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가정관리사협회는 지난해 SBS 드라마 '수상한 가정부' 의 제목 변경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 아르바이트노조

“가정부라고 하면 어떤 직업이 아니라 허드렛일하는 못 배우고 형편 어려운 사람 취급받는 게 있어요. 고객들은 이름을 제대로 불러 주지 않습니다. ‘아줌마 이것 좀 해’라면서 하대하는 사람이 적지 않아요.”

서울시내 고객의 집에 주 2회 파견돼 가사서비스를 제공하는 염미희(51·가명)씨. 그의 직업은 한국표준직업분류상 '가사도우미'다. 근로기준법(제11조)에서는 '가사사용인'이다. “가정부·파출부 등 가사에 종사하는 자”로 정의된다. 국어사전과 사회적 통칭도 ‘가정부’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 SBS는 가사도우미가 주인공인 드라마에 <수상한 가정부>라는 제목을 붙여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일을 해도 노동자라 불리지 못하는 현실

“고객들이 여러 요구를 하죠. 막 부려도 된다, 이런 인식이 있어요. 생리혈로 범벅된 속옷을 그냥 던져 두거나 청소·빨래 외에도 A4 용지에 할 일을 빼곡히 적어서 시키곤 하죠. 5분만 늦어도 그냥 돌아가라고 합니다.”

한 고객은 염씨에게 대걸레 밀대를 쓰지 말고 손걸레질로만 온 집안 바닥을 닦으라고 요구했다. 43평 아파트였다. 몸이 힘든 것보다 업무시간 내내 고객이 지켜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어 다니며 걸레질을 하는 처지가 더 힘들었다. 다음부터 못 오겠다고 하자 고객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편하게 밀대를 쓸 거면 내가 했지 왜 돈 주고 당신을 불렀겠느냐”고 화를 냈다.

가정부라는 이름은 염씨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만든다. 근기법은 가정부 등 가사에 종사하는 자는 법 적용에서 제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탓에 산재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 가장 돈이 싸게 드는 헬스클럽을 다니며 알아서 건강을 챙겨야 한다.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어깨와 무릎에 파스를 붙이는 것 외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다.

염씨는 "가장 곤란할 때는 고객이 보수를 안 주려고 할 때"라고 말했다.

“일당이 3만~4만원인데, 월말에 후불제로 한 번에 받아요. 그런데 손님이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든다면서 돈을 안 주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법적으로 강제할 방법이 없어요. 그래도 전문교육을 받은 뒤 제공하는 서비스인데. 고객한테도, 법에서도 인정을 못 받으면 서럽죠.”

패스트푸드점에서도 노동의 이름은 종종 생략된다. 인천의 한 햄버거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이아무개(22)씨. 고객들은 이씨를 향해 대뜸 “○○세트!”를 외친다. “얘, 너”라는 반말은 다반사다. 고객은 ‘알바’의 빠르고 공손한 서비스를 원하면서도 자신과 동등한 취급은 원치 않는다.

회사는 75초 내에 주문을 처리하기 위해 고객이 직접 카드결제를 하는 사이 제품을 포장하도록 한다. 그러면 고객들은 이씨에게 삿대질을 하며 따진다. “이걸 나더러 하라고? 얘 아주 웃기는 애네.”

회사는 '크루' 손님은 '얘·너' 줄임말은 '알바생'

회사는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크루’라는 직함을 주지만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절차다. 매니저는 "매니저님"으로 부르지만 크루들은 나이에 따라 그냥 이름이나 "어머님"으로 통칭된다. 그 과정에서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노동과 휴식권에 대한 존중은 교묘히 생략된다. 손님이 없을 때는 소위 ‘꺾기’(근무시간 줄이기)를 당한다. 손님이 없으면 근무시간이 사라지고, 손님이 많으면 휴게시간이 사라지는 구조다.

존중이 사라지는 경험은 매장 밖에서 더하다. 언론이나 시민들은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알바생" 혹은 "알바야"라고 부른다. 급여나 후생복리도 최저 수준이다. 이씨는 "알바생 대신 다른 말을 썼으면 좋겠다"고 했다.

“알바생이라고 하면 정식으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 그대로 학생이나 견습직이고 부차적인 일을 하니 돈을 좀 덜 주고 막 써도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생활비가 필요해서 정당하게 일하고 돈을 받는 겁니다. 공부나 더 하라거나, 법을 안 지키거나, 불쌍하게 보거나…. 너무 불쾌합니다. 내 노동을 너무 쉽게 보는 것 같습니다.”

가사도우미 염씨는 "그래도 일이 좋다"고 했다. 그는 “생계가 어려워 일을 시작했지만 전문교육을 받은 다음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과정에서 또래 여성들과 동고동락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염씨는 이어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우리의 노동을 존중해 주기를 바란다”는 바람을 전했다.

아르바이트 노동자 이씨는 현재 다른 일을 알아보고 있다. 최저시급을 받고 온종일 선 채로 웃으며 주문을 접수하고 수백 개의 햄버거를 만드는 일이 힘들어서다.

“최저임금 이상을 주는 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네요. 아르바이트는 돈을 덜 받아도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 같은 일을 해도 아르바이트면 불쌍하다고 느끼는 사회적인 분위기, 이런 게 용어와 함께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정당한 노동을 하는데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보조·인부 … “우리 이름을 찾습니다”

공공부문 비정규 노동자들은 같은 현장에서 비슷한 일을 해도 이름을 불리지 못할 때가 많다. 서울시교육청은 교무행정과 수업을 보조하는 학교비정규직을 보조교사나 실무사가 아닌 ‘보조’로 명시한다. 교사와 학생들도 이를 따라 "보조"라고 부른다.

노동조건도 지역마다 천차만별이다. 이들의 신분을 규정하는 법령이 없기 때문이다. 고용과 업무·처우는 각 학교장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 특수교육보조원인 조순옥(50)씨는 “교실 청소를 떠맡거나 교장 자녀의 청첩장을 만들고 교사들의 간식까지 챙겨 날라야 하는 ‘떡셔틀’이 되기도 한다”고 하소연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대부분 행정규칙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을 ‘잡부’나 ‘현업 인부’로 규정하고 있다. 인천의 상수도사업본부에서 일하는 김덕준(34)씨는 “공무원과 같은 민원을 처리하지만 막힌 하수도를 뚫는 것 같이 그들이 기피하는 일은 비정규직의 몫이 된다”며 “우리도 공공업무를 하는 만큼 그에 걸맞은 이름을 갖고 존중받으며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심지어 정부도 노동자를 노동자로 부르지 않는다. 지난달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바꿔 부르자는 근로자 날 제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고용노동부와 새누리당의 반대로 부결됐다.

임서정 고용노동부 대변인은 “법령체계 어디에도 노동자라는 말은 없고 그 말에 대한 법률적 정의도 없다”며 “국민 전체의 정서로 봐도 근로자의 날이 더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개정안을 발의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법에서도 노동과 근로를 혼용하고 있고, 용례에서는 두 말에 별 차이가 없다”며 “근로의 경우 역사적으로 보면 국가통제적 의미가 담긴 용어로 쓰여 왔기에 이를 가치중립적인 노동이라는 말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반박했다.

같은달 30일에는 국립국어원이 공식 SNS를 통해 “노동자라는 말은 근로자로 순화해야 한다”고 안내했다가 비난에 휩싸였다. 국립국어원은 당초 “1992년판 국어순화자료집에 따르면 노동자가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근로자로 순화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가 1993년판 자료집에서는 노동자를 그대로 써도 무방한 것으로 수정됐다는 심 의원의 지적에 따라 오류를 인정했다. 심 의원은 “노동에 대한 정부기관의 부정적인 인식수준이 그대로 드러난 해프닝”이라고 말했다.

“노동을 불온시하는 시각부터 바꿔야”

노동계는 노동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차원에서 명칭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가정관리사협회는 지난해부터 가정부 대신 가정(가사)관리사로 부르자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사무처장은 “국어사전에서 가정부는 ‘보수를 받고 집안일을 해 주는 여자’로 노동자성을 못 갖는 이름”이라며 “명칭을 개선하는 운동은 가사노동자로서 자긍심을 갖고 가사노동이 하나의 직업·노동으로 인정받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1년 한국여성민우회도 비슷한 취지로 식당여성노동자들을 아줌마나 이모가 아닌 ‘차림사’로 부르자는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다.

아르바이트노조(위원장 구교현)는 알바생 명칭을 거부하고 있다. 이혜정 사무국장은 “아르바이트는 전 연령대가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이 돼 가는 추세인데 노동부조차 ‘알바생’ 표현을 쓰는 등 사회적 인식이 여전히 알바생에 머물러 있다는 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지위를 격하시키고 이들의 노동을 법적·사회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장벽을 하나 허무는 차원에서 아르바이트 노동자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운수노조 전회련학교비정규직본부와 노조 지자체협의회 등 공공부문 비정규 노동자들은 ‘공무직’ 직제를 신설해 고용과 지위를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것은 명칭 변경이 아니다. 노동을 보는 시각과 인식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계급관계를 은폐하는 단어들을 모은 <어용사전>의 저자 박남일씨는 “근로자는 보편적인 노동자를 불온시하고 적대시하는 심리가 반영된 말”이라고 설명했다.

박씨는 “말 자체보다는 말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 더 의미 있지만 함께 수업활동에 참여하면서도 교사와 보조로 분리하며 차별을 느끼게 하는 명칭은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현장에서 개선해 나가되, 계급 내에서 또다시 계급을 분리하는 전략은 지배계급의 의도뿐 아니라 신분질서에 익숙해진 문화적 기제가 대중 내에서 작동하는 측면도 있기에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주문했다.

“노동자를 노동자라고 부르라”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는 “이름을 만드는 것은 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정체성을 찾는 일”이라며 “우리 사회가 그동안 노동에 무심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이름을 찾지 못한 노동이 많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는 “명칭만 보면 차림사·실무사 등 여러 대안이 있겠지만 근본적인 것은 노동자를 노동자로 부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호명은 그 존재에 대한 사회적 인식 또는 관계를 반영한다”며 “노동자가 폄하되는 사회와 사회적 지위가 낮으면 함부로 막 불러도 상관없다는 인식이 명칭 문제가 뜻하는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윤성희 기자 / 김미영 기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