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설마했다. 전국교직원노조가 아무리 보수정부의 눈엣가시라고 해도 법적 지위를 박탈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시행령으로 전교조를 법 밖으로 밀어냈다. 법원이 전교조의 손을 들어줄 때까지 전교조는 법외노조로 남게 됐다.

김정훈(50·사진) 전교조 위원장은 법적 지위를 상실한 전교조 상황에 대해 “밖은 겨울이지만, 안은 봄이다”고 말했다. 법적 지위 상실이 오히려 전교조 조합원들을 뭉치게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매일노동뉴스>가 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본부에서 김 위원장을 만났다.

“법외노조 통보는 박근혜 정부의 자승자박”

- 서울행정법원의 법외노조 판결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사법부의 결정에 대해 ‘정치적 판결’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판사를 모독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법원이 설립신고서 반려사유 발생시 30일 이내에 시정요구를 이행하지 않을 때 노조 아님을 통보를 해야 한다는 노조법 시행령 제9조2항이 위임 입법의 한계를 일탈하지 않았다고 해석한 것과 해고자의 초기업노조 가입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를 아직 입법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정한 것은 재판부가 (윗선으로부터) 상당한 압력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 고용노동부는 법외노조 통보에 대해 “위법사항을 시정하지 않은 전교조의 자승자박”이라고 주장했는데.

“우리나라는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이어 98년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겠다고 약속했다. OECD는 한국 정부가 약속을 지키는지 보기 위해 한국을 노동감시국으로 지정했다. 약속을 아직까지 지키지 않은 것은 박근혜 정부와 이전 정부다.

그런데도 정부는 전교조가 시정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며 법외노조를 통보했다. 노동기본권을 깡그리 무시하고, 교육현장에 혼란을 야기했다. 법외노조 통보가 국민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가 자승자박한 결과다.”

- 2010년 이명박 정부가 전교조 규약을 문제 삼은 적이 있다.

“규약을 시정하지 않으면 정부가 법외노조 통보를 할 것이라고 처음 예상한 시기는 지난해였다. 2009년 시국선언을 한 전교조 간부가 해고됐다. 2010년에는 진보정당에 소액후원을 한 사건이 일어났다. 매년 시급한 현안이 터졌다. 조직을 추스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 개정이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노동부가 2010년에 규약 시정을 거부할 경우 법외노조 통보를 한다고 했더라도 거부했을 것이다. 규약 시정은 노조로서 할 수 없는 일이다.”

- 지난해 교원노조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국회가 제 역할을 했다고 보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야당 의원이 한 명 더 많았다. 야당이 교원노조법 개정을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물론 그 원인은 새누리당의 반대 때문이다. 새누리당 일부 의원이 교원노조법 개정에 동의해도 청와대가 재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법 개정 논의가 환노위 안에서 탄력을 받지 못했다.”

- 박근혜 정부하에서 교원노조법 개정이 가능한가.

“정권이 바뀌어야 한다. 교원노조법 개정을 위해 박근혜 정권과 싸우는 것도 중요하다. 교원노조법 문제가 무엇인지 차기 정권에게 분명하게 인식시켜야 한다. 다만 조심스럽게 기적을 바란다. 7·30 재보궐선거에서 여소야대 상황이 되면 법 개정 움직임이 전보다 활발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전임자 복귀하면 전교조 활동 최소화될 것”

- 교육부가 못 박은 전임자 복귀시한이 3일까지다. 전교조는 복귀를 거부했다. 전교조 전임자 72명 중 절반인 36명이 복귀한다고 가정했을 때 조직 유지가 가능한가.

“그렇게 된다면 15년 전 비합법 조직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다. 본부나 지부가 활발하게 움직이지 못하고, 선언을 한 번 하는 것도 쉽지 않게 된다. 전교조는 학교현장의 이슈를 제시하고 실천방향을 마련해야 한다. 교육정책을 만들고, 조직적 기반을 다지는 일을 동시에 해야 한다. 전임자가 지금의 절반밖에 안 된다면 최소 수준의 활동에 그칠 것이다.”

-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뒤 학교현장에 어떤 변화가 예상되나.

“지난해 9월 노동부가 전교조에 법외노조 통보를 했을 당시 일부 학교에서 옛날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법외노조 통보로 인해 법적 지위를 잃은 기간이 3주 정도밖에 안 됐다. 그럼에도 일부 교장들 사이에서 옛날에 전교조를 대했던 버릇이 나온 것이다. 아직까지 학교는 사회보다 권위적이다. 교장 1인 체제도 여전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3개 지역에서 진보교육감이 당선돼 임기를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학교자치 활성화와 학내 민주화 개선운동도 계속할 것이다. 법외노조로 인한 갈등은 이전보다 적을 것으로 생각한다.”

- 교육부는 교사선언에 참여한 교사와 조퇴투쟁에 나선 조합원에 대한 징계를 검토하고 있다. 검찰 고발도 진행 중인데.

“2차 교사선언은 교육부가 형사고발의 근거로 삼는 집단행동도 정치운동도 아니다. 교사들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정부의 태도에서 민주주의의 부재를 읽었다. 박근혜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물러나라고 한 것이다.

조퇴투쟁 때 개별 조합원들은 정당하게 휴가권을 행사했다. 쟁의행위도 아니고,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지도 않았다. 업무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직권을 남용한 사람은 학교장의 권한인 조퇴 결재를 하지 말라고 강요한 교육부와 교육청이다.”

“진보교육 2기 과제는 노동·인권·평화 공유교육”

- 진보교육에 대한 기대가 높다. 교육부와 교육청이 전교조 문제로 갈등하면서 교육개혁이 후순위로 밀릴까 우려하는 지적도 나온다.

“전교조가 자만하는 것처럼 들릴까 우려스럽지만 교육개혁을 이끌어 온 주체는 교육감·교장·교수도 아닌 전교조였다. 학교현장의 변화는 교직을 걸고 싸웠던 전교조 교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교조를 대체할 진보교육감이 있고, 전교조가 저항하면 불똥이 교육감에게 튈 테니 가만히 있어 달라고 할 수 있나. 만약 전교조가 가만히 있겠다고 가정해 보자. 진보교육감 역시 교육개혁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법외노조 통보를 둘러싼 전교조의 싸움은 단순히 전교조 생존의 문제가 아니다. 교육민주화의 성과를 무너뜨리려는 정권에 맞서는 싸움이다. 진보교육감과 전교조의 관계는 투쟁을 같이해야 서로 살 수 있는 관계다.”

- 진보교육감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전교조는 진보교육감이라고 무조건 지지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전북지부장으로 있을 당시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에 맞서 많이 싸웠다. 교육감에 당선돼 교육청에 들어가면 귀가 얇아지기 쉽다. 장학사·공무원은 그대로다. 기초단체장처럼 당선이 됐다고 자기 사람을 교육청에 데리고 갈 수도 없다. 전교조는 진보교육감이 원칙과 방향을 잃지 않도록 비판적 협력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 진보교육 1기의 성과는 무상급식과 혁신학교다. 1기의 성과를 넘는 진보교육의 결과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2기 진보교육의 어젠다는 무엇이라고 보나.

“가치를 공유하는 교육이다. 미래를 위해 공유해야 할 가치는 노동·인권·평화다. 인류가 지향해야 할 세계사적 과제다. 이러한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학교다. 경쟁교육으로는 현재와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물론 교육제도를 바꾸고, 혁신교육을 확산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제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얘기해야 한다. 교사의 수직적 훈육이 아닌 토론과 현장학습을 통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글=구태우 기자 / 사진=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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