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이들의 주검 앞에서 세월호 참사 전과 후는 달라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것이 부끄럽게 살아남은 어른들의 책무라고 여겼다.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돈보다 생명’이라는 가치가 우선해야 한다고 결의했다. 적어도 고통스럽게 죽어 간 아이들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고,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려 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불행한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 위한 방도를 찾는 것이 아이들에게 속죄하는 길이라고 공감했다. 그로부터 두 달이 흘렀다.

실종자 수색작업은 답보상태다. 아직도 실종자 12명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지칠 대로 지친 가족들의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가족들은 “아이들이 잊힐까 두렵다”고 토로한다.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는 것을 감지해서일까. 그들은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직접 호소하고 있다.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서명작업을 받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망각의 늪에 빠지는 대형 재난사건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에서다. 그들은 점점 '섬'이 되고 있다.

사건의 원인과 책임자를 밝히는 일도 안개 속이다. 참사 55일 만인 지난 10일 광주지법에서 열린 세월호 사건 첫 재판에서 선원 15명은 검찰이 제기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사건의 몸통인 청해진해운 소유주 유병언 일가의 행방도 묘연하다. 경찰뿐 아니라 군대까지 나섰지만 유병언 일가의 도피행각엔 속수무책이다. 검·경의 검거작업 관련 정보가 유병언 일가에게 흘러간 탓이라는 지적이다. 구조도 검거도 무능한 정부다. 이런 상황에서 꼬리에 불과한 세월호 선원들만 법정에 세우니 사건이 미궁에 빠질 수밖에 없다.

국가를 개조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가. 국민 앞에서 눈물까지 흘리면서 각오를 다졌다. 관피아의 적폐를 척결하고, 공무원 사회를 개혁하겠다고 약속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적임자를 국무총리와 내각에 앉히겠다고 공언했다. 안대희에 이어 문창극까지 국무총리 후보로 내놓았는데, 카드마다 ‘인사 참극’이다. 장관 후보자와 청와대 수석 지명자도 하나같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상처받은 국민을 위로하고, 개혁의 길로 이끌 인재는 찾아볼 수가 없다. 박 대통령의 선거를 도왔던 참모들이 대다수다. 친정체제를 강화하는 내각 진용이다. 대통령이 자기 사람부터 챙기는데 밀어주고 끌어 주면서 이권 챙기는 관피아·해피아를 어찌 없앨 수 있겠는가. 이러니 박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국가개조가 아니라 국민개조라는 얘기가 나온다.

대통령이 인사에서 구태를 재연하니 정부는 이미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갔다. 잠시 주목받은 생명과 안전이라는 가치는 어느새 돈과 이윤에 밀리고 있다. 국민의 복지와 생명을 책임지는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병원의 돈벌이를 허용하는 카드를 다시 꺼냈다. 복지부는 지난 11일 의료법인이 자회사를 두고 돈벌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세월호 참사 56일 만이다. 잠시 주춤했지만 정부는 의료민영화 정책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은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깨운 ‘돈보다 생명’이라는 가치에 아랑곳하지 않은 것이다. 절차도 문제다.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과 영리자회사 가이드라인은 상위법인 의료법에 반한다. 의료기관의 영리행위 추구를 금지하는 의료법을 무력화한다.

그럼에도 복지부는 상위법을 개정하지 않고, 국회와의 논의도 생략한 채 밀어붙이고 있다. 구조엔 무능하고, 규제완화엔 유능한 정부가 또다시 꼼수를 부리고 나선 것이다. 정말 대책 없는 오만과 불통이다.

국토교통부도 마찬가지다. ‘안전’이 화두로 떠올랐지만 국토부는 여전히 ‘이윤’ 타령이다. 국토부는 최근 인천공항철도를 민간에 매각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국토부는 인천공항철도의 수익률을 낮추고, 정부 보조금도 절반 정도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인천공항철도는 민간기업마저 운영권을 포기해 코레일이 인수했다. 그런데 수익률도 낮추고, 보조금도 줄인다면 민간기업은 어떻게 이익을 남길까. 세월호의 길을 갈 게 뻔하다. 돈에 눈이 멀어 과적과 무리한 운항을 일삼은 청해진해운을 따르는 것이다.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경영이다.

기댈 언덕은 국회밖에 없는데 한숨만 나온다. 세월호 침몰사고 국정조사특별대책위원회를 구성한 뒤로는 감감무소식이다. 여야가 기관보고 시기를 두고 줄다리기를 하느라 시간만 보내고 있다. 특별법과 관련법 개정은 손도 못 대고 있는 형편이다.

더 이상 시간을 거꾸로 돌리려 하지 말자. 세월호에 있던 아이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이 죽음으로 내몰았다. 잊힐 수도, 잊으려 해서도 안 되는 진실이다. 세월호 이후의 세계다. 이제는 "4월16일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어른들이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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