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 철도 민영화 논란에 이어 최근 의료 민영화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정부는 의료 민영화가 아니라 서비스산업 발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영리를 추구하면서도 철도 민영화는 아니라는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반면 시민·사회단체는 '의료 민영화 반대 100만 서명운동'에 나서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동계는 정부가 영리추구 위주의 의료 민영화 정책을 철회하지 않으면 6월 총파업을 통해서라도 저지한다는 방침이다. <매일노동뉴스>와 보건의료노조는 공동기획으로 '의료 민영화 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연속기고를 마련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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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호
부산대 의대 교수

한국 사회는 1997년 말 경제위기 이후로 의료 민영화를 둘러싼 논쟁이 계속 진행 중에 있다. 지난 20여년간 효율과 경쟁이 최우선 가치인 신자유주의 경제논리가 전 사회영역으로 확산되면서 이제는 인간적이고 공공적인 것을 찾는다는 것은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철부지 행위라는 착각마저 들 정도다. 의료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한 시점에 공공적 의료제도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영국 국민건강보험(NHS)의 최근 정책을 살펴보고, 한국에서 의료 민영화 정책이 왜 문제인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8년 탄생한 영국의 NHS는 전체 인구의 50%만 포괄했던 기존 보험 방식의 국민건강보험체계를 대체하는 건강보장제도다. 조세를 기본 재원으로 하며 국민이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때 무상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한다.

국가가 책임지는 특성으로 인해 NHS는 거시 정치경제체제에 민감하게 변화해 왔다. 출범 이후 여러 변화가 있었지만, 근본적 변화가 이뤄진 것은 대처 정부가 들어선 다음이다. 효율과 경쟁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대처 정부는 정부 주도의 공공서비스를 민간에 매각하는 대대적 민영화 조치를 감행했다. NHS는 민간부문으로 매각을 강행하지는 못했으나, NHS에 대한 저투자 기조를 유지하면서 운영에서 효율과 경쟁의 원리를 뿌리내리게 했다. 그 결과 정권 초기인 83년 영국민의 NHS제도에 대한 만족도는 55%에서 정권 말기인 97년 34%로 급락했다. 노동당 또는 자유민주당을 지지하는 국민뿐 아니라 보수당을 지지하는 국민도 불만족하는 제도가 돼 버렸던 것이다.

97년 선거에서 대승을 거둔 노동당 정부는 바로 이 점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총선에서 NHS 개혁은 핵심적 이슈였다. 노동당이 집권 기간 동안 추진한 NHS 개혁은 운영의 자율성과 인센티브, 환자의 권리 보장, 그리고 NHS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요약할 수 있다. 운영의 자율성과 인센티브는 지난 정부의 경쟁과 효율 기조를 유지한 것으로 의료 영리화 요소가 없지 않으나, 더 중요한 것은 NHS의 가장 고질적 병폐인 오랜 대기시간 등 느린 서비스 제공 속도를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대신 지난 정부 때와는 달리 병원 이사회에 주민과 환자의 과반수 참여를 제도화하는 등 의사결정 과정에 국민 또는 환자의 참여를 확대했고, NHS에 과감히 투자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몇 가지 부작용에도 노동당 집권 시기에 국민의 NHS 만족도는 급격하게 증가해 2010년에는 70%에 달했으며, 지지 정당에 관계없이 높은 만족도를 나타냈다.

하지만 2010년 선거에서 승리한 보수당-자민당 연합정부의 노골적 NHS 민영화 정책으로 인해 국민 만족도는 급락하고 만다.

필자는 2010년 영국에 거주할 때, 아이가 아파 동네의원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며칠을 기다려야 하는 줄 알고 있었지만, 당시에는 오전과 오후 당일 예약 시스템을 통해 바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예약 시스템을 통해 바로 이용하기가 어려우면 간호사가 근무하는 워크인(walk-in) 센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안내해 줬다. NHS 성과 목표가 대기시간을 줄이고 서비스 제공 속도를 높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NHS 제도의 핵심인 의료이용 시점에서의 무상의료 원칙은 그대로 견지했다.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보자. 경쟁과 효율의 문제 때문에 국민이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 서비스 제공 속도가 너무 느려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일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한국의 의료체계는 너무 지나친 경쟁과 효율 중심의 운영으로 인해 국민에게 외면당하고 있다. 빠른 서비스를 받을 수는 있지만 의사에게서 자신의 질병에 대해 상세한 설명은 듣지 못한다. 건강보험 재정은 늘어나지만 국민은 여전히 의료비 부담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의사는 비용 때문에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권유하지 못하는 등 의료의 공공성이 상실돼 가고 있는 것이 한국 의료의 문제다. 이처럼 영국에서 직면했던 문제와 한국 의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정반대라 할 수 있다. 영국 NHS가 대기시간을 줄이고 서비스 제공 속도를 높이기 위한 정책에 집중했듯이, 우리나라는 의료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정책에 집중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의료가 사고파는 상품이 돼 버린 한국에서 왜 이를 부추기는 의료 민영화 또는 의료 영리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는가. 우리 사회는 자본의 물욕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해 왔고, 그로 인해 사회정의가 심각하게 훼손당하는 것을 목격해 왔다. 자본의 이기심이 사회정의를 훼손하게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우리 아이들의 생명을 송두리째 앗아 간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가 사회정의보다는 자본의 이기심을 조장해 왔음을 명약관화하게 보여 준다. 의료의 공공성 확보는 바로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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