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부터 이달 12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서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ILO는 첫 연차총회를 개최한 1926년 이후 최악의 노동권 침해 사례를 노사정 3자가 매년 합의해 왔다.

그런데 이번 총회에서 사용자그룹이 관련 토론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법학자 17명으로 구성된 ILO전문가위원회는 대표적인 노동권 위반 사례를 정리한 보고서를 ILO 연차총회에 매년 제출해 왔는데, 이와 관련한 논의를 국제사용자기구(IOE)가 전면 거부함으로써 이번 총회에서 보고서 채택이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이로써 ILO 안에서 회원국들의 국제노동기준 이행을 감시해 온 기준적용위원회의 기능이 마비되고, 3자 협력의 미래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기준적용위는 ILO 연차총회의 상설위원회다. 국제노동법인 ILO 협약의 적용과 관련해 노동자와 사용자가 제기한 구체적인 사례들을 조사하는 역할을 해 왔다. 이번 총회에서 노동자그룹은 각국 노동조합들과 상의를 거쳐 ILO 총회에서 25개 사례를 제기했다.

“사회 정의와 법치 존중이라는 ILO 근간 훼손”

샤란 버로우 국제노총 사무총장은 “ILO에서 사용자들이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잔혹하게 공격하는 최악의 노동권 침해 사례들을 비밀에 부쳐 국제감시를 피하려 하고 있다. 지난해 콜롬비아에서 노동운동가 29명이 살해됐다. 과테말라와 스와질란드에서 노동조합원들에 대한 끔찍한 공격이 자행됐다. 이집트에서는 좋은 일자리를 위한 노동자들의 기본권이 위협받고 있지만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을 침묵시키기 위해 군대와 근본주의자들의 편에 서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샤란 버로우 총장이 사용자들의 사보타주에 대해 지적하는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사용자들의 방해가 노동자를 위한 사회 정의와 법치 존중의 토대로 출범한 ILO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국제노동기준의 확립과 이행에 핵심 역할을 해 온 기준적용위의 권위를 훼손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인권 메커니즘을 무너뜨리고 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면면히 이어져 온 ILO를 통한 국제 수준의 사회적 대화를 약화시키고 있다. 그 결과 이윤만 추구하는 기업과 이에 편승한 노동자에 대한 국가권력의 폭력을 허용하거나 조장함으로써 세계적으로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명과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

기준적용위 마비 배경에는 파업권이 결사의 자유를 명시한 ILO 협약 제87호의 일부를 구성한다는 원리를 부정하는 사용자그룹의 공세가 자리 잡고 있다. ILO는 1957년 채택한 에 “(회원국의 법률은) 노동자의 파업권을 포함해 노동조합의 권리가 조금도 제한받지 않고 제대로 행사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1970년 채택한 <노동조합의 권리와 노동조합의 시민적 자유에 관한 결의문>에서는 “파업권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포함해 노동조합의 권리를 보편적으로 완전하게 존중하기 위한 진전된 행동을 취할 것”을 ILO 이사회에 촉구했다.

그 연장에서 결사의 자유를 명시한 ILO 협약 제87호(1948년)의 실현을 위해 구성된 ‘결사의 자유위원회’와 ‘협약 및 권고의 적용을 위한 전문가위원회’는 파업권이 노동자의 기본권임을 누차 확인해 왔다. 그동안 ILO의 사용자그룹은 협약 제87호와 단체교섭권을 명시한 협약 제98호(1949년)가 파업권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면서 전문가위원회의 견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파업권이 없는 결사의 자유? 

파업권에 반대하는 사용자들의 공세는 2012년 총회에서 이미 시작됐다. 당시 사용자그룹 대표는 파업권이 문제된 나라들을 다루길 거부했고 그 결과 기준적용위원회 논의가 중단됐다. 사용자그룹은 ILO 협약 제87호 어디에도 파업권에 대한 분명한 문구가 없다면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기준으로서 결사의 자유에는 파업권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3년에도 사용자그룹은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노동자그룹은 회의가 중단되는 것을 우려해 사용자그룹의 주장을 충분히 받아치지 않았다.

국제노총은 사용자그룹의 주장이 결사의 자유를 집단적 힘겨루기를 기본으로 하는 노사관계에서 완전히 떼어 내어 고립된 개별 권리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한다. 오랫동안 집단적 권리로 이해돼 온 결사의 자유는 파업권을 포함한 여러 권리들의 묶음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2013년에는 기준적용위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 양보했던 노동자그룹이 올해는 원칙을 고수했다. 파업권을 부정하는 사용자그룹의 주장을 전면 거부한 것이다. 그 결과 이번 ILO 총회에서 기준적용위 보고서에 대한 노사 그룹의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고, 위원회가 조사한 19개 사건이 미합의로 남게 됐다.

사용자그룹은 단체협약권을 명시한 제98호 협약에 대한 공격으로 전선을 확대할 기세다. ILO 이사회는 논란을 끝내기 위해 국제사법재판소에 파업권 문제를 회부할지 여부를 오는 11월에 결정한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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