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추모 5ㆍ17 범국민 촛불행동' 참가자들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면서 종로를 행진하고 있다.정기훈 기자

 

3만여개의 촛불 행렬이 ‘노란 리본’을 만들었다. 실종된 안산 단원고 학생 18명의 구조를 염원한 촛불 시민들은 지난 17일 저녁 서울 도심을 행진하며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라고 외쳤다. 연령도 직업도 달랐지만 시민들의 마음은 하나였다.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세월호 참사 대응 각계 원탁회의’는 이날 오후 6시부터 청계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추모 범국민행동 집회를 열었다. 3만여명(경찰 추산 1만1천명)의 시민들은 “잊지 않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시민들은 “박 대통령이 퇴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계광장에서 시작해 종로구 일대를 행진한 시민들은 밤 10시께 서울광장에 집결했다. 이어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고 다짐한 뒤 해산했다. 시민 115명은 안국역 인근에서 청와대로 향하다 경찰에 연행됐다. 경찰은 18일 오전 연행자 6명을 석방했다. 113명(석방 4명 포함)에 대해서는 사법처리 방침을 밝혔다.

◇4월16일에 갇힌 교사와 학생들=뙤약볕이 내리쬔 이날 오후 독립문공원의 공기는 뜨겁고 무거웠다. 노란 스카프와 노란 리본을 맨 교사들은 얼굴을 들지 못했다. 섭씨 26도의 초여름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사망·실종된 250명의 학생과 12명의 동료교사들에 대해 교사로서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시민과 교사의 분노와 슬픔은 가라앉지 않았다.

17일 오후 서대문구 독립문공원에서 열린 전국교사대회에 참여한 5천여명(경찰 추산 3천명)의 전국교직원노조 조합원·시민·고등학생의 시선은 참사 당일인 4월16일에 머물러 있었다. 이들은 침몰 중인 세월호 안에 탑승한 학생들의 영상이 나올 때마다 눈물을 훔쳤다.

안산고 교사로 재직 중인 김명하 전교조 안산지회장은 세월호 참사로 숨진 교사들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했다. 그는 세월호가 침몰할 당시 학생들을 구조했던 교사들의 모습을 되새겼다.

김 지회장은 “기간제 교사였던 김초원 선생님은 아래층으로 내려가 제자들에게 구명조끼를 나눠 주다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며 “눈앞에서 300명이 수장됐는데 그걸 바라보던 해경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대한민국을 책임진다고 말한 대통령은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변성호 전교조 사무처장은 "살아 있는 자들은 (세월호 참사의) 슬픔과 애도를 넘어 분노하고 저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대한민국=전국교사대회와 범국민행동 참가자들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요구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16일 특별법과 특검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정부에 대한 비판여론은 오히려 확산되고 있다.

권영국 민변 노동위원장은 “부패하고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권에 시정을 요구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라며 “박 대통령은 국가를 개조하겠다고 밝혔지만,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이 개조돼야 한다”고 비난했다.

정형곤 ‘세월호 참사 대응 각계 원탁회의’ 운영위원장은 “구조에 나선 정부와 해경을 믿고 위안을 삼으며 기다렸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목격했다”며 “학생들이 죽어 가는 과정을 보면서 아무것도 못한 국민이 슬퍼하고 분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번 참사에) 침묵하고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은 죄인 만큼 끝까지 유가족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끝까지 묻겠다고 선언한 43명의 교사들의 심정은 모든 국민의 심정과 같을 것”이라며 “교육이 경쟁과 효율에서 벗어나 평화와 협력 그리고 인권이 존중되도록 우리 교육의 근본부터 바꿔 가겠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가 남긴 깊은 슬픔=세월호 참사는 유가족이 아닌 고등학생·시민들에게까지 깊은 슬픔을 남겼다. 경기도 김포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심다희양은 이날 교복을 입고 독립문공원을 찾았다. 심양은 “사고 직후부터 가만히 있으면 침울해지고,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고 안타까워했다. 심양은 이어 “희생된 아이들이 아직 못해 본 것이 너무 많을 것 같아 미안해진다”며 “이전까지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맞는 것인 줄 알았지만, 사고 이후 학생들은 행복해지는 법이 무엇인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전남지역 초등학교 교사인 노유림 전교조 고창지회장은 “존경하는 선생님은 교직생활 중 제자들이 자살했을 때 가장 힘들었다고 말씀하셨다”며 “학생의 희생도 선생님의 희생도 안타깝고 잔인하고 원통하다”고 토로했다. 노 지회장은 “한 달이 지나도록 무엇이 해결됐고, 무엇이 달라졌느냐”며 “교사들은 감정도 생각도 숨긴 채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 하는 존재인가”라고 되물었다.

60대인 김기철(가명)씨는 “200만원의 급여를 받는 비정규직 선원이 어떻게 선박을 자기 분신처럼 생각할 수 있었겠냐”며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을 눈으로 직접 본 어른으로서 손자뻘인 학생들에게 일어난 참사에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에서 비정규 노동자로 일한다는 김씨는 “언론에 실명이 공개되면 해고될 수 있다”며 익명을 요구했다.

◇“잊지 않고, 가만히 있지 않겠다”=참가자들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질 때까지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다. 침묵시위 제안자인 용혜인씨는 “정부의 무능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님들이 국민에게 슬픔을 드려 죄송하다는 말을 한다”며 “세월호 참사는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만큼 앞으로 이 같은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용씨는 “가만히 있으라는 선장의 말이 이번 참사를 일으켰으니 (이제 국민은) 가만히 있지 말자”고 호소했다.

김갑수 경희대 교수(후마니타스 칼리지)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건강하지 않은 대한민국에서 사는 시민들은 타인의 고통에 동정하고 연민할 게 아니라 공감하고 연대해야 한다”며 “더 이상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 하지 말고, 아이들에게 따뜻한 나라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스승의 날인 15일 동료 교수 180여명과 함께 ‘스승의 날을 반납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286명이 사망하고, 18명이 실종된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마음은 슬픔에서 분노로 바뀌고 있었다. 19일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기대에 미치지 못 할 경우 촛불집회가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광장에서 정리집회를 진행한 참가자들은 “24일 청와대로 가서 세월호 사고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자”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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