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 철도 민영화 논란에 이어 최근 의료 민영화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정부는 의료 민영화가 아니라 서비스산업 발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영리를 추구하면서도 철도 민영화는 아니라는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반면 시민·사회단체는 '의료 민영화 반대 100만 서명운동'에 나서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동계는 정부가 영리추구 위주의 의료 민영화 정책을 철회하지 않으면 6월 총파업을 통해서라도 저지한다는 방침이다.

<매일노동뉴스>와 보건의료노조는 공동기획으로 '의료 민영화 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연속기고를 마련했다. 3월부터 6월까지 매주 월요일자에 학계 전문가와 현장 정책담당자, 의료산업 노동자들의 글을 게재한다.<편집자>

 

김종명
가정의학 전문의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건강보험하나로 팀장)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 민영화 정책은 단지 원격의료, 영리자법인과 같은 의료공급영역만이 아니라 의료재원조달 측면에서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의료재원조달이란 질병치료와 건강향상을 위해 지출하는 의료비를 누가·어떻게 부담할 것인가를 말한다. 즉 의료비를 건강보험과 같은 사회보장방식으로 해결할 것인가, 아니면 국민이 각자 알아서 민간의료보험과 같은 사보험에 가입해 의료비를 해결하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의 의료비를 해결하는 데 건강보험의 역할을 확대하기보다는 실손의료보험과 같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해 각자 해결하라는 정책을 펴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허용해 준 노후의료비보장보험과 노후실손의료보험이 그것이다. 이들 사보험은 하반기에 출시될 예정이다.

사실 지금도 많은 국민이 사보험에 가입하는 실정이다. 병원비를 돌려준다는 실손의료보험에 전체 국민의 60%가 가입해 있다.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하면 본인부담의 90% 정도를 보상받을 수 있으니, 건강보험 보장까지 합치면 거의 무상의료 수준의 혜택을 누린다. 대신에 비싼 보험료를 부담해야 하는데, 월 7만~10만원이나 된다.

그런데 현행 실손의료보험은 60세 이상의 노인에게는 판매하지 않는 한계가 있다. 현행 실손의료보험 구조에서는 노후에는 보험료가 수십만원으로 비싸지게 된다. 실손의료보험 시장이 거의 포화에 이르자, 보험회사들은 그간 실손의료보험을 판매하지 않았던 노인에게도 판매할 수 있는 실손의료보험 상품을 새로 개발해 줄 것을 정부에 요구해 왔다. 또한 노후 의료비를 대비해 젊을 때 적립해 노후 때 사용하는 상품을 만들었다. 이를 박근혜 정부가 허용해 줬는데, 각각 노후실손의료보험·노후의료비보장보험으로 불린다.

박근혜 정부는 민간의료보험 확대를 지원하는 것에는 적극적인 반면 건강보험 보장을 확대하는 것에는 매우 인색하다. 이미 대통령 당선에 한몫했던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공약은 임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파기했다. 그나마 공약파기 비판여론에 밀려 겨우 3대 비급여(선택진료·상급병실료·간병료)에 대한 대책을 내놓았을 뿐이다.

박근혜 정부의 민간의료보험 확대 정책도 대표적인 의료 민영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의료비 해결을 국가가 책임지는 사회보장방식이 아니라 국민이 각자 알아서 사보험으로 해결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료 민영화의 근저에는 매우 첨예한 이해관계가 개입돼 있다. 정부·새누리당·재벌·보험사·보수언론은 한목소리로 의료 민영화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이들은 자본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 다시 말해 의료 민영화란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일 뿐이다.

자본은 어떻게 의료 민영화와 이해관계가 있을까.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원격의료와 자회사를 보자. 원격의료를 추진하는 목적은 통신·IT 기업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주려는 데 있다. 영리 자회사도 같은 맥락이다. 인구의 고령화와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로 인해 국민의 의료비 지출이 급증하고 있다. 자본의 입장에서 의료는 매력적인 투자처다. 의료기관에 자본의 진출을 허용해 주려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민간의료보험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건강보험 보장률이 정체되고 국민의 의료불안을 해결해 주지 못하자, 국민은 암보험·실손의료보험에 값비싼 보험료를 지불하고서라도 가입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민간의료보험 규모는 대략 40조원 정도로 국민건강보험 재정과 맞먹을 정도로 성장하고 있다.

민간의료보험은 건강보험과 대립적 성격을 갖고 있다. 예컨대 건강보험의 보장이 확대된다면 민간의료보험시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특히 건강보험의 본인부담금을 보상해 주는 실손의료보험은 건강보험의 보장이 높아지면 실손의료보험의 비중이 줄어들고, 그 반대도 성립한다. 그러다 보니 보험사들은 건강보험의 보장 확대를 반대한다. 민간의료보험을 판매하는 보험사는 대부분 재벌들이 소유하고 있다. 당연히 건강보험을 위축시키고, 민간의료보험을 확대하려 한다.

자본이 건강보험의 보장 확대를 반대하는 이유는 또 있다. 그것은 자본이 부담해야 하는 사회보장기금 때문이다. 건강보험 재원은 대략 국민 50%, 사업주 35%, 국고 15% 정도로 구성돼 있다. 건강보험의 보장을 확대하려면 추가적인 재원이 필요한데, 이때 사업주 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사업주들은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가 달갑지 않을 것이다.

자본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의료 민영화가 진행되면 국민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게 된다. 의료비가 대폭 증가해도 양질의 의료혜택을 누리지 못할 것이고, 돈의 유무나 사보험 가입 유무가 의료이용 유무를 결정하게 되면서 심각한 의료 양극화를 조장할 것이다.

의료 민영화는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 원격의료와 영리자법인 허용을 저지하고, 근본벅으로 건강보험을 강화시켜야 한다. 불필요하게 과다한 사보험 지출을 줄이고, 누구나 병원비 걱정 없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건강보험을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 의료 민영화를 저지하고 민간의료보험 대신 건강보험 하나로 무상의료를 실현하는 길에 관심을 갖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