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에 늑장구조로 일관했던 정부당국이 국면전환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부는 지난 7일 국무회의를 열어 해사안전법 개정 공포안을 심의·의결했다. 이에 따르면 해양수산부 등에 일정한 자격을 갖춘 해사안전감독관이 상주하도록 했다. 해사안전감독관은 선박과 사업장 안전관리 상태를 지도·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항로나 정박지 변경 같은 안전진단 대상 사업의 범위와 사업자의 안전진단서 제출시기도 대통령령으로 명시하도록 했다. 해양사고를 줄인 우수사업장에 대해서는 지도·감독을 면제하는 내용도 담겼다. 사후 점검에 그쳤던 해양 안전관리 체계를 예방적 관리체계로 전환하겠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해사안전법 개정안은 세월호 참사 이전에 국회에 계류된 법안이다. 지난해 말에 제출된 해사안전법 개정안은 올해 2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를 통과했다. 국회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후인 지난달 29일 본회의를 열어 해사안전법 개정안을 부랴부랴 통과시켰다. 세월호 참사 이전에 마련된 해사안전법 개정안은 근본처방이라고 하기엔 미흡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해사안전법 개정안을 새 대책인양 포장해 발표했다.

해수부에 따르면 해사안전감독관으로 지정할 공무원은 선박검사관 35명에 불과하다. 선박검사관은 그간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 배들을 대상으로 안전점검을 해 왔다. 앞으로는 화물선에 대한 안전점검도 겸임하게 된 것이다. 역할과 권한은 커지는 반면 안전점검의 질은 상대적으로 낮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게다가 세월호와 같은 연안 여객선은 감독대상도 아니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와는 관련 없는 제도를 홍보한 셈이다. 해양사고의 예방대책이라 포장했지만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해수부는 감독대상에서 빠진 연안 여객선을 대상으로 안전감독관을 별도로 선발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현재 여객선 운항관리는 한국해운조합 운항관리자가 맡고 있으며 해양경찰청이 이를 감독하고 있다. 해수부는 이를 떼어내 직접 관할하겠다는 구상이다. 세월호 참사과정에서 드러났듯 현장경험이 전무하고 지휘능력마저 상실한 해수부가 선박의 안전관리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간 해수부는 선박사가 운항관리규정을 자율적으로 정하는 것이라며 안전관리를 사실상 방치했다.

개정안에는 해수부로부터 지도·감독 권한을 위임받은 기관에도 해사안전감독관을 둘 수 있도록 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다. 이런 규정이라면 불법 개조한 세월호의 안전인증을 내준 한국선급, 과적·과승을 묵인해 준 한국해운조합에도 해사안전감독관을 둘 수도 있다. 해수부와 한국선급·한국해운조합의 유착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 충분히 의심해 볼 만한 대목이다.

해양사고를 줄인 우수사업장에 지도·감독을 면제한다니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이다. 돈벌이에 눈이 먼 선박사가 해양재난을 일으킨 나라에서 자율안전은 사업주에게 면죄부를 주겠다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조선업체 중 최초로 안전보건 이행평가 최고등급을 받은 현대삼호중공업은 두 달이 채 안 돼 죽음의 공장으로 변했다. 자율안전 최고등급을 받은 사업장에서 지난 3월 두 명의 하청노동자가 사망하는 산업재해가 발생한 탓이다. 현대삼호중공업을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는 현대중공업그룹에서는 두 달 새 8명의 하청노동자들이 사망하는 산재사건이 잇따라 일어났다. 이처럼 사업장의 자율안전은 신기루일 뿐이다. 안전은 뒷전이고 돈벌이가 우선인 사업주를 과대포장해 주는 부작용이 크다. 해양재난 대응시스템이 무너진 나라에서 선박사의 자율안전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월호 참사가 20여일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실종자는 차디찬 바다 속에 있다. 정부는 사고수습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사고수습도 힘겨워하는 정부가 이런 설익은 정책들을 내놓은 저의가 의심스럽다. 구조에는 무능한 정부라는 성난 민심을 돌리려 발버둥치는 것처럼 보인다. 말 그대로 국면전환을 하기 위함이다. 지금은 남은 실종자를 찾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 우선이다. 입으로는 구조를 외치고 보여 주기 식 정책을 내놓을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사후대책과 근본처방은 진상규명이 이뤄지고 난 뒤 논의해도 늦지 않다.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참사 정부 합동분향소 주변에서는 희생자 가족들이 수일째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희생자 가족들은 조문객에게 나눠 준 유인물에서 "세월호 선장을 제물로 내세우고 언론플레이만 하는 정부를 믿을 수 없다"며 "엄정한 수사와 진상 규명을 위해 특별검사제를 도입하고 국회 청문회가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세월호 선원직·청해진해운·특정 종교단체에 대한 수사는 빠르게 진행되는 반면 구조에 둔감했던 정부와 유관기관에 대한 수사는 진척이 없음을 질타하는 목소리다. 정부와 여당은 자식을 잃고 피눈물 흘리는 희생자 가족의 요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민심도 이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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