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3일 독일 연방의회가 재적 601표 중 535표의 찬성으로 최저임금제 법안을 통과시켰다. 중간임금에 해당하는 시간당 8.5유로, 한국 돈으로 1만1천660원 정도다. 독일노총(DGB)은 나이·성별·출신에 상관없이 누구나 8.5유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독일사용자연맹(BDA)은 법정 최저임금에 차이를 둬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지불능력이 취약한 산업에 일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노동조합은 최저임금이 국민소득을 늘려 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해 왔고, 사용자는 최저임금제로 기업이 파산해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반박해 왔다.

2015년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되는 최저임금제는 최대 370만명(전체 노동력의 9%)이 혜택을 누릴 것으로 전망되지만 일부 산업에서는 2년간 유예됐다. 신문배달노동자와 계절노동자 그리고 인턴은 8.5유로를 적용받지 못한다. 때문에 화이트칼라 노동조합인 베르디(Ver.di) 위원장인 프랑크 브시르스크는 연방의회가 “선거 사기극”을 벌여 “최저임금제의 사지를 잘라 버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시장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을 제외시킴으로써 최저임금제의 본령을 훼손했다는 비판이다.

현재 독일 정치는 지난해 12월 출범한 기독민주당과 사회민주당의 대연정으로 굴러간다. 2005년부터 독일 총리를 맡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은 기독민주당 소속이다. 당초 그녀는 전국 단일의 최저임금제에 반대했다. 산업과 부문에 따라 차이를 둔 최저임금을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전국에 하나로 적용되는 제도를 도입했으니, 메르켈 총리로서는 입장에서 큰 변화를 보인 셈이다. 사회민주당 소속으로 노동사회부 장관인 안드레아 나흘레스는 "저임금 부문에 유예기간을 둔 것은 필요한 조치"였다며 “10년 동안 끌어온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고, 수백만 노동자가 보다 공정한 임금을 받게 될 것”이라고 주무장관으로서 힘을 실었다.

독일이 최저임금제를 도입함으로써 유럽연합 28개 나라 중 전국 수준의 최저임금제를 두고 있지 않는 나라는 덴마크·핀란드·스웨덴·오스트리아·이탈리아·키프로스 여섯 곳만 남게 됐다. 참고로 북유럽 나라인 노르웨이는 최저임금제를 도입하지 않았지만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니다.

최저임금제가 없는 나라들의 주요 특징은 노조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이 높다는 점이다. 2009~2011년 단체협약 적용률 통계를 보면 오스트리아 97%, 덴마크 85%, 핀란드 90%, 스웨덴 91%, 이탈리아 85%, 노르웨이 74%다.

반면 독일은 58%에 그쳤다. 같은 기간 한국은 높게 잡아 12% 안팎이었다. 법으로 부문별 최저임금제를 채택한 키프로스는 단협 적용률이 52%였다.

독일의 최저임금제 도입과 관련해 우리 언론에서 재미난 일이 있었다. 연합뉴스가 “(최저임금제) 도입에 반대해 온 독일무역협회(DGB)의 라이너 호프만 회장도 ‘최저임금제가 일자리를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유럽의 이웃 국가들과 미국 등에서 입증됐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오보를 낸 것이다.

DGB는 독일무역협회가 아니라 독일노총이다. 라이너 호프만은 무역협회장이 아니고 독일노총 위원장이다. 독일 기업들의 수출입을 돕는 독일무역협회는 DGB가 아니라 1916년 출범한 BGA다.

연합뉴스가 노총을 무역협회로 오역한 이유는 간단하다. 노동조합을 뜻하는 Trade Union을 무역협회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Trade는 무역이라는 뜻도 있지만, 일자리·직업이란 뜻도 있다. 그래서 Trade Union은 같은 일을 하고 비슷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맥락에서 노동조합이 되는 것이다. 이런 사정에 서툴다 보니, 연합뉴스는 세계무역기구인 World Trade Organization의 trade처럼 무역으로 해석했고, 그 결과 the Confederation of German Trade Unions가 독일노총이 아닌 독일무역협회로 둔갑한 것이다. 북한에서는 노동조합을 직업동맹이라 부른다. 직업동맹은 trade union이 갖고 있는 어감을 잘 드러낸 번역이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연합 국가들이 도입한 최저임금제의 특징은 지역과 산업에 따라 다른 금액을 적용하는 분리형이 아니라 모든 지역과 산업에 동일한 금액을 적용하는 통일형이라는 점이다. 아시아에서 한국처럼 전국에 통일적으로 적용되는 최저임금제를 채택한 나라는 드물다. 베트남은 지역별·산업별·부문별로 따로 논다. 스리랑카는 직업별·산업별·부문별로 따로 논다. 인도네시아는 지역별·직업별로 따로 논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직업별·지역별·부문별로 따로 노는 데 더해 전국 최저임금도 정해 놓았다. 복잡하기 그지없다. 일본은 지역별로 최저임금이 다르다. 말레이시아가 올해 1월부터 최저임금을 도입했는데 우리나라처럼 통일형, 즉 전국 단일 기준이다. 단순할수록 좋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제는 상당히 앞선 제도다.

독일의 최저임금제 도입에는 조직노동운동의 전반적인 퇴조가 배경에 깔려 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에 이어 독일까지 최저임금제를 도입했지만, 북유럽 노동운동은 최저임금제에 여전히 부정적이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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