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철도노조
지도위원
(전 민주노총 위원장)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이었던 2004년 서울시는 버스준공영제와 함께 도시철도(지하철)와 환승할인, 버스전용차선을 도입해 대중교통체계를 획기적으로 개편했습니다. 당시 서울시 버스회사의 약 80%가 적자였습니다. 버스회사들은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곡예운전이나 수익노선에 대한 중복경유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는 다시 교통체증으로 이어졌습니다. 대중교통체계 개편은 이 같은 악순환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마련됐습니다.

버스나 철도에서 동일한 노선에 대한 복수운영자 간 경쟁이라는 것은 이렇듯 비효율적입니다. 만약 이런 굴곡노선을 바르게 펴고 버스와 도시철도 간 환승이 가능하다면 승객의 입장에서는 훨씬 편리하고 빠르게 최종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필요한 경쟁으로 인한 교통사고도 당연히 줄어들 것입니다.

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이 승차를 할 때 선택기준은 버스회사 이름이 아닙니다. 그 버스가 어디를 경유하는지를 봅니다. 자신이 매일 타는 버스의 회사이름을 아는 시민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물론 서울시가 도입한 버스 준공영제는 운수노조를 비롯한 진보진영의 버스완전공영제 정책 일부를 차용한 것입니다.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시민의 입장에서 편리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현재 서울시를 시작으로 6개 광역시에서 실시하고 있는 버스 준공영제는 기본적으로 민영버스회사의 운행면허권을 보장해 주고, 노선조정에 따른 적자분은 세금으로 메꾸는 방식입니다.

버스 한 대당 필요한 유류비와 인건비 등 표준운송원가 부족분을 보전해 주는 것이지요. 자칫 세금이 민영버스회사의 불로소득으로 둔갑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장부상 직원을 조작해 인건비를 부풀리거나 적자 폭을 높게 잡아 보상금을 받아 내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결국 민간자본에게 공공서비스를 맡긴 원죄 때문에 공적자금을 민간회사에 투입하는 모순이 발생합니다.

근본적인 대안은 민간버스회사 운영권을 지방정부로 이전하는 완전공영제입니다. 수익노선을 소유한 민영버스회사의 반발이 클 것이고, 일종의 국유화 조치인 만큼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할 것입니다.

다만 자본 잠식상태에 빠진 대다수 지방버스회사의 경우 현행 법률로도 지방정부가 인수할 수 있습니다. 이런 지역부터 시범적으로 완전공영제를 실시해 점차 확대해 나가는 것을 검토해 볼 수 있습니다. 2009년부터 버스완전공영제를 실시하고 있는 전남 신안군의 성공사례나 우리나라 최초의 무상급식을 실시한 경남 합천군의 공통점은 재정이 취약한 지방정부임에도 불필요한 토건사업보다는 지역주민의 기본복지를 위한 세금 지출을 먼저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두 곳은 지역경기가 살아나고 인구가 증가하는 순기능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PSO(Public Service Obligation)라고 불리는 공공서비스보상 제도는 철도운영자에게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지방선과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도 차별 없는 열차운행 의무를 지우고 국가가 이를 보상해 주는 제도입니다.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는 시민들이 지역과 연령·장애의 차별 없이 이동할 권리를 기본권으로 보장합니다.

유럽 선진국이 국가복지 차원에서 이동권을 보장하는 것과는 달리 일본은 기업복지 차원에서 자사 직원들에게 교통수당을 보조하고 있습니다. 보편적 복지모델과 선별적 복지모델의 근본적인 차이입니다. 그런데 왜 유럽은 이동권을 보편적 복지로 인식하는 것일까요. 우리나라에서도 노동자의 출퇴근 시간에 발생한 사고를 산업재해로 인정하듯이 현대 산업사회에서 시민들의 경제활동을 위한 이동은 노동시간의 범주로 봐야 한다는 입장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이동권을 보호하고 단축하면 사회적으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친환경 대중교통체계로의 전환은 자가용 이용을 억제해 환경·에너지 문제와 같은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교육 의무를 위해 등하교를 하는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통학버스를 제공하는 것과 지방정부가 무상버스를 제공하는 것이 다른가요. 가능한 지방자치단체부터 무상급식과 무상버스, 보편적 복지를 확대하는 것은 수도권 집중 문제를 해결할 유력한 정책수단입니다.

1부에서도 소개했듯이 퇴임 후에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룰라 브라질 전 대통령은 “왜 부자들에 대한 지원은 투자라고 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대한 지원은 비용이라고 하느냐”고 말했습니다. 민생을 돌보는 정치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입니다.

철도노조 지도위원(전 민주노총 위원장) (krw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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