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희
공인노무사
노동법률원법률사무소 새날

근로복지공단은 어떤 기준으로 움직이는 조직인가. 단적으로 말하면 지침과 지시·매뉴얼에 의해 움직이는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지침과 지시·매뉴얼은 왜 필요하고, 과연 공정한 것인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문제는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법원의 사례가 없는 부분이 상당하다. 행정기관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내부운영과 판단기준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공단은 산재보험법의 취지와 입법·법률 판단사례를 축적해 요양·보상·재활·진료비 등 산재 전 분야에 있어 내부 업무처리기준인 ‘지침·지시·매뉴얼’을 마련하고 있다.

지침이나 지시는 각 내용에 있어 법원의 판결과 상이하거나 모순되더라도 행정기관 운영에 있어서는 우선적으로 적용된다. 문제는 이로 인해 발생한다.

올해 초 우리 사무소는 새벽 출근 중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가다가 차량이 전복돼 사망한 사건에 대한 산재처리를 수임하게 됐다. 통근재해에 대한 공단의 산재인정 기준은 매우 엄격했다. 지난해 12월16일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난 것에 대해 업무상재해로 판단하지 않았다. 즉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이 아닐 경우에는 산재로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에서 판단하는 산재인정기준과 상이한 것이었다.

대법원은 “버스 등 대중교통수단이 없는 출근시간대에 출근해야 하는 경매사가 자가용을 이용해 출근하던 중 사망한 사안에서, 출·퇴근의 방법과 경로의 선택이 사실상 망인에게 유보됐다고 볼 수 없고 출근 과정이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었다는 이유로 업무상재해로 인정된다”(2008. 3. 27 선고 2006두2022 판결)고 판시했다. 이런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하급심에서 비슷한 유형의 사건들이 업무상재해로 판단되고 있다.

공단은 지난해 12월17일에서야 ‘출퇴근 사고의 업무상재해 여부 판단 관련 업무지시’에서 기존의 태도를 변경해 위와 같은 법원 인정기준을 수용했다. 그 결과 해당 사건은 다행히 최근 공단에서 업무상재해로 승인됐다.

필자는 산재심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2년 동안 위와 동일한 사건들을 5건 이상 심의했다. 회의 때마다 산재보험법의 취지와 법원의 판례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항상 1대 6의 소수의견으로 무시됐다. 그렇다면 공단은 지침 변경 이후 기존의 잘못된 공단 인정기준으로 불승인됐던 사건에 대해 어떤 구제조치를 할까. 아쉽게도 아무런 조치도 없다. 지침이나 지시는 변경된 이후에만 원칙적으로 적용될 뿐이다.

공단 지침은 특정 분야에 대한 기준을 마련할 뿐만 아니라 기존의 기준을 변경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근로자가 운행하던 차량의 교통사고(출장 등)로 인해 업무상재해를 당했을 경우 피해자나 유족이 자동차보험회사에서 받은 ‘자기손해’에 해당하는 보험금은 산재보험급여에서 공제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0년부터 기준을 바꿔 자손보험금을 조정대상으로 판단하고 있다.

산재보험법 제정 이후 수십 년간 자손보험금은 조정대상이 아니라고 하다가 갑작스럽게 기준을 바꿔 불이익을 주고 있다. 공단의 기준이 틀렸다는 하급심 판결(울산지법 2013. 6. 20 선고 2012구합2836 판결)이 이미 나오고 있다.

공단의 지침과 지시는 책자로 4권 이상이 될 만큼 방대하다. 산재업무를 하다 보면, 공단 직원조차 해당 부분에 대한 지침과 지시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뿐만 아니라 공단의 지침·지시는 공개되지 않는다. 지침·지시의 설정과 그 변경 등에 대해 외부인들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래서 한 번 잘못된 지침은 수년간의 법적 쟁송을 통한 판례가 축적된 이후에도 바뀔까 말까 한다.

혹자는 소송을 제기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공단의 불승인처분에 대해 소송을 하는 비율은 100명에 한 명도 안 된다. 많은 비용·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공단이 설정한 지침·지시에 대한 감시와 문제제기가 필요하고 중요한 이유다. 그렇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산재노동자와 유족에게 전가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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