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 철도 민영화 논란에 이어 최근 의료 민영화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정부는 의료 민영화가 아니라 서비스산업 발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영리를 추구하면서도 철도 민영화는 아니라는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반면 시민·사회단체는 '의료 민영화 반대 100만 서명운동'에 나서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동계는 정부가 영리추구 위주의 의료 민영화 정책을 철회하지 않으면 6월 총파업을 통해서라도 저지한다는 방침이다. <매일노동뉴스>와 보건의료노조는 공동기획으로 '의료 민영화 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연속기고를 마련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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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형
미국 캘리포니아간호사노조 미조직사업장조직국 부국장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며, 또 한편으로는 의료 민영화의 길로 나아가는 한국의 의료현실에 실로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의료 민영화가 이뤄지면 그때는 바다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 병약자들이 돈 때문에 치료를 못 받고 죽어 가는, 자본에 의한 사회취약계층에 대한 살인행각이 가속화할 것이다.

미국의 의료기관들 중 상이군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재향군인행정병원이 있는데, 질 높은 의술을 제공한다고 해서 미국 정부의 자랑거리였다. 그런데 최근 미국 도처에 있는 이들 병원에서 환자들에 대한 치료를 의도적으로 늦춰서 수십명에서 수백명으로 추정되는 환자들이 생명을 잃은 사례가 드러나 미국 정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의회가 담당 장관을 불러내 호통을 쳤지만 더 많은 피해자가 속속 밝혀지면서 오바마 대통령까지 초긴장 상태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왜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일까.

미국은 엄청난 국방비를 쓰기 때문에 늘 군사비용에 쩔쩔맨다. 재향군인행정병원에서 일어난 사건의 주요 원인은 일단 비용을 줄이기 위한 무리한 절감행위의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또 하나의 원인은 바로 민영화다. 자본의 입장에서 볼 때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병원)을 없애 버리면 새로운 고객(시장)이 생기고 병원들마저도 헐값에 챙길 수 있다. 바로 월가 투자가들의 농간이 이면에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연방의회는 의료계 로비스트들로 에워싸여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정부가 운영하는 재향군인행정병원 제도를 없애 버리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

현재 미국에서도 의료계에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오바마케어로 일컬어지는 의료법안이 실행됨에 따라 그 변화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미국의 의료 민영화 양상은 영리와 비영리로 갈린다기보다는 꾸준히 지속되는 기업화로 볼 수 있다. 월가의 투기자본에 의해 병원에 대한 거액의 투자가 이뤄지면서, 미국 병원업계는 미 전역에 200개 이상 종합병원을 소유한 기업형 대형병원들의 각축장이 돼 버렸다. 시장에서 밀려난 독립적 지역병원들은 문을 닫거나 속속 합병되고 있다.

국민 1인당 의료비용이 연간 8천달러로 세계 최고 수준인데도 매년 의료사고로 사망하는 숫자가 44만명에 이른다. 오바마케어로 극빈자 상당수가 보험을 갖게 됐고 무보험자들에게는 보험을 구입하도록 강요했지만, 보험료는 전혀 내려가지 않고 의료 수준과 질은 오히려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민영 보험회사들은 '싸구려 보험'을 잔뜩 팔았다. 병원도 당연히 '싸구려 의료'를 제공할 것이다. 종합병원들은 대기업형 합병을 가속화하는 한편 싸구려 보험을 가진 ‘주머니 가벼운’ 환자들을 처리하기 위한 외래환자진료소(outpatient clinic)를 속속 신설하고 있다. 싸구려 보험을 가진 환자는 이런 식으로 질 낮은 싸구려 의료처방을 받다가 비용이 많이 드는 치료가 불가피해지면 결국 또 자비를 내야만 한다.

보험회사들의 수익은 매년 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다. 대형병원들은 계속 폭리를 취하고 있으며 월가 투자가들의 의료 분야, 특히 종합병원에 대한 투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전 국민 의료보험 확대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실상은 더욱 진화한 민영화일 뿐인 오바마케어는 조만간 그 실패의 결과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캘리포니아간호사노조와 전국간호사연대는 전 국민 단일보험제도를 주장한다. 민간보험을 아예 없애고 공공단일보험으로 전 국민의 의료를 보장하면서 병원과 제약회사들이 질 높은 의료를 저렴하게 제공하도록 총괄 운영하자는 것이다.

캐나다에서는 이미 이러한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유일하게 버몬트주에서 이를 실행하려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노조는 이를 지지하고 캘리포니아주에서도 이를 추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우리 노조는 현재 미국 내에서 유일하게 캘리포니아 제너럴 병원에서만 실행 중인 간호사 대 환자 비율법(Safe Staffing Ratio Law)을 확대해 작은 병동과 의원·진료소(Clinic)까지 간호사 대 환자의 숫자를 규정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간호사 대 환자 비율법의 정당성은 이미 연구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예컨대 일반병동의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를 6명에서 5명으로 줄이면, 사망률이 8~10%까지 줄어든다. 결국 규제완화가 아니라 규제를 강화할 때 인명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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