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급된 통상임금의 소급적용 여부를 가름하는 ‘기업의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에 대한 하급심의 판단이 엇갈리고 있다. 미지급된 통상임금을 돌려 달라며 노동자 또는 노동조합이 청구소송을 제기한 가운데 법원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나는지를 놓고 판결마다 다른 결론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지법 순천지원 제1민사부(재판장 김동현)는 최근 전남 순천 소재 철강재 포장업체인 (주)누벨 소속 노동자 24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통상임금 관련 소송에서 “재직근로자에게 두 달에 한 번, 퇴직근로자에게는 근무일수에 따라 일할 계산해 지급한 이 회사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면서도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산입할 경우 피고(회사측)로서는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게 돼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 초래되고, 이는 정의와 형평의 관념에 비춰 용인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신의칙 위배 여부를 판단하는 도구로 최근 4년간 당기순이익·당기순손실을 사용했다. 회사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할 경우 추가로 부담하게 되는 인건비와 당해연도의 순이익을 직접 비교한 뒤 회사가 경제적으로 부담을 지게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판결문에 따르면 누벨은 2012년 8천850만원의 순이익을 냈다. 그런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면 3억8천900만원의 인건비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노조의 소급분 청구가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봤다.

노동법 전문가들은 재판부의 이 같은 판단에 의문을 제기했다. 판단의 기준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허점이 많다는 뜻이다. 유성규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는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에 대한 판결에서 보듯이 기업의 경영상태를 판단하려면 기업의 재무상태에 대한 종합적이고 면밀한 검토를 해야 한다”며 “기업이 투자를 늘리는 등의 방식으로 얼마든지 재무상태를 통제할 수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번 판결은 기업에 의해 악용될 여지가 크다”고 우려했다.

반면 지난달 서울중앙지법 민사42부는 고용안정센터 직업상담원 92명이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제기한 통상임금 청구소송에서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특히 노조의 신의칙 위배 여부에 대해 “원고들의 청구 총액(3억5천만원)이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한다고 보기 어렵고, 정부가 피고인 경우 일반 기업이 당사자인 경우와 비교해 그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의) 인정 여부가 더욱 엄격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판단할 만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잣대가 없다는 점에서 앞으로 전개될 통상임금 소송은 혼돈양상을 띨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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