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파업 중인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 티브로드 비정규직지부가 광화문에 있는 태광그룹과 티브로드홀딩스 본사 앞에서 규탄집회를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케이블방송업체 씨앤앰의 서울 마포지역 기술·고객센터를 운영하던 협력업체가 다음달 1일부터 바뀐다. 누적된 적자와 관련해 기존 협력업체 티엔씨넷과 원청은 소송전을 벌였고, 내년 8월까지였던 도급계약은 이달 말 해지된다.

문제는 기존 직원들의 고용이다. 지난해 8월 희망연대노조와 씨앤앰 협력사 대표단은 단체협약을 체결하며 업체 변경시 기존 직원을 고용승계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굳이 협약을 얘기하지 않더라도 업체가 바뀔 때 고용이 유지되는 것은 관행이었다. 그런데 새로 센터를 운영할 업체 사장은 전원 고용승계를 약속하지 않고 있다. 전체 직원을 면접한 뒤 채용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새 업체 노아무개 대표는 “지난해 노사가 맺은 단협 내용은 잘 모르고, 필요한 만큼만 기존 직원을 고용하라는 공문을 씨앤앰으로부터 받았다”며 “만약 씨앤앰에서 전부 고용하라고 했다면 내가 그걸 거부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씨앤앰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가입한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 티엔씨넷지회는 “사장이 원청의 지시 때문에 고용승계를 못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전승영 지회 교육부장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노사가 상생하자는 분위기였는데 이제는 원청에서 노조를 손보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SK브로드밴드 서울 양천행복센터를 운영하는 업체도 이달 말이면 SK브로드밴드와의 계약이 종료된다. 다음달 17일부로 폐업이 예정돼 있다. 당초 양천행복센터장이었던 기존 업체 관리자가 새 회사를 만들어 센터를 운영하기로 했다.

소속 법인만 바뀐 센터장은 직원 모두에게 사직서를 받은 뒤 면접을 보고 채용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노조 간부들이 고용승계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손종현 SK브로드밴드지부 양천지회장은 “센터장이 그런 얘기를 하고 다니고 있다”며 “양천·강서·구로·영등포 권역에서 가장 먼저 노조가 생긴 양천센터를 원청이 눈엣가시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센터장 이아무개씨는 이를 반박했다. 이씨는 “조합원들이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며 “센터를 인수할 생각이 없을 때 지회장과 담배를 피우면서 ‘당신이 사장이라면 노조가 있는 센터를 좋아하겠냐’고 말한 것이 와전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용불안’ 약한 고리 흔드는 원청

지난해와 올해 주요 케이블방송·통신기업의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어 주목을 받았다. 케이블방송업체 씨앤앰과 티브로드, 거대 통신기업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에서 발생한 일이다. 케이블업계의 씨제이헬로비전, 인터넷통신업계의 KT 협력업체를 제외한 국내 3위 안에 드는 대기업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든 것이다.

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와 케이블방송 티브로드 비정규직지부는 지난해 협력사 대표단과 임금·단체협약까지 체결했다. 티브로드의 경우 원청이 교섭에 나오기도 했다. 씨앤앰 역시 원청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도급직의 정규직 채용과 같은 합의안을 단협에 담았다.

올해 3월 출범한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에는 1천500여명 이상이 가입했다. 전국 91개 센터 중 절반이 넘는 50여개 센터에 노조 깃발을 꽂았다. 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는 70개 센터 중 35개 센터에 1천여명의 조합원이 가입했다.

지난해 2월 씨앤앰 비정규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든 뒤 케이블업계는 물론 통신업체까지 비정규 노동자들이 파죽지세로 노조를 만들어 활동에 나섰다.

그런 가운데 이들 지부가 최근 고비를 맞고 있다. 노조 결성을 미처 막지 못하거나, 노조 기세에 밀려 지난해 단협을 체결한 사용자들이 거센 반격에 나선 것이다.

4개 지부 노동자들의 공통점은 원청과 도급계약을 맺은 협력업체에서 일한다는 점이다. 고용이 불안하다는 얘기다. '슈퍼갑'인 원청이 도급계약을 빌미로 협력업체를 압박하는 방법이 주로 이용되고 있다. 을 중에서도 을인 노동자들이 이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원청은 이런 약한 고리를 파고 있다.

고용승계·재하도급 금지 단협 위반 논란

씨앤앰의 고양시 일산 서구지역 기술·고객센터에서도 마포지역처럼 도급계약이 해지되면서 고용승계 논란이 일고 있다. 다른 지역까지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씨앤앰의 단협 파기 논란은 단지 고용승계 부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지난해 희망연대노조가 씨앤앰·티브로드 협력업체들과 맺은 단협의 핵심은 △업체변경시 고용승계 △재하도급 금지 △개별도급 계약직 협력업체 직원의 정규직 전환이었다. 원청업체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것들이다. 개별도급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비용은 원청업체가 실제 지원하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 초부터 씨앤앰과 티브로드가 영업경쟁에 나서면서 노사합의 파기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씨앤앰은 원청이 직접 운영하는 방문판매업체나 영업외주업체를 통해, 티브로드는 유통외주업체를 통해 영업망을 확대했다. 이들 영업조직은 같은 권역에서 기존 협력업체들과 경쟁하고 있다. 영업과 인터넷망 설치업무까지 한다.

씨앤앰은 이달 10일부터 원·하청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가자 방문판매업체를 대체인력으로 투입했다. 노조 씨앤앰지부와 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가 파업을 잠정중단한 배경이 됐다.

노조는 영업조직 확대를 “사실상 재하도급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노조 관계자는 “영업경쟁으로 기존 협력업체가 고사하는 데다, 고용불안을 조성하고 대체인력을 투입해 노조를 약화시키는 방편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4월16일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와 희망연대노조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서비스센터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의 노동실태 발표 및 증언대회. 정기훈 기자

씨앤앰·티브로드, 매각·인수 준비하나

씨앤앰 원·하청 노동자들과 공동투쟁을 하고 있는 케이블방송 티브로드 비정규직지부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지난해 38일간 파업에도 발생하지 않았던 협력업체들의 직장폐쇄 조치로 노사관계가 급격하게 얼어붙고 있다. 이달 17일 22개 센터 중 13개 센터에서 동시에 직장폐쇄를 했다.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한 선별적인 업무복귀 회유와 차별 등 노조탄압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김승호 안양중앙기술센터 분회장은 “협력사들이 동시에 직장폐쇄 공고문을 게시해 당황스러웠다”며 “원청의 지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티브로드 역시 유통외주업체를 파업 대체인력으로 투입하고 있다. 티브로드는 외주업체 투입비용을 협력업체에 물리겠다는 방침이다. 협력업체와 노동자들의 부담이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티브로드의 지주회사인 티브로드 홀딩스가 대한화섬과 흥국생명에서 노조탄압으로 악명 높았던 태광그룹 계열사라는 점도 평탄치 않은 노사관계를 예고한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매각이 추진 중인 씨앤앰을 티브로드가 인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한쪽은 회사 가격을 높이고 한쪽은 인수합병에 대비해 노조 죽이기에 나선 것 같다”고 분석했다.

통신사 비정규직노조 설립 3개월 만에 폐업 직면

케이블방송업계의 노조설립 성공에 힘입어 올해 노조가 설립된 통신대기업 협력업체 노동자들도 협력업체 폐업이나 쪼개기에 시달리고 있다. SK브로드밴드 양천센터 사례가 기존 업체를 폐업하고 새 업체가 들어선 경우라면, 대전서부센터와 용산중구센터는 기존 업체가 폐업한 뒤 인근센터로 업무가 이관된 경우다.

대전서부센터를 운영하던 업체는 다음달 12일부로 폐업한다. 직원들은 인근 3개 센터로 분산될 예정이다. 그러자 조합원들 사이에서 “고용승계가 되지 않으니 노조를 탈퇴해야 한다”는 소문이 떠돈다.

실제 다른 지역 센터 관리자들이 모여 회의를 하면서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직원들만 고용한다”고 말한 녹취록이 공개되기도 했다. 김선우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대전서부지회장은 “원청 앞에서 집회를 열어 새 업체를 선정해 달라고 요구했는데, 새로 지원한 업체들마저 노조 해산을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대전서부센터는 대전지역에서 노조가 가장 먼저 생긴 곳이다.

LG유플러스 일부 서비스지역에서는 경영효율화를 이유로 일정 규모 이상의 가입자가 확보된 지역을 쪼개는 ‘마이크로센터’ 설립이 논란이 되고 있다. 서울 용산센터와 강서센터는 다음달 1일부터 2~3개 센터로 쪼개진다.

서비스지역 관리 제고를 위해서라지만, 센터가 나뉘면 협력업체에 대한 원청의 성과 압박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경상현 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장은 “노조 조직력 약화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라며 “벌써부터 비조합원을 우선적으로 인력을 배분하면서 조합원과 비조합원 간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용자들의 전쟁 선포” … 노사관계 격랑에 빠지나

지난 26일 삼성전자서비스 노사가 노조활동 보장과 기본급 보장에 합의하면서 유사한 AS 업계인 케이블방송·통신업계에 영향을 줄지 관심이 모아진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케이블방송·통신업계 비정규 노동자들의 ‘반란’이 높은 벽에 직면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노동계 관계자들은 “사용자들의 전쟁선포”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해에 사회 전반에 불었던 경제민주화 바람으로 움츠러들었던 대기업들이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는 분석도 있다. 박재범 희망연대노조 정책국장은 “경제나 기업이 위기라는 이유로 비정규 노동자들을 외면하기 시작하면서 노조가 생긴 이후 최대 고비를 맞고 있다”며 “노동자들의 저항도 거세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통신·케이블방송 비정규직 공동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남신 소장은 “지난해 노조에 굴복하다시피 했던 케이블방송과 노조 설립·확대를 목격한 통신기업들이 다단계 하도급 등 갖은 불법행위를 감추기 위해 더 이상 노조의 기를 살려 줄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씨앤앰과 티브로드 원·하청 노동자들은 파업을 포함한 공동투쟁을 하고 있다. 협력업체들과 교섭을 막 시작한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비정규 노동자들은 빠르면 9월께 쟁의행위를 시작할 것으로 전망된다. 케이블방송·통신 비정규 노동자들과 사용자들의 한판 승부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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