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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에서 말하고 싶은 것장종오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경남사무소)
장종오 변호사
금속노조 법률원
경남사무소

지난해 경남지역에서는 대리운전 기사들이 노조를 만들었습니다. 대표적인 대리운전 회사들은 노조간부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했고, 노조는 불매운동에 돌입했습니다. 그러자 회사는 불매운동을 금지시켜 달라는 가처분을 제기했습니다.

회사는 “대리운전 기사들은 노조를 만들 수 있는 노동자들이 아니고 법상 노조를 구성할 수도 없음에도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경남지부라는 명칭으로 단체를 만들었다”는 점을 근거로 노조가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업무방해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패소했습니다. 노조의 주장이 허위라는 근거가 부족했다는 것이 큰 이유였습니다.

2년 전인 2012년 11월, 경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방과후 교사 알선업체로부터 1천여만원을 받은 학교장을 수사했습니다. 알선업체의 사장도 수사를 받았습니다. 사장은 방과후 교사들을 실질적으로 사용·지휘하면서도 정작 그들과의 계약서에는 '콘텐츠공급관리계약'이라고 썼습니다. “교사는 개인 사업자”라고 분명하게 선언(?)한 것입니다. 학교로부터 교사들에게 지급되는 급여 통장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는데도 알선업체 사장은 방과후 교사들은 자영업자인 학원 강사들과 똑같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용자들은 계약을 작성할 때부터 '근로계약'이라고 절대 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4대 보험에도 가입시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지난 15일자로 이 지면에 게재된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신선아 변호사의 “‘사장님’이란 부름에 ‘노동자’라 답한다”는 제목의 글도, 재택위탁 집배원 노동자들이 대한민국으로부터 노동자임을 인정받기 위한 소송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것에는 민간·공공부문의 구별이 없습니다.

전 세계적인 일입니다. 일례로 국제노동기구(ILO)의 제198호 권고인 ‘고용관계에 관한 권고(Recommendation concerning Employment Relationship)’는 ‘위장된 고용관계’(disguised employment relationship)를 근절하기 위한 국가정책 수립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위장된 고용관계란 사용자가 노동자를 피고용인이 아닌 것처럼 계약을 꾸며 노동자의 진정한 법적 지위를 은폐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노동법은 개별 노동자에 대한 권리이든, 집단적인 권리이든 모두 그 권리를 행사하는 사람이 '노동자'임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치 노동자가 아닌 것처럼 하거나 마치 자신이 사용자가 아닌 것처럼 하는 수법이 횡행하면서 지금껏 만들어져 온 노동자의 권리는 근본에서부터 부인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위장’은 사용자와 노동자 2인 사이에만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간에 하청업체를 세우면 진짜 사용자는 노동법상 사용자로부터 멀어집니다. 현대자동차가 사내하도급이라고 말하고 있는 불법파견 노동자들, 삼성전자서비스가 수급자라고 말하고 있는 삼성전자서비스센터의 노동자들이 지난한 투쟁의 길에서 찾고자 하는 것도 ‘진짜 사용자’들과의 교섭입니다.

20일부터 국제노동기구가 개최하는 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 방콕에 왔습니다. 워크숍은 이른바 비정규 노동자(precarious workers)들의 단결권·단체교섭권 등에 대한 것입니다. 방콕으로 떠나기 직전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한 조합원은 유서를 남기고 우리 곁을,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민주노총은 오래전부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조에서 사용자의 정의 개정을 요구해 왔습니다. “근로계약 체결의 형식적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당해 노동조합의 상대방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할 수 있거나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인 지배력 또는 영향력이 있는 자도 사용자로 본다”는 조항을 넣자는 것입니다. 근로조건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지는 자는 단체교섭에 응하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습니다.

노동법 개혁 방향에 관한 이번 워크숍에서 저는 금속노조 조합원의 자결과 민주노총의 오래된 요구의 정당성을 소리 높여 말하고 싶습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진짜 사용자’가 단체교섭을 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법이 있었다면, 단체교섭권이라는 당연한 노동자의 권리를 행사하려고 애쓰던 노동자이자 노동조합의 조합원이었던 그의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지 않았겠냐고 말입니다.

장종오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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