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전국불안정
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박근혜 정부는 ‘저항’을 민주사회 시민들의 정당한 권리로 인정하지 않는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은 모두 ‘적’이라는 철저한 냉전논리와 진영논리에 빠져 있다. 정부는 숨죽이지 않고 굴종하지 않는 모든 것을 증오한다. 정부의 민영화 정책에 반대하는 철도노동자들의 파업은 그것이 합법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공권력을 동원해 요란스럽게 처벌하고,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며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들을 270명 가까이 연행하고 구속영장을 남발한다. 자본에 저항해 싸웠던 삼성전자서비스 염호석 열사의 시신을 탈취하고 화장을 해 버린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모든 저항을 봉쇄하라’는 지상명령 외에는 없다.

바로 그 잔인한 폭력이 6월11일 밀양을 짓밟았다. 움막을 짓고, 땅을 파고, 몸에 쇠사슬을 묶고, 때로는 자신의 몸 전체로 송전탑 건설에 저항하는 이들을 공권력을 동원해서 떼어 내고 내동댕이치고, 팔을 부러뜨렸다. 경찰들에게 그 자리에는 존엄하고 가치 있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적 혹은 반드시 치워야 할 방해물만 존재했다. 그리고 그들은 수녀님과 주민들, 그리고 연대하는 이들을 상처 입혔던 바로 그 자리에서 정복자로서 승리의 기념촬영을 했다. 그 순간 그 경찰들은 인간으로서의 자존감도 잃었고 공적인 권력으로서의 자부심도 버렸다. 생명에 대한 존중감 없이, 한전과 원자력 마피아들의 사병으로서, 국민이 아닌 오로지 정부를 지키는 폭력 그 자체였다.

지금 정부 관료들의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주는 대로 보상금 받고 가 버리면 될 텐데, 왜 저렇게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으면서 저항하는지’ 절대로 모를 것이다.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옷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왜 자기 차비를 들이며 크게 다칠지도 모르는 이 숲 속으로 많은 이들이 연대하러 모여드는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해타산과 권력의 위세만으로 살아온 이들은 정의·양심·연대와 같은 말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니 누군가가 뒤에서 사주를 했을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상상을 하고, 돈을 더 많이 받으려고 그러는 것이라고 마음대로 단정 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속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을지 모른다. 이 저항은 연대의 마음이자 생명의 살림이라는 것을. 그 속마음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싸우는 이들을 더 잔인하게 괴롭히고 비웃는 것일 게다. 그러니 지금의 정부와 경찰과 법원과 한전은 참으로 불쌍하기도 하다.

밀양의 저항은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다. 단지 자신의 땅을 지키기 위해서 만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으로 죽어 가거나 눈물 흘리는 여러 사람을 살리는 것이기에 쉽게 스러지지 않는다. 송전탑을 막기 위해 싸우는 이들, 이 싸움에 연대하는 이들은 무려 37년째 가동되고, 각종 불량부품의 납품비리로 얼룩져 있으며, 또다시 수명이 연장될지도 모르는 핵폭탄과 같은 원자력발전소를 줄여 나가는 것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처럼 많은 생명이 속절없이 죽어 가는 것을 막는 길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버틴다.

원자력발전소를 더 짓지 않는다면 산업용 전기를 싼값으로 공급해서 마구 사용하지 않도록 한다면 송전탑은 필요 없다. 아니, 송전탑을 짓지 못한다면 그들은 원자력발전소를 더 짓지 못할 것이고, 다 낡은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하지 못할 것이고, 공장도 밤에는 쉬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이 싸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양심과 사람답고자 하는 의지는 인간 본연의 것이며, 쉽게 꺾이지 않는다. 밀양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이야기한다.

“송전탑에 반대하는 싸움은 마지막 한 기가 세워지고 전선이 모두 연결될 때까지는 결코 끝난 것이 아니다.”

설령 송전탑이 다 세워져 전기가 흐른다 하더라도 다시 그 송전탑을 무너뜨릴 수 있다. 그러기에 밀양의 움막들이 행정대집행으로 철거됐다 하더라도 싸움은 결코 끝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싸움이 단지 밀양 주민들만의 저항으로 끝난다면, 이에 함께하는 몇 사람들만의 연대로 끝난다면 송전탑 건설을 조금씩 늦출 수 있을지언정 막기는 어려울 수 있다.

원자력 마피아들의 원자력발전소 건설 공세는 참으로 집요하고, 저항을 무너뜨리려는 정부의 공격도 참으로 거세다. 그러니 이제는 이 저항을 더 많은 이들이 이어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다시는 세월호 참사와 같이 대형재난으로 인한 고통을 만들지 말자고 다짐하는 모든 이들은 밀양의 눈물을 우리 모두가 함께 흘리고, 그 눈물의 힘이 송전탑을 무너뜨릴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하지 않겠는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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