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임금체계 개편논의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두 단어가 ‘직무급’과 ‘직능급’이다. 근속연수가 길어질수록 급여가 늘어나는 기존의 연공급제로는 저성장과 정년연장이라는 눈앞의 현실을 헤쳐 나가기 어렵다는 게 임금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일의 가치에 따라 급여가 결정되는 새로운 임금체계로의 변화가 강조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직무급의 나라’ 독일 임금전문가 라인하르트 반뮐러 튀빙겐대학교 노동기술문화연구원 원장과 ‘직능급의 나라’ 일본의 임금전문가 이시다 미츠오 도시샤대학교 사회학부 교수가 한국을 찾았다. 28일 노사발전재단 주최로 열린 ‘외국의 임금체계 비교를 통한 국내 임금체계 개편방향’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여하기 위해서다.

<매일노동뉴스>가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렉싱턴호텔에서 두 명의 임금전문가를 만났다. 이들의 인터뷰를 이틀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

① 라인하르트 반뮐러 튀빙겐대학교 노동기술문화연구원 원장

② 이시다 미츠오 도시샤대학교 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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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사발전재단


“일본 사회가 진행해 온 임금개혁의 테마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연공적인 성격을 줄여 나가는 동시에 근로자의 근로의욕을 확보하는 것이죠. 두 부분을 양립시키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왜냐하면 연공적 성격만 줄이는 방향으로 임금개혁이 이뤄지면 근로자들이 일하고자 하는 의욕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죠.”

일본의 임금문제 전문가 이시다 미츠오(64·사진) 도시샤대학교 사회학부 교수의 설명이다. 우리나라처럼 연공급 기풍이 강했던 일본은 90년대 들어 본격적인 임금체계 개편논의에 돌입했다. 버블경제가 무너지고 저성장이 계속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의 임금격차가 벌어지던 때다. 이미 70년대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사회·경제적인 면에서 한국보다 몇 걸음 앞서 ‘같은 길’을 걸었다.

일본 사회 임금체계의 역사는 세계대전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 전쟁 이전에는 연공적 성격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 이시다 교수의 설명이다. 하지만 전쟁 이후 국가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기업훈련에 의한 인재육성의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사람’을 기준으로 하는 임금체계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는 한국전쟁 이후 높은 교육열을 바탕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궈 온 우리나라에서 연공급이 맞춤형 임금체계로 기능한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연공급의 역사 공유한 일본과 한국

“80년대 고성장 뒤에 찾아온 90년대의 저성장은 연공급이 과연 지속가능한 임금체계냐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성장이 멈춘 상태에서 기업들은 인건비 상승분을 감당하기 어려워졌죠. 기업들은 노무비를 삭감해야 하는 입장에 처했습니다. 문제는 임금인데요. 기존에 지급되던 임금을 급격하게 줄이기는 어려웠던 거죠.”

90년대 일본의 경기침체는 중국으로 대표되는 중진국과의 글로벌 경쟁 과정에서 심화했다. 가격경쟁에서 밀리면서 일본의 높은 인건비 문제가 부각됐다. 다음 수순은 우리가 짐작하는 대로다. 일본의 기업들은 국내투자 대신 해외직접투자를 늘리고, 비정규직·유기고용·파견근로의 확대를 통해 인건비를 절감하는 길을 선택한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사회 양극화가 심화하는 이른바 ‘격차사회’로의 진입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비정규직을 늘려 어느 정도 비용부담을 줄인 기업들의 관심은 자신이 직접고용한 정사원의 임금문제에 맞춰집니다. 정사원의 임금개혁이 불가피한 과제로 떠오른 것이죠.”

전쟁 이후부터 고도성장기까지 일본 임금제도의 초점은 ‘종업원의 직무수행 능력’에 맞춰져 있었다. 기업들은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토대로 종업원의 육성과 처우에 무게중심을 실었고, 노조도 이러한 경영기조에 바탕을 둔 임금지급방식에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일본이 ‘직능급의 나라’로 자리 잡게 된 배경이다.

저성장의 늪 … 미국식 성과주의 임금개혁 단행

직능급의 사전적 의미는 “종업원의 직무수행 능력에 따라 정한 보수”다. 사람에 대한 임금(연공급)과 일의 가치에 대한 임금(직무급)을 혼합한 형태다. 학력이나 근속연수 같은 인적요소를 강조한다는 면에서 우리나라의 임금체계와 유사하지만 일의 가치를 등급으로 구분하고 등급에 따라 차등적인 임금을 지급한다는 점에서는 다르다.

“직능급, 즉 능력주의 관리체계에서도 연공적 성격은 상당 부분 유지됐습니다. 90년대 정사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임금개혁의 핵심은 이러한 연공적 성격을 최대한 깎아내리는 것이었죠. 임금은 최대한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라는 시장경제의 원리를 일반적인 원리로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 90년대 임금개혁의 저변에 깔린 이념이었습니다.”

정사원에 대한 임금개혁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이뤄지게 된다. 이른바 역할급의 도입과 인사고과의 강화다. 한마디로 '성과주의 임금개혁'인 셈이다.

일본의 기업들은 기본급과 승급관리 개혁을 통해 기존의 임금체계가 갖고 있던 임금의 연공성을 최대한 제거해 나갔다.

기존 10단계로 구성된 ‘직능등급’을 축소해 관리자부터 사원까지 6단계로 이뤄진 ‘역할등급’을 부여함으로써 직원들이 승진할 수 있는 기회를 줄이고, 승진에 따른 임금인상의 가능성도 낮췄다.

임금인상과 인사고과를 연계하는 시스템도 도입했다. 쉽게 말해 미국식이다.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는 직원의 인사고과 점수가 낮으면 임금을 삭감하고, 반대로 낮은 수준의 임금을 받는 직원의 인사고과가 높으면 임금을 높여 주는 방식으로 임금의 연공성을 최대한 억제했다.

우리나라 경영계가 임금체계 개편논의가 벌어질 때마다 “직무급과 직능급 같은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나보다 덜 받으면 괜찮아" 일본 정사원의 자화상

우리에게 성과주의 인사제도의 폐단은 낯설지 않다. 외환위기 이후 대대적으로 도입된 각종 평가제도들이 노동자 조기퇴출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실제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시장 밖으로 내몰리는 광경을 목격해 왔기 때문이다. 일본의 노동자들은 성과주의 임금개혁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근로자 개개인은 불안을 느꼈겠지만 사회적 문제로 분출되지는 않았습니다.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대거 채용하면서 한 직장 안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섞여서 일하게 됐는데요. 앞서 설명한 성과주의 임금개혁에도 정규직은 비정규직보다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었죠. 회사는 정사원들에게 이러한 점을 주지시켰습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이 많다’는 안도감이 정사원들의 분노를 가라앉힌 주요 요인이었다는 설명이다. 기업들은 이런 구조를 십분 활용해 이른바 ‘분할통치’에 나섰다. 이렇게 볼 때 한국과 일본은 많이 닮았다. 직능급이나 역할급처럼 고유의 시스템은 다를지 몰라도, 연공급의 오랜 역사를 공유하고 있고 저성장과 고령화라는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 임금체계 개편이라는 처방전을 펼쳐 든 것도 비슷하다. 신자유주의라는 파고를 넘으며 사회 양극화라는 처참한 현실을 목도하고 있는 점도 같다.

이시다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래서 두 나라의 노동자는 행복한가”라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성과주의 임금개혁이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도 궁금해졌다. 한국도 일본도 연공급을 해체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보다는, 연공급 해체 그 자체를 성과로 내세우는 데 급급했던 것은 아닐까.

이시다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일본 사회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 문제는 지금도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고 귀띔했다. 성과주의 임금개혁의 그림자가 우리 사회에 짙은 어둠을 드리울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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