땜빵노동자. 특성화고 현장실습생들은 서로를 ‘땜빵’이라고 부른다. 특성화고에서 3학년 1학기를 마친 이들은 하나둘씩 공장으로 들어가 정규직·비정규직·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빈자리를 채운다. 운이 좋은 학생들은 채용되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현장실습 기간이 끝나면 공장을 떠난다. 2011년 열일곱 살의 나이였던 김아무개군도 땜빵노동자였다. 김군은 3학년 1학기를 마친 후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스프레이·재연마 공정에 투입됐다. 자동차 공장 도색부는 어른들도 손사래를 치는 곳이다. 김군은 주당 70시간 가량 일했다. 그해 12월17일 김군은 공장에 들어간 지 세 달 만에 의식을 잃고 쓰러진 후 현재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군은 현재 21살이다.

‘땜빵노동자’들의 사고는 이후에도 끊이지 않았다. 올해 1월20일 충북 진천 CJ제일제당에서 일하던 김아무개(19)군은 출근하지 않고 기숙사 옥상에서 투신자살했다. 김군은 종종 가족들에게 “하루에 12시간 이상 일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2월10일 울산시 북구 모듈화산업단지 내 금영ETS 공장 지붕이 붕괴됐다. 금영ETS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던 김아무개(19)군은 지붕에 깔려 질식사했다.

무리한 취업률 경쟁 현장실습생 죽음 내몰아

현장실습생의 잇단 사상사고에도 정부는 특성화고의 취업률을 높이는 데에만 주력했다. 교육부는 특성화고 취업률을 2011년 25%에서 2013년 60%까지 확대하라고 요구했다. 27일 전교조에 따르면 교육부는 취업률이 목표에 미달할 경우 일반고로 전환시키거나, 학교를 통폐합하고 장학금을 차등지급하겠다고 압박했다. 정부가 취업률에 목을 매니 교육부가 특성화고를 압박해 현장실습생을 산업체로 밀어 넣는 셈이다.

만 15세 이상 18세 미만 청소년의 근로시간이 하루 7시간·주 40시간 이상을 넘지 못하도록 한 근로기준법 조항은 휴지 조각이 됐다. 2012년 정진후 정의당 의원실이 조사한 ‘고교 현장실습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10명 중 5명 이상이 하루 8시간 이상 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야 교대 근무를 하는 현장실습생은 30.5%에 달했다. 19.1%는 10인 미만 영세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환경에서 진행되는 현장실습에 대해 "실습이란 이름의 노동착취"라고 말한다. 하인호 전교조 실업위원회 부위원장은 “현장실습 과정에서 직업교육도 불가능하고, 학교 수업시간보다 길게 일하게 되면서 각종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현장실습생은 노동부의 관리·감독은커녕 교사와 면담을 하기도 어려웠다. 2012년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의 조사 결과 54.4% 교사만이 실습기간에 사업장을 방문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습기간 동안 학교에 출석한 학생은 47.1%에 그쳤다.

하 부위원장은 “학생들이 일하는 작업장을 보고 싶어도 출입이 불가능해 관리실에서 잠깐 동안만 만날 수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교육부는 취업률을 높이라고 압박하는데 애들이 돌아오면 취업률이 떨어지니까 달래서 산업체로 돌려보내는 일도 잦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의 부실감독도 도마에 올랐다. 이수정 공인노무사(노무법인 휴먼)는 “2011년 기아자동차의 현장실습생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에야 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에 나섰다”며 “노동부가 현장실습생의 노동인권을 보호하는 부처인데도 항상 사고가 터지고 난 후 나서니 사후약방문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후퇴하는 정책 … “학생들이 위험하다”

그럼에도 안전대책은 오히려 후퇴될 것으로 우려된다. 기획재정부·교육부 등 6개 정부부처는 지난 15일 특성화고에 재학 중인 학생이 2학년 2학기를 마친 후부터 현장실습에 나설 수 있도록 한 ‘일자리 단계별 청년고용대책’을 발표했다. 정부안대로 시행될 경우 현장실습생의 실습기간은 현행 6개월에서 1년까지 확대된다. 현재 현장실습생들은 3학년 1학기를 마친 8~9월부터 현장실습을 나가고 있다.

노동·교육단체는 정부안이 특성화고의 직업훈련과 공교육에 부정적 역할을 끼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임동헌 전교조 광주지부 참교육실장은 “현장실습생의 임금이 비정규·하청업체 노동자보다 낮기 때문에 현장실습생을 쓸수록 기업은 인건비 절감 효과가 크다”며 “(현장실습생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기아차 공장에서는 100여명의 현장실습생을 쓰면서 지급하지 않은 인건비만 20억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순 업무에 실습생을 많이 배치할수록 인건비 절감효과가 크기 때문에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동헌 실장은 특히 "어른들도 견디기 어려운 육체노동을 고등학교 2~3학년의 학생에게 하라고 하면 어떻겠느냐"며 "집이 가난해서 학교 대신 일하러 가는 아이들을 더 오랜 기간 동안 일을 시키는 게 정부가 할 짓이냐"고 반문했다.

정부가 이처럼 무리한 대책을 내놓은 이면에는 '고용률 70%'라는 국정과제가 자리 잡고 있다. 정부는 ‘일자리 단계별 청년고용대책’ 보도자료에서 “진학·스펙쌓기·취업준비 등으로 비경활인구 증가에 따라 15~24세 고용률 하락으로 청년 고용률이 낮다”며 “청년층의 교육·직업훈련·구직 등 전 단계에 대한 실태분석을 통해 맞춤형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장실습생의 실습기간이 길어질 경우 사고가 늘어날 개연성이 높아진다. 배경내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활동가는 “언론에 보도되는 사고는 사망사고가 대부분이지만, 실습생이 일하는 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사고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며 “실습생의 노동환경이 개선되지 않고 근무기간만 길어지면 그만큼 사고의 위험성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부는 현장실습이 잘될 수 있게 하고, 노동부는 근로감독권이 있는 만큼 양 부처가 협력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계획은 검토 중에 있다”고 말했다.

“개혁 불가능한 현장실습생제도 폐지해야”

전교조 실업위원회를 비롯해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제도의 개선을 요구해 왔던 단체들은 “현장실습생제도는 폐지하는 것이 맞다”고 입을 모은다. 우수한 산업기술 인력을 양성하기보다 최저임금 수준을 받는 단기계약직을 활용하는 통로로 악용되기 때문이다.

2012년 정진후 의원실이 특성화고 학생을 대상으로 학교전공과 실습업체의 업무 일치 여부를 조사한 결과 10명 중 4명의 학생이 “관계없다”고 답했다. 배경내 활동가는 “현장실습생은 나사를 돌리거나, 불량품을 골라내고, 청소를 하는 등 단순·반복업무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아 산업기술 인력 양성과는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하인호 부위원장은 “현장실습생은 원래 취지를 상실했고, 취지에 맞게 개혁하는 일도 불가능한 만큼 폐지하는 것이 맞다”며 “전문인력이 있는 각종 산업협회에서 교육하는 것이 아닌 기업에서 현장실습을 한다면 지금 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임동헌 실장은 “현재 특성화고에도 각종 자재와 기자재가 배치돼 있어 기술인력을 양성할 수 있다”며 “지금 방식의 현장실습은 교육적 효과가 없고 부정적인 효과만 있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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