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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차기 회장, 국민도 선택권 있다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삼성그룹의 차기 회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건희 회장 회복 여부와 상관없이 경영권 승계가 조만간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사망설이 나돌 정도로 이건희 회장의 건강 상태가 안 좋다.

삼성의 차기 회장 예정자는 잘 알려진 것처럼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 부회장이다. 워낙 오랫동안 경영권 승계가 진행된 탓인지, 아니면 막강한 권력을 지닌 삼성의 핵심에서 밀어붙이는 일이라 그런지,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는 사회적으로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재용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의 맏아들이니 마치 왕위계승처럼 삼성그룹을 계승하는 것이 정당한 것일까. 국민은 경영권 승계 과정을 그저 관람만 하면 되는 것일까.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

첫째, 삼성의 지배구조는 국민이 투자한 돈으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국민 여론이 삼성 경영권 승계에 반영돼야 한다. 삼성의 지배구조는 삼성생명을 핵심으로 짜여 있고, 삼성생명의 핵심 자산은 1천만명이 넘는 국민이 가입한 131조원에 달하는 보험증서다. 삼성생명은 이 돈을 가지고 삼성전자 주식을 비롯해 삼성물산·삼성중공업·호텔신라·에스원 등의 계열사 주식을 매입했고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맡고 있다. 삼성생명의 대차대조표에는 국민이 가지고 있는 보험증서를 ‘부채’로 기입한다. 즉 삼성생명이 빌린 돈이란 것이고, 1천만명 이상의 시민들이 삼성그룹의 지주회사에 대한 채권자인 셈이다. 당연히 삼성그룹의 차기 회장이 누가 돼야 할지에 대해 발언권이 있다.

둘째, 삼성 경영권 승계는 이미 수많은 탈법이 있어 왔고, 지금도 위법적 성격이 짙은 일들이 진행 중인 만큼 경영권 승계 과정에 관한 시민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와 삼성 특검을 통해 잘 알려진 것처럼 삼성 이건희 회장과 주요 경영진들은 에버랜드와 삼성SDS의 주식을 이재용 부회장(당시 전무)에게 넘겨주기 위해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 이른바 전환사채(CB)·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배정 사건이다. 불법으로 취득한 삼성SDS 주식은 현재 상장을 앞두고 있으며,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SDS 상장시 1조원이 넘는 차익을 챙길 전망이다. 이 돈은 주식 상속에 이용될 것이다. 삼성SDS 매출액의 70%가 내부거래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이재용 부회장의 상속비용을 삼성그룹이 내주는 셈이다. 최근 반년 사이 연쇄적으로 이뤄진 계열사 간 인수합병도 회사의 이해가 아니라 회장 일가의 이해를 위한 재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셋째, 삼성에 대해서는 국민의 주권을 보호하기 위해 기존 법률체계를 초월해 통제권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삼성공화국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삼성의 비중이 사회적으로 크다. 그룹의 매출액은 400조원으로 정부 1년 지출보다 많고, 전자·건설·중공업·화학·유통 등 한국 주요 산업에서 차지하는 위치 역시 절대적이다.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언론계·법조계·정치권에 대한 영향력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국의 시민들이 삼성이 사적소유 기업이기 때문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고 한다면, 한국의 시민들은 민주공화국의 주권자가 아니라는 말과 비슷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삼성에 대해 시민들이 통제할 수 없는 만큼 시민들의 주권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요컨대 국민이 그룹 지주회사에 대해 채권자로서 발언권이 있고, 지분 승계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다수 존재했으며, 삼성의 경제적 권력이 국민의 헌법적 지위를 제약할 여지가 많은 만큼 삼성의 경영권 승계는 삼성그룹 내부만의 일이 아니라 국민적 의견이 반영돼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차기 회장으로 당연시되는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 역사상 가장 어설픈 사업이었던 e삼성 사업의 책임자였고, e삼성 실패 이후에는 이렇다 할 경영실적도 없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 인터넷판은 지난 12일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를 삼성에 대한 심판의 날 도래로 표현했고, 많은 해외 경제지들이 이러한 경영권 승계를 삼성의 최고 불확실성으로 평가하고 있다. 현재 삼성 서초동 사옥에서는 노조탄압에 항의하는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동자들의 파업 집회가 이어지며, 노조간부가 노조를 인정하라며 자결까지 하는 상황이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일언반구도 없이 무책임한 모습이다.

대한민국 경제의 대통령, 선출되는 정치권력보다도 힘이 센 삼성의 회장을 국민이 뽑아 볼 수는 없을까. 당연히 현행법으로는 어렵다. 하지만 국민이 권력에 대해 이의제기를 하는 행동을 조직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삼성의 기업규모가 커질수록 봉건국가와 다를 바 없게 돼 버린다.

시민사회가 이재용 외에 이부진·이서현 등 이건희 회장 친인척에 대한 경영권 승계와 이건희 회장의 지분을 사회로 환원하는 방안,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 사회적 투자 성격으로 지분 인수에 나서는 방안에 대해 국민적 토론과 여론 수렴을 조직해 봤으면 한다. 예능프로그램의 인기투표 식이라도, 한 번쯤 우리는 삼성 왕국에 대한 개입을 시도해 봐야 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한지원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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