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성희 기자

“이 법은 잘못됐습니다. 한국 노동자도 우리도 똑같이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입니다. 그런데 왜 퇴직금을 받는 방법이 다릅니까.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왜 우리 허락 없이 한국 정부가 보관하고 있겠다고 합니까. 우리가 외국인이라서 함부로 하는 건가요?”

베트남에서 온 이주노동자 당반낫(28)씨의 외침에 그의 주위를 둘러싼 200여명의 이주노동자들이 호응하며 구호를 외쳤다.

“한국에서 일한 대가, 한국에서 지급하라!”

“We are not animals. We are labor!(우리는 짐승이 아니라 노동자다)”

22일 오후 이주·노동·인권단체로 구성된 ‘이주노동자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 철회 공동행동’은 서울 서대문구 감리교신학대학교 본관 앞에서 다음달 29일부터 시행되는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 규탄 이주노동자 대토론회’를 열었다. 공동행동은 당초 감리교신학대 본관 소강당에서 토론회를 진행할 예정이었는데, 방청객들이 몰리자 토론회 장소를 야외로 옮겼다.

지난해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제출한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고용허가제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주노동자의 미등록 체류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발의된 개정안은 이주노동자의 퇴직금을 대신하는 출국만기보험 지급시기를 출국 후 14일 이내로 규정하고 있다.

공동행동은 이주노동자가 공항에서 퇴직금을 받기 어려운 데다, 퇴직금을 못 받거나 적게 받아도 항의하기 어려우며 본국의 금융시스템이 미비한 경우가 많아 퇴직금 수령 비율이 낮다는 점을 들어 반대하고 있다. 석원정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소장은 “이주노동자 퇴직금 지급시기에 차등을 둔 것은 평등권·재산권·노동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이자 인종차별이며 국내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석 소장은 "7월에 임시국회가 개원하면 법을 개정하기 위해 여러 행동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우리 권리를 착취 말라"

이날 토론회에서는 필리핀·네팔·방글라데시 등 각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의 발언이 쏟아졌다. 갓 스무 살을 넘긴 듯 앳된 얼굴의 여성노동자부터 손에 힘줄이 도드라진 동료들과 함께 온 30대 남성노동자들, 아이를 데리고 온 이주여성들이 토론회에 참석했다.

한국에서 2년째 일하고 있다는 당반낫씨는 “보험사에서 퇴직금을 잘못 계산하거나, 출국 전 공항에서 퇴직금 청구를 하려는데 공항 내 CD기에 현금이 떨어진 경우도 있고, 본국으로 돌아갔는데 퇴직금이 적게 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 정부는 우리의 권리를 대신 결정하지 말라”고 비판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와유(32)씨는 “본국에서 퇴직금을 수령하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서류 절차도 복잡하고, 퇴직금이 100% 지급되지도 않는다”며 “나머지 돈을 회사에서 받아야 하는데 회사에 전화해도 돈을 주지 않을 것이 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노동법상 1년 이상 일하면 받게 돼 있는 퇴직금을 바로 안 주고 3~4년 동안 갖고 있다가 귀국한 뒤 준다는 것은 착취”라고 비판했다.

미얀마에서 온 장 뚜라윈(29)씨는 “노동부는 월급조차 제대로 안 주는 수많은 사업주들을 관리조차 못하고 있으면서 우리더러 뭘 믿고 출국 후 퇴직금을 받으라는 것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공항에서 퇴직금을 주겠다던 사장이 전화를 안 받아 공장에 남은 동료에게 부탁해 퇴직금을 대신 요청했지만 거부당했고, 어떤 사장은 ‘그동안 추가 제공한 식비를 전부 공제해야 하니 수령한 퇴직금을 자신에게 보내라’고 강요했다”고 전했다. 그는 “정부가 해야 하는 것은 악덕업주를 처벌하고 노동교육을 강화해 정당한 노동환경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공동행동은 이날 성명을 내고 “근로기준법에 따른 노동자의 기본권을 당사자 의견수렴도 없이 제한하고 침해해서는 안 되며 출국 전에 퇴직금을 전액 지급받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토론회 참가자들은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까지 가두행진을 벌이는 것으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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