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귀동(사진 왼쪽) 사장과 손복식씨. 목재공장에서 10년 넘게 한솥밥을 먹었다. 손씨는 대구산재병원의 재활프로그램으로 산재를 극복하고 직장에 복귀했다. 구은회 기자

 

▲ 대구산재병원
▲ 구은회 기자
▲ 구은회 기자

경북 칠곡군 석적읍의 한 목재가공업체에서 10년 넘게 한솥밥을 먹은 손복식(52)씨와 여귀동(58)씨. 손씨는 직원, 여씨는 사장이다. 촌사람들 아니랄까 봐 카메라를 보더니 꽁무니부터 빼기 바쁘다.

“에이~. 그러지 말고 두 분 다정하게 좀 서 보세요. 그렇게 뻣뻣하게 말고요. 웃으시라고요. 아이 참. 손으로 입 좀 가리지 마시고요. 하나 두울 셋!”

사진 한 장 찍으려다 날 새겠다. 그래도 얼마 만에 되찾은 웃음인가. 손씨는 그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합판을 들어올리다 모서리에 어깻죽지가 찍혔을 때 그는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다. 어깨가 돌아가지 않았다. 회전근개 파열이었다.

구미 시내의 한 병원을 찾았다. 엑스레이를 찍고 수술을 받았다. 열치료와 전기치료도 받았다. 이 정도면 됐거니 했다. 그런데 얼마 못 가 어깨 근육이 다시 찢어졌다. 평생 이러고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무서웠다. 그때 ‘선생님’이 찾아왔다.

“선생님이 회사에 찾아왔어요. 내가 그동안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자세로 얼마나 무거운 짐을 옮겼는지 하나하나 확인하더라고요. 그걸 직무분석이라고 한대요. 직무분석 결과가 이러이러하니 거기에 맞게 재활훈련을 받자고 설득하더라고요.”

손씨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근로복지공단 소속 잡코디네이터다. 공단의 직업복귀프로그램 지원자를 찾아 헤매던 잡코디네이터의 눈에 손씨가 들어온 것이다. 오십 평생 산재병원이 뭐 하는 곳인지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했던 손씨가 대구산재병원과 연을 맺게 된 계기다.

직업복귀훈련 적합자 찾아내 산재병원으로

대구광역시 북구에 위치한 근로복지공단 대구산재병원은 250병상 규모의 재활전문병원이다.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동대구역에서 내려 다시 차로 30분 이상을 더 들어가야 한다. 내원 환자 대부분은 경북지역 거주자다.

<매일노동뉴스>가 대구산재병원을 찾은 지난 18일. 세월호 참사의 여파인지, 날이 흐려서인지 병원 안팎은 차분했다. 환자와 보호자들로 북적거릴 줄 알았는데, 병원 로비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일반 병원과는 확실히 분위기가 달랐다. 왜일까.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1조(근로복지공단의 사업)는 공단이 운영하는 산재병원의 의료행위 범위를 ‘업무상재해를 입은 근로자 등의 요양 및 재활’로 제한하고 있다. 때문에 산재병원은 장기요양병상 위주로 운영된다. 반면 낮병상(외래) 비중이 극히 낮고, 수술을 동반하는 급성기병상은 거의 없다. 그러니 로비가 한산할 수밖에. 이는 산재병원에는 ‘돈 되는 환자’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공단이 운영하는 전국 10곳의 산재병원들이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이유다.<상자기사 참조>

2012년 4월 문을 연 대구산재병원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에 속한다. 지난해 공단 소속 10개 산재병원 중 12억원의 순이익을 낸 대구병원의 실적이 가장 좋았다. 그런데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재활전문병원으로 특화된 대구병원에 지난해 18억원의 산재보험기금이 추가로 투입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기금이 없었다면 적자를 피할 길이 없는 취약한 재정구조다.

맞춤형 재활훈련으로 직업복귀율 17.5% 증가

정부가 18억원이나 되는 기금을 대구병원에 투자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대구병원이 시행 중인 ‘직업복귀소견제’와 ‘작업능력강화프로그램’이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프로그램은 산재근로자의 요양 과정을 직업복귀와 연계하는 선진국형 재활프로그램이다. ‘직업복귀소견제’나 ‘작업능력강화프로그램’이라는 말이 어려워서 그렇지 원리는 단순하다.

공단이 산재근로자 중 재활을 통해 직업복귀가 가능할 만한 사람을 발굴해 직무분석을 벌이면, 대구병원이 그 결과에 따라 맞춤형 재활훈련을 지원한다. 반복훈련을 통해 산재근로자가 다친 부위의 노동력을 회복하면 병원 의사가 직업복귀소견서를 발급해 준다. 그런 다음 병원의 재활훈련 전문가들이 산재근로자의 회사를 찾아가 소견서 내용을 토대로 “예전처럼 일할 수 있으니 복직시켜 달라”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친다.

우리나라에는 이제 막 도입됐지만, 미국이나 독일 같은 나라들은 70년대부터 재활과 복직을 연계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94년 발간된 미국의 물리치료저널에 따르면 이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한 산재근로자의 직업복귀율이 최대 52%까지 증가했다.

대구병원을 비롯해 유사한 프로그램을 도입한 안산·인천·순천 산재병원 등 4곳의 직업복귀율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기준 프로그램에 참여한 산재근로자의 평균 직업복귀율은 75.7%다. 국내 전체 산재요양 종결자 평균 직업복귀율(58.2%)보다 17.5%포인트나 높았다.

“직업복귀율 향상도 좋지만…” 공공병원의 딜레마

대구병원에서 근무하는 전문가들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직업복귀율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탓에 환자를 가려 받아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에 놓이게 된다. 한마디로 딜레마다. 김윤봉 대구병원 직업사회재활실 실장의 얘기다.

“얼마 전 시청 청소노동자가 우리 병원에 입원했어요. 청소차에서 떨어져 뇌손상을 당해 편마비가 온 환자였습니다. 재활전문가들이 달라붙어 집중훈련을 시켰죠. 어느 정도 회복은 됐지만 거동이 불편한 상태가 계속됐어요. 더 이상의 회복은 기대하기 어려웠죠.”

김 실장과 병원 직원들이 시청에 찾아갔다. 예전처럼 청소차를 타는 일은 어렵지만 조금 쉬운 일이라면 복직이 가능하다고 설득하기 위해서다. 그러자 시청측은 도로변 청소업무가 가능하다면 복직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무리였다. 거동이 불편한 상태여서 차로 근처에서 일하다 언제 사고를 당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복직은 무산됐다.

“직업재활 담당자로서 그럴 때 고민이 됩니다. 언제나 직업복귀율을 염두에 둬야 하는 입장이니까요. 상대적으로 증상이 가벼운 환자들에게 재활프로그램을 제공하면 직업복귀율은 더 올라갈 겁니다. 그렇다고 공공병원이 환자를 가려 받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오히려 중증환자에게 공을 들여야 마땅하고요. 이것이 우리의 딜레마입니다.”

병원 직원들이 업체를 찾아가 산재근로자의 복직을 설득하는 일도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박상건 대구병원 대리(직업평가사)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학교식당에서 일하던 아주머니가 산재를 당해 우리 병원에 입원했어요. 재활훈련을 마치고 복직이 가능한 상태라는 소견서도 받았죠. 그래서 제가 해당 학교를 찾아갔어요. 복직을 부탁하러요.”

교문 앞에 도착한 박 대리는 깜짝 놀랐다. 교문 앞에 교사들이 도열해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직원과 학생들이 그가 온다고 대청소를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저는 직원 좀 복직시켜 달라고 읍소하러 간 건데. 학교측에서는 관(官)에서 누가 내려온다고 받아들인 거죠.(웃음) 정반대로 사업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하고요. 분명히 약속을 하고 찾아갔는데 만나 주지 않는 사장님들도 많아요.”

재활전문가의 숨은 노력, 이뤄 낸 복직의 꿈

박 대리는 합판에 찍혀 어깨 근육이 찢어졌던 손복식씨의 원직복직을 도운 주인공이다. 재활훈련 과정을 함께하고, 사업장을 찾아다니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공략 대상은 사장 여귀동씨였다.

“사장님이 군대 시절에 다쳐서 의가사제대를 하셨대요. 본인이 다쳐 봐서 몸이 아픈 직원을 쉽게 내치시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박 대리는 장애가 있는 여 사장을 위한 지원프로그램을 뒤지기 시작했다.

“안전보건공단의 지원 프로그램을 보니 사업주가 장애가 있거나, 산재가 발생한 사업장을 우선적으로 지원해 주는 작업환경개선 프로그램이 있더라고요. 공단에 문의를 했죠. 그랬더니 지원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박 대리의 이 같은 노력으로 손씨는 복직을 하고, 여 사장은 돈 안 들이고 공장의 작업환경을 바꿨다. 꿩 먹고 알 먹고다. 한때 실의에 빠져 재활훈련을 포기하려 했던 손씨는 “다시 일할 수 있게 돼 좋다. 매우 만족한다”고 말했다.

카메라를 피해 한참을 도망 다니던 여 사장도 머쓱한 표정으로 말을 보탠다.

"저 사람 다치기 전에는 우리 회사에서 최고급 인력이었어요. 지금은 몸조심하라고 일부러 쉬운 일을 맡깁니다. 왜 해고시키지 않았냐고요? 병원에서 귀찮을 정도로 찾아오더라고요. 다시 써 달라고.(웃음) 그뿐인가요. 저 사람하고 나하고 몇 년 인연인데. 돌려보내면 딴 데 취직도 안 될 것 같고…. 잘한 선택인 것 같아요."


산재병원에는 산재환자만 있다?
‘산재병원=이류병원’은 선입견 … 병상 못 채워 적자, 정부지원 늘려야

“우리 병원에 한 번 오신 환자는 다른 병원에 못 가세요. 시설과 재활치료 수준이 다르니까요.”

이재근 대구산재병원 행정부원장의 말이다. 실제로 그랬다. 대구병원의 입원 병실은 총 66개로, 병상수를 기준으로 하면 250개 병상이다. 1인실(2개)과 2인실(4개)을 제외하면 나머지 병실이 모두 4인실이다. 4인실에는 일반병상 6인실 기준으로 건강보험수가가 적용된다. 입원료가 싸다는 뜻이다.

의외로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 한 가지. 산재병원은 산재환자만 가는 병원이 아니다. 요양이나 재활치료를 원하는 일반 환자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민간병원보다 저렴한 입원비를 내고 양질의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수중재활치료센터 같은 수준급 시설도 이용 가능하다.

재활전문병원으로 특화된 대구병원에는 다른 산재병원에 없는 직업사회재활실이 있다. 그곳에서 직장복귀를 원하는 환자들의 현재 상태를 점검하고, 재활훈련 계획을 세운다. 핵심은 ‘직업능력 평가·강화 프로그램’이다. 직업복귀를 위한 맞춤형 재활훈련, 환자가 일했던 회사의 사업주를 대상으로 한 복직상담이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문제는 돈이다. 산재병원은 인건비와 운영비를 자체 수입으로 충당해야 한다. 산재보험기금 지원은 시설공사나 장비구입 등에 한정된다.

그런데 산재환자 진료수가나 재활치료수가의 원가보전율은 75%에 불과하다. 예컨대 환자를 치료하는 데 100원이 들었다면 병원이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는 수가는 75원에 그친다. 민간병원들이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하는 특진 같은 비급여항목도 산재병원에는 거의 없다. 일반 환자에게만 20% 정도의 비급여항목이 적용되는데, 이 역시 민간병원(55%)보다 적용률이 낮다.

대구병원의 경우 접근성이 문제다. 대구 시내에서도 한참 들어가야 하는 위치 때문에 수도권이나 다른 지역 환자들이 대구병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실제 대부분의 환자가 경북권 거주자들이다. 사정이 이러니 병실이 채워지지 않고 있다. 15% 정도의 병상이 빈 침대로 남아 있다. 최근 '그 병원 좋다더라'는 입소문이 퍼져 멀리서 대구병원을 찾아오는 환자가 늘고 있기는 하다. 그래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산재병원에 대한 일반인들의 선입견도 넘기 힘든 벽이다. 산재병원은 진료기능이 취약하고 시설이 노후해 의료수준이 떨어지는 이류병원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회예산정책처는 “산재환자 감소와 민간병원과 경쟁하는 의료환경 변화로 산재병원의 진료실적이 2004년을 정점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수입 둔화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안정적인 재정관리 방안을 포함해 공공병원에 대한 종합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회에 산재병원 적자 해소를 위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해당 법안은 산재병원의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병원의 운영비용을 지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현재 정부는 국립암센터와 보훈병원·국립중앙의료원·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의 운영비용을 예산 또는 국민건강증진기금으로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 산재병원은 빠져 있다. 심 의원은 “공공병원의 적자는 우리 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할 착한 적자”라며 “산재에 따른 연간 경제손실이 19조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정부가 산재근로자의 직장복귀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산재병원의 중요성을 외면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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