사업 확대의 길을 택한 것이다. 나라마다 제각각 특유의 의료에 대한 여러 규제가 있지만 미국처럼 규제가 없는 곳은 드물다.

사회 : 형식과 절차에 대해 얘기해 보자. 노조는 시행규칙과 가이드라인이 상위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유지현 : 복지부 장관을 고발했다. 의료법에는 분명히 의료기관의 영리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 있다. 가이드라인과 시행규칙 개정은 이를 위반하고 있다. 복지부 장관은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주무장관인데 이를 추진하는 것은 직무유기이고 직권남용에 해당한다. 부대사업은 상위법에 환자 편의에 한해 허용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번에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국제회의업도 부대사업에 포함됐다. 이게 환자 편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정소홍 : 행정행위가 법률에서 위임한 범위를 초과하지 못하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가이드라인은 위법성이 굉장히 많다. 넓게 보면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제한하는 것인데 국회를 거치지 않고 추진했다. 복지부가 법률 검토도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김창엽 : 행정부가 더 힘을 쓰는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너무했다. 이번 사태를 거창하게 얘기하면 현 정부 들어 지속적으로 보이는 민주주의 후퇴를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 행정부는 기술적이고 전문적인 것을 시행규칙으로 처리해야 하고, 국민과 사회구성원의 생활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서는 국회가 처리해야 한다. 정부가 기술적으로 이를 피해가려 했다.

사회 : 박정희 시대에나 가능했던 행정독재의 부활일지도 모르겠다. 국회나 다른 직능단체 반응은 어떤가.

유지현 : 야3당은 모두 반대하고 각각 의료 민영화 반대 특별위원회가 꾸려졌다. 새누리당은 속내를 감추고 있다, 최근 대변인을 통해 정부 정책에 대한 발목잡기라고 했다. 의사협회를 제외한 다른 보건의료 직능단체와 함께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정남 : 의사협회는 투자활성화 방안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내심 기대하고 있지 않나 싶다. 병원현장에서 일하며 이번 사태를 보는 느낌은 남다르다.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흉부외과 등에는 나날이 지원자가 사라지고 성형외과는 호황을 누린다. 의료의 상업화가 가속되고 있다.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국가적 노력이 필요하다. 동네의원과 중소병원, 특성에 따른 공공병원이 무너지면 그 피해는 국민 전체에게 돌아간다. 모든 동네 빵집을 소위 말하는 P빵집이 집어 삼키는 상황이 의료 현장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다행인 건 현장에서 서명운동을 하면서 보면 국민이 이번 사태에 대해 굉장히 우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미국식 의료제도가 도입되고, ‘정말 돈이 없으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모두 힘 모아 박근혜 정부 의료정책 저지에 나서야 한다”

사회 : 박근혜 정부의 의료정책을 저지하는 것이 가장 시급할 것 같다. 마무리 발언 부탁드린다.

김창엽 : 이미 정부가 저지른 일에 대해 대안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기존의 의료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행규칙과 가이드라인이 나와 버렸다. 반복되는 얘기지만 모든 보건의료제도를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지런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의료정책을 결정하는 국면마다 공공성을 강화하려는 실질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 의료가 지향해야 할 지점은 민주적 공공성이다. 국민의 생각과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는 가운데 의료정책을 결정하고 공공성을 지향해야 한다.

정소홍 : 사실 외국에서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을 부러워하는 점도 있다. 어느 외진 곳이라도 전문의가 있다는 점이다. 보건소 말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뭔가 획기적인 개선책이 나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보다는 이런 장점에 주목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대안을 찾을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정부가 산업적인 면이 아닌 전체 국민의 생명이 걸려 있는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철학적인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정연준 : 공공의료 축소 자체가 또 하나의 의료 민영화라고 본다. 지금 현재 있는 공공의료를 확충하기는커녕 축소하고 필요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가장 무서운 것은 어느 순간 국민 모두가 이렇게 가는 게 자연스럽지 않나 인식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우리나라 국민성은 훌륭하지만 안타까운 점이라면 잘 잊는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안전과 생명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사고 후 많은 사람들이 ‘만약에’를 외치며, 더 많은 소중한 생명을 구하지 못해 안타까워했다. 또다시 ‘만약에’라는 말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이정남 :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선 의료기관의 적절한 인력 수급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력이 부족하면 환자가 죽을 수도 있다. 국가가 진심으로 국민의 생명을 중요시한다면 적정인력 수급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어려워서 병원을 떠났던 인력들이 다시 돌아오고, 그게 병원의 경쟁력 강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

사회 : 유지현 위원장의 향후 투쟁 계획은.

유지현 : 먼저 현재의 한국 보건의료제도는 굉장히 비정상적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그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는 규제를 암 덩어리에 비유하며 여러 착한 규제들을 없애려 한다. 비정상적인 의료시스템을 더욱 비정상으로 만들려 한다. 노조가 지금까지 주장했던 것들은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한 것들이다. 노조의 역사 자체가 영리병원과의 싸움이다. 시행규칙 입법예고 기간이 이달 22일까지다. 여기에 맞춰 전면파업에 돌입할 것이다. 현재의 정책이 시행될 경우 병원에서 제2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 정부정책을 저지하겠다.

사회 : 세월호 참사 전후가 달라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 점에서 노조의 의료 민영화 저지 투쟁이 중요하다. 그런데 노동계의 이슈가 통상임금에 몰려 있는 측면도 있다. 고립을 피하기 위해서 연대가 필요하다. 지난해 연말 철도 민영화 저지 파업 때 국민이 보여 준 관심을 생각했을 때 노조의 투쟁에도 희망이 있다고 본다. 박수로 마치자.

정리=양우람 기자
사진=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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