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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가 서 있다
우지연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법’ 앞에 문지기가 서 있다. 시골사람이 찾아와 ‘법’ 안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청한다.

“가능한 일이지. 그러나 지금은 안 돼.”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도 허락은 떨어지지 않는다. 임종을 앞두고 시골사람이 묻는다. “지난 수십년 동안 왜 나 말고는 아무도 찾아온 사람이 없는 거예요?”

문지기가 답한다. “왜냐하면 이곳은 당신 외에는 누구도 입장을 허락받을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지. 이 입구는 당신만을 위한 것이니까. 자, 이제 문을 닫아야겠군.”

(카프카 <법 앞에서>)

신형철 평론가는 두 개의 역설이 이 우화를 떠받친다고 해설한다. 첫째, 지금은 안 되지만 나중에는 들어갈 수 있다는 것. 그러나 그 ‘나중’은 영영 오지 않는다는 것. 둘째, 그 문은 오직 나만을 위한 문이라는 것. 그러나 정작 나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

물론 모든 재판이 그와 같지는 않다. 우리는 성문법 국가이고, 판결은 법관의 양심에 따라 법률과 계약·판례에 입각해 내려진다. 그러나 근로관계의 실질이나 역동적인 노사관계의 현실이 명문 규정에 일일이 반영되기 어려운 노동법 영역에서, 그것도 기업 내부의 노동관행에 관한 문제라면 어떨까.

노동관행은 법령이나 단체협약·취업규칙이 불분명한 경우 보충적으로 법적 권원(權原)이 된다. 법원은 “노사 간의 관행이 기업 내에서 일반적으로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기업 내에서 사실상 제도로 확립돼 있어 근로계약의 내용을 이루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노동관행에도 규범력이 부여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두산백과사전에 따르면 “노동관행이 구체적으로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자본가가 기업합리화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장애가 되는 노동조합의 활동을 억누르기 위해서, 직장에서 승인해 온 노조활동 또는 노동조건에 관한 관행을 일방적으로 폐기하는 사태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법령·협약·취업규칙에 명문의 규정이 없더라도 그러한 노동관행은 일정한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것으로 보고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노동자들이 노동관행에 의해 기존 노사관계 질서나 근로조건에 관한 권리를 보호받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초 대법원은 지난 60년 동안 철도공사가 노조 사무실의 전기요금을 부담해 온 데 대해 “그 같은 관행이 규범적인 사실로 명확히 승인되거나 사실상의 제도로 확립되지 않았다”며 관행 성립을 부정했다.

반면 지난해 말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상 통상임금에 포함돼야 할 정기상여금을 배제하기로 한 노사합의는 강행법규에 위반돼 무효라는 기존의 입장을 변경하면서 신의칙 법리를 도입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하는 실무가 장기간 계속돼 왔고 이미 일반화된 관행으로 정착했다”는 이유였다.

왜 어떤 관행은 배척되고, 어떤 관행은 인정되는가. 노조가 60년 동안 유지해 온 평온한 신뢰는 사용자의 단 한 번의 이의제기만으로 파기되는데, 왜 기업의 신뢰는 노동자들의 숱한 이의제기에도 보호되는가.

이런 사안은 또 어떤가. 원고는 매년 일정액의 상여금을 지급받았고, 이는 근로의 대가로 정기적으로 지급됐고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또는 노동관행에 따라 사용자에게 지급의무가 지워진 임금이므로 임금전액불 원칙에 따라 퇴직시까지의 상여금을 일할지급할 것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퇴직자에 대해서는 일할지급을 하지 않기로 하는 관행이 성립됐으므로 지급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왜 회사가 퇴직자에 대해 상여금을 일할지급하지 않는 것은 확립된 관행인데, 회사가 매년 상여금을 지급해 온 것은 단순한 호의인가. 아무리 봐도 논리적이지 않다. 판결문상으로는 다를 것 없는 관행들이 다른 무게로 판단됐다면, 결국 보이지 않는 어떤 추가 그 저울을 좌우했다고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적어도 그 보이지 않는 추는 기업 신뢰의 무게일 뿐 노동자 신뢰의 무게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안 되지만 나중에는 들어갈 수 있다는 것. 그러나 그 ‘나중’은 영영 오지 않는다는 것. 그 문은 오직 나만을 위한 문이라는 것. 그러나 정작 나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 그런 것이 노동관행이라면 차라리 없는 편이 낫지 않을까.

최근에도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에 따라 회사가 그간 관행으로 보장해 오던 재해보상제도를 폐지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앞의 말을 할까 하다 진실이 아닌 것 같아 뒤의 말을 하고 나니, 문득 이 문 안에 더 무서운 문지기가 있음을 알려 주는 또 다른 문지기가 아닌가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우지연  tae@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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