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식민지배가 끝난 후 친일파의 청산은 민중들의 염원이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제헌국회는 1948년 8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구성해 이에 화답했다. 이어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도 통과시켰다. 민족반역자·부일협력자·전범 등 친일 잔재를 청산하는 게 이 법의 취지였다.

반민특위는 독립운동가를 탄압하고 일제에 부역한 경찰간부들을 구속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자 이승만 대통령은 담화를 발표하면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겉으로는 삼권분립 원칙의 위배, 경찰의 동요를 우려한다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반민특위 활동으로 자신의 지지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김병로 대법원장은 "반민특위 활동은 불법이 아니"라고 발표했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이를 묵살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나서 반민특위 활동에 제동을 거니 친일파들이 역공에 나섰다. 친일 부역세력의 핵심이었던 경찰간부들이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했다. 국회에서는 친일파 척결에 나섰던 개혁파 의원들이 연루된 프락치 사건이 터졌다. 잇따라 벌어진 사건으로 반민특위는 제대로 된 활동조차 못한 채 6개월 만에 문을 닫게 됐다. 이승만 대통령의 뜻대로 반민특위는 사실상 무력화됐다. 해방 후 친일파를 신속하게 척결해 나라의 기틀을 바로 세울 기회가 상실돼 버린 것이다. 일제 망령이 끈질기게 우리 곁에 남아 있게 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 이후로 일제 잔재 청산과 친일파의 척결을 주장하는 이들은 ‘빨갱이’이라고 치부됐다. 일본의 식민지배는 불가피했고, 친일파 청산보다 공산세력을 막는 게 우선이라는 역사관을 가진 이들이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됐다. 그런 사고를 가진 이들이 나라를 운영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인물이다. 그가 한 발언이 공개되면서 새삼스레 확인되고 있다. 과거 교회에서 한 그의 발언을 보면 황당할 뿐이다.

그는 2011년 한 교회에서 “‘하나님이 왜 이 나라를 일본한테 당하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라고 우리가 항의할 수 있겠지요”라며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야”라고 말했다. 그는 또 “너희들은 이조 500년을 허송세월로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은 시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문 후보자가 보기에 우리 민족은 우매했으니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는 게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민족사의 비극을 그저 순응하고 받아들이라는 문 후보자의 발언에 말문이 막힐 뿐이다. 문 후보자는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창한 셈이다.

그의 발언을 듣다 보면 울화가 치민다. 그는 “하나님이 남북분단을 만들게 해 주셨어. 그것도 지금 와서 보면 하나님의 뜻이라고. 그 당시에 우리 체질로 봤을 때 한국에 온전한 독립을 주셨으면 우리가 공산화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한국 기독교 역사를 강연하면서 “조선 민족은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해 남한테 신세지는 거, 이게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 있었던 거야”라고 말했다.

평생 언론인이었던 문 후보자가 이런 망언을 일삼았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는 “4·3 제주민중항쟁을 공산주의자가 개입한 폭동사태”로 규정하는가 하면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의 사과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문창극 망언록을 만들어야 한다’는 네티즌들의 힐난이 이해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문 후보자는 “사과할 뜻이 없다”며 “오해가 생겨 유감”이라고 둘러대고 있다. 그야말로 ‘참극’이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를 두고 나오는 말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문 후보자와 다를까. 박 대통령도 문 후보자의 역사관을 공감했을 것이다. 그러니 문 후보자를 국무총리로 지명한 것 아닌가.

반민특위가 친일부역세력을 척결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웠다면 문 후보자 같은 이들이 국무총리에 지명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문 후보자 스스로 국무총리 후보직에서 사퇴하라. 그것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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