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지난주까지 대부분의 기업에서 감사보고서를 제출했고, 경영설명회부터 시작해 곧 임금교섭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순이익이 많이 늘어 성과급 요구가 커진 노조도 있고, 생산은 늘었지만 순이익이 줄어 회사의 경영 꼼수를 의심하는 노조도 있다.

상장사를 보면 지난해 국내외 계열사를 포함한 연결기준으로 매출액은 2%가 증가했고, 순이익은 4%가 감소했다. 상장된 기업만을 계산한 개별기준으로는 매출액은 1% 증가했고, 순이익은 15%가 줄었다. 매출액과 순이익 모두 국내보다 해외에서 선방했다는 의미다. 산업별 특징으로는 수출 산업인 전기전자와 운수장비는 매출이 증가한 데 반해 대표 내수산업들인 건설·서비스·유통은 매출과 이익 모두 크게 줄어들었다. 한국 경제가 수출 대기업 성장과 내수 부진으로 양극단화되고 있는 모습이 지난해에도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기업의 지불능력만 놓고 보면 수출 재벌 노동자와 나머지 노동자 사이 임금 격차는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초기업적 임금교섭이 극소수에 불과한 한국 노동운동 특성상 기업별 지불능력 변화에 따라 임금교섭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1천800만명 취업자 중 30대 재벌, 그리고 이 재벌과 어느 정도 이익을 공유하는 중견기업에 다니는 이들은 넓게 잡아도 250만명 정도에 불과하다. 14%다. 대기업들도 인정하듯이 수출 대기업의 내수에 대한 낙수효과도 미미하기 때문에 나머지 86% 노동자는 수출 대기업 성장의 과실을 공유하지 못한다. 위 산업별 상장사 매출 증감에서 볼 수 있듯이 내수 부분 산업들은 삼성전자나 현대차 성장에 관계없이 몇 년 째 하락세다. 임금노동자만이 아니라 700만에 달하는 자영업자까지 감안하면 수출 대기업들의 나 홀로 성장은 더욱 심각해진다.

정부는 매년 내수산업과 수출산업의 격차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서비스산업의 고부가가치화나 벤처창업활성화 등 뻔한 산업육성 정책을 내놓는다. 박근혜 정부는 이런 정책들을 짜깁기해 창조경제라 이름 붙였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은 사실 86% 노동자들에게 그다지 효과가 없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육성한다는데,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이란 게 별 게 아니라 부자들을 상대로 한 서비스업, 속된 말로 하면 ‘하인 노동 육성책’이 대부분이다. 고용효과나 소득증가 효과가 그다지 없는 것들이다. 벤처창업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2천년대 김대중 정부의 벤처육성 정책이 오히려 벤처기업 거품과 줄도산으로 이어져 실업자만 만들어 냈던 사례를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사실 김대중 정부보다도 부실한 정책이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단지 한 두해가 지나면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란 점이다. 한국 경제에 대해 대부분의 전문가가 이야기하는 것이 더 이상 80~90년대식 고성장은 없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시장 점유율을 높여 더 잘 나갈 수도 있겠지만 나머지는 앞으로도 지지부진한 상황을 이어 간다는 전망이다. 도요타나 소니와 같은 글로벌 기업 몇 개를 제외하고 나라 전체가 불황에 빠졌던 일본의 90년대와도 비슷한 상황이다.

저성장, 혹은 장기불황에서의 사회적 특징은 유럽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노동시장의 고령화와 청년실업이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성장 전망이 불투명한 만큼 신규 채용을 꺼리고, 지불능력이 되는 회사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그곳에 남아 있기 위해 필사적으로 경쟁한다. 노조 역시 웬만한 양보가 고용조정보다 낫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한다. 신규조합원이 줄다 보니 노조는 급속도로 고령화된다. 노동시장 전체 상황보다도 고용에 대한 교섭력이 있는 조직 노동은 고령화 속도가 더 빠를 수밖에 없다. 결국 유럽의 노동조합들 중 상당수는 연금 받는 조합원이 임금을 받는 조합원보다 더 많아질 정도가 됐다. 일본의 노동조합은 노조수는 그대로인데 조합원 수는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한국의 저성장 시대, 고령화 시대 진입 시기는 유럽이나 일본보다도 빠르다. 그런데 한국의 노동조합 운동은 상대적 기득권 지대인 재벌 대기업과 공공부문에서만 안주하려는 경향이 여전히 강하다. 다소 비극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굳이 노조 탄압이 있지 않더라도 이런 식이면 한국 노동조합 운동은 곧 자연 소멸할지도 모르겠다.

올해를 포함해 앞으로의 임금 교섭은 개별 기업 지불능력보다는 한국 경제 전체, 산업 전체를 보며, 노동조합운동 미래를 설계하는 마음으로 진행해야 한다. 예를 들면 내 사업장의 통상임금 관련 교섭보다 공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공단 노동자들의 임금체계 개악에 대한 대응이나 법정 최저임금 인상과 같은 투쟁들이 그런 예일 것이다. 내수 진작의 키가 임금노동자의 소득증가다. 그리고 이 소득증가는 미조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릴 방법이 관건이 될 것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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