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
녹색당 공동정책
위원장

지난해 연말 철도 민영화 논란에 이어 최근 의료 민영화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정부는 의료 민영화가 아니라 서비스산업 발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영리를 추구하면서도 철도 민영화는 아니라는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반면 시민·사회단체는 '의료 민영화 반대 100만 서명운동'에 나서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동계는 정부가 영리추구 위주의 의료 민영화 정책을 철회하지 않으면 6월 총파업을 통해서라도 저지한다는 방침이다. <매일노동뉴스>와 보건의료노조는 공동기획으로 '의료 민영화 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연속기고를 마련했다.<편집자>

녹색당 당원 중에는 귀농한 농민들이 많다. 한국의 농업정책이 대농 중심이다 보니 녹색당 당원들 같은 소농의 삶은 팍팍하기 그지없다. 가난한 농촌생활에 교통비와 난방비는 도시보다 더 들고, 몸이라도 아프면 버스를 타고 읍내까지 나가야 한다. 고령화된 농촌 어르신들은 먼 거리로 병원을 다니다가 골병이 들 지경이다.

농촌에 아이들이 없다 보니 산부인과도 소아과도 확 줄었다. 병원이 없으니 아이가 있는 청년들이 더욱 농촌에 가기를 꺼린다. 큰 병이라도 생기면 인근 도시로, 암수술이라도 해야 되면 서울로 올라와야 한다. 병이 깊어지면 병원비·교통비·간병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정부는 의료 산업화와 첨단 IT와 결합한 원격진료, 그리고 일자리 창출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농촌의 현실은 기본적인 의료서비스 접근권조차 위태롭다. 지금도 돈이 없어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 10일 의료 민영화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개봉했다. 의료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의료법인의 사업범위를 여행업·종합체육시설업·건물임대업 등으로 대폭 확대하고, 의료법인 자법인 설립운영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것이다. 의료법에 ‘비영리’로 명시돼 있는 법인병원에 ‘영리자회사’를 허용함으로써 병원을 기업으로 만드는 시도를 하고 있다.

병원이 기업화돼 돈벌이에 나서면 벌어질 상황은 뻔하다. 투자자와 병원 경영진의 이익을 위해 의사들은 과잉진료와 환자유치에 나서야 하고, 의료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인간은 ‘병’ 앞에 한없이 나약해진다. 그렇기에 환자들에게 ‘의사’의 진단과 치료는 절대적이고, ‘건강’을 되찾기 위해 지갑은 열리게 마련이다. 더욱이 병원이 생활용품 판매업과 식품 판매업에 더해 부동산 임대업까지 할 수 있게 된다면 환자의 치료를 볼모로 다양한 돈벌이 사업에 뛰어들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에서는 ‘의사’도 ‘환자’도 돈에 종속돼 의료 공공성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지금도 한국의 공공의료는 형편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공공병원 병상 비중은 평균 75.1%인데, 한국은 10.4%이다. OECD 국가 중 최하위다. 로봇수술을 포함한 고가장비 시술과 과잉진료로 의료비는 날로 치솟고 있다. 정부는 원격의료 도입을 밀어붙이면서,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 공공병원에 대해서는 매각을 추진한다. 진주의료원 폐쇄는 대표적으로 정부와 지자체가 지역공공의료에 ‘이윤’과 ‘수익성’의 잣대를 들이댄 결과다.

건강은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빈부차로 인한 차별이 존재하고, 사람들이 죽어 간다면 국민이 세금을 내고 정부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 세월호 참사에 망연자실했던 것은 사람이 죽어 가는데, 국가가 단 한 명도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잔인한 정부는 인명 구조도 민영화하더니, 의료도 민영화해 국민의 생명줄을 끊으려 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 민영화와 원격의료, 자회사 설립은 의료 분야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건강을 팔아넘기는 행위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의료 산업화가 아닌 공공의료 확대 정책이다.

정부가 의료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농민들도 마음 편히 병원에 갈 수 있도록 지역에서 1차 의료를 제공하고, 외래환자는 의원, 입원환자는 병원, 중증환자는 대형병원으로 향할 수 있는 의료체계를 다잡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국민 건강을 확보하고, 동네의원의 경영난을 덜어 주며, 비효율적인 의료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다. 더불어 지방의료원 매각을 중단하고 기본적인 의료서비스를 마을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의료자립마을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의료서비스는 걷거나 자전거 타는 거리에서 접근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병원이지 도시 중심의 휘황찬란한 쇼핑몰과 결합한 멀티컴플렉스 병원이 아니다. 병원과 의료서비스도 시설과 자본이 집중화된 중앙집중식이 아니라 필요한 지역과 마을별로 분산된 방식이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국민이 원하는 의료 공공성이 아니라 기업을 위한 의료 민영화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더구나 이런 엄청난 변화를 시행규칙 개정과 가이드라인으로 결정하려고 한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은 부대사업 범위를 의료법이 아닌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담은 것은 의료법 위반이고, 위임입법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늘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법’과 ‘원칙’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의료 민영화 정책을 편법으로 밀어붙이다 보니 정부가 법을 위반하는 무리수를 감행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의료 민영화 정책을 즉각 중단해야 하며, 박근혜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련된 규제완화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 녹색당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의료 민영화 저지투쟁에 동참하고, 가난한 농부들도 차별 없이 골고루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적극 연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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