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규제를 두고 “암 덩어리”이자 “쳐부수어야 할 원수”라는 황당하고도 희한한 발언을 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이 발언의 목적은 철도와 공항 같은 공공기관의 민영화, 국민건강보험의 약화를 통한 공공의료제도의 해체, 무엇보다도 자본의 자유로운 이윤 축적을 방해하는 각종 규제의 폐지를 추진하는 데 있다.

대통령이 깃발을 들고 앞장서자, 자본과 부자를 위해 복무하는 언론과 지식인들이 총대를 메고 나섰다. 대표적인 예로 강원대 교수 민경국의 <한국경제> 칼럼(2014년 4월7일자)을 들 수 있다. 그는 한국경제가 규제의 늪(?)에 빠진 이유로 “민주적 법사상”을 지목하면서 “이는 법의 내용 대신 그 원천을 중시하는 사상인데 국회를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으로 보고 구성원 다수가 결정한 것이라면 대중영합·차별·특혜입법도 법이라고 여긴다. 이런 민주사상은 헌법을 통해 국회의 입법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헌법주의’를 무력화시켰다. 그 결과 국회는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억압하는 규제를 법의 이름을 달고 마구 찍어 내고 있다”고 의회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매일경제>의 손현덕은 4월3일자 실명칼럼에서 '암 덩어리 규제가 풀리지 않는 이유'로 국토의 균형발전 도모·근로자 권익보호·쾌적한 생활환경 보장·균등한 교육과 의료서비스 제공·대기업의 독점 폐해 방지 같은 “공공성과 형평성이라는 고상한 명분”을 거론하면서 “지옥으로 가는 길은 대개 선의로 포장되게 마련이며, 착한 규제란 포장지를 뜯으면 그 안엔 악마의 발톱이 숨겨져 있다”는 막말을 일삼았다.

대기업과 외국자본의 영업 자유와 이윤 보장을 위해서는 민주주의도 필요 없고, 노동권을 비롯한 환경권·교육권·건강권 등 국민기본권도 폐기할 수도 있다는 나치즘과 파시즘의 발언을 우익언론들이 아무 두려움 없이 쏟아낸 배경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암 덩어리·원수” 발언이 자리 잡고 있음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세월호 참극’이 일어난 지난 수요일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저주하고 쳐부수려는 규제가 자본과 부자에게는 “암 덩어리·원수”이지만, 노동자와 서민에게는 “생명줄”이요 “동반자”라는 사실을 목도하고 있다.

“착한 규제”를 두고 “악마의 발톱이 숨겨져 있다”며 정신병자 같은 소리를 내뱉던 <매일경제>는 4월19일자 사설에서 정반대로 주장한다.

“지금처럼 수백 명 목숨을 앗아 간 사고를 내고도 몇 년 징역으로 때울 수 있도록 한다면 한국은 위기 때마다 책임 있는 자들이 먼저 도망가는 영원한 후진국으로 남을 것이다. 이번 여객선 참사가 후세에 길이 남을 징비록이 될 수 있도록 안전관리와 사법체계에 일대 경장(更張)을 이뤄야 한다.”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언제는 “착한 규제”가 공공성과 형평성이라는 고상한 명분을 등에 업은 악마의 발톱이라더니, 이제는 “후세에 길이 남을 징비록이 되도록” 안전관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자고 떠벌린다.

지난해 4월24일 방글라데시에서 라나 플라자 빌딩이 무너졌다. 붕괴 사고로 빌딩 안에 있던 봉제공장 노동자 1천100명이 죽고, 2천500명이 다쳤다. 물론 이 빌딩과 공장은 모든 규제로부터 자유로웠다. 건물주와 공장주는 영업 활동과 이윤 추구의 자유를 완벽하게 보장받았다. 노동권·환경권·건강권 같은 “암 덩어리·원수·악마의 발톱”은 존재하지 않았다. 방글라데시 국회가 법 규제로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가로막지 않았으며, 그나마 있던 규제도 무력화돼 작동하지 않았다. 그 결과 자본과 부자에게는 천국이, 노동자·서민에게는 지옥이 펼쳐졌다.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은 4월19일 실명칼럼에서 “인명보다 돈·자리 우선하는 나라, 경제성장 더 한들 무슨 소용이랴”고 거들었다. 하지만 3월22일자 칼럼에서는 “복지·경제 민주화 겉멋에 매달려 경제 혁신·규제 철폐 미룬 박 정부”라며, 인명보다 돈·자리를 우선하는 나라를 만들라고 정부를 압박했다.

“인명보다 돈·자리를 우선하는” 이 지옥을 누가 만들었을까. 박정희라는 이름 석 자로 대표되는 '산업화 세력'과, 이에 부화뇌동한 '민주화 세력'이 만들었다. 노동자·서민의 목숨보다 기업 활동과 이윤 추구의 자유가 더 소중한 나라를 만든 장본인들이 권력의 정점에 똬리를 틀고 앉아 규제를 “암 덩어리·원수”라고 저주를 퍼부으며 마녀사냥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새 정치를 한다는 안철수는 박정희 무덤에 머리를 조아렸고, 대구시장에 나선 김부겸은 “박정희의 공은 과보다 크다”며 박정희 세력에 아첨을 떨었다. 자칭 진보정당들을 비롯해 '민주화 세력'이 정신 못 차리고 '산업화 세력'에 영혼을 파는 동안, 진짜 산업화 세력이자 민주화 세력인 노동자와 서민의 아들딸들이 허망하게 죽어 나가는 지옥도를 우리는 지금 목도하고 있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