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가 달아오르면서 정치권이 최근 잇따라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야권의 공약이 눈에 띈다. 무상버스와 생활임금제도에 관심이 쏠린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 1일 지방선거에서 생활임금제도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것을 공약했다. 통합진보당도 지방선거에 출마할 후보들의 핵심공약으로 생활임금제도 도입을 내세웠다. 노동계도 이런 공약에 호의적이다. 한국노총은 산하 조직에 6·4 지방선거에서 생활임금제도를 홍보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민주노총도 이런 분위기는 마찬가지다.

생활임금제도는 노동자들의 적정소득을 보장하는 제도다. 최소한 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고려해 임금을 책정한다. 최저임금보다 높은 수준에서 임금이 결정된다. 미국과 영국의 지방자치단체가 생활임금 도입에 적극적이며, 역사도 오래됐다. 대개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생활임금을 제정했다. 미국은 약 150여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 성북구와 노원구가 지난해부터 생활임금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자치단체장이 행정명령을 통해 생활임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올해 최저임금(시급 5천210원)보다 31% 높은 수준의 생활임금(시급 6천852원)이 지급됐다. 대상은 자치단체가 직접 고용하고 있는 청소·경비 등 시설관리 노동자들이다. 부천시는 지난해 12월 전국 최초로 생활임금조례를 제정했다. 자치단체장이 바뀔 경우 생활임금제도가 유명무실해질 위험도 상존하는데 부천시는 안전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부천 노사민정협의회는 오랜 논의 끝에 합의점을 찾았고, 부천시의회가 이를 조례로 제정했다. 생활임금조례를 제정한 미국의 사례와 유사한 방식이다. 적용대상은 부천시가 출자·출연한 기관의 직접 고용노동자들이다. 주로 청소·보조업무 노동자들이다. 야권은 이런 사례를 전국으로 확산하겠다고 약속한 셈이다.

야권이 민생공약으로 생활임금제도를 제시한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 현행 최저임금제도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1988년부터 최저임금제도를 시행해 왔지만 임금수준이 낮고, 사각지대가 넓다. 우리나라 최저임금의 수준은 노동자 평균임금의 38% 정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권장하는 노동자 평균임금의 50%에도 못 미친다. 법정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노동자만 지난해 기준으로 209만명에 달한다. 정부의 근로감독이 취약하고, 벌칙마저 약하니 최저임금제도는‘종이호랑이’가 된 셈이다. 생활임금은 이런 최저임금의 대체재는 아니다. 보완재에 가깝다. 낮은 최저임금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다. 지방자치단체는 모범사용자로서 거듭나고, 민간기업을 견인할 수 있는 명분을 갖게 된다.

이런 기대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되도록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생활임금조례를 제정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지역패권을 가진 정당들이 경쟁하고, 지방자치단체도 그에 따라 나눠지는 구도에서는 어려움이 예상된다. 경기도의 경우 민주당의 발의로 도의회가 생활임금조례를 통과시켰지만 김문수 도지사의 거부권 행사로 시행이 무산됐다. 만약 일부 자치단체에 국한돼 생활임금조례가 제정되면 되레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지역별 차등임금으로 굳어질 수 있다. 생활임금조례가 없는 지역으로 기업들이 사업장을 이전할 수도 있다. 이른바 ‘바닥으로의 경쟁’이다. 물론 부천시와 서울시의 노원구·성북구 사례를 보면 생활임금 도입에 따른 투입예산은 미미하다. 기껏해야 2억원 이하의 추가예산이 책정됐다. 지방공기업이 직접 고용한 기간제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바닥으로의 경쟁은 기우일 수 있다.

이런 역효과를 막는 좋은 사례는 부천시의 경우다. 지역 노사정 협의기구에서 생활임금을 합의한다면 지방의회와 자치단체장의 정치성향에 덜 좌우되기 때문이다. 반면 자치단체장의 행정명령으로 생활임금 조례를 시행한 서울시 노원구와 성북구의 경우 자치단체장이 바뀔 경우 지속여부가 불확실할 수 있다. 생활임금은 자치단체장의 의지나 소신이 아니라 노사관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얘기다. 생활임금제도를 띄운 노동계가 적극 나서야 하는 까닭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최저임금 인상과 제도개선이다. 이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생활임금 도입은 의미가 없다. 물론 최저임금과 생활임금의 산정기준과 계산방식은 차이가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생활임금의 기준선은 최저임금이다. 이달부터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논의를 시작한다. 오는 6월 말에 내년 최저임금이 결정될 예정이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는 최저임금의 산정기준에 대한 개선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기류라면 생활임금제도에 대한 관심 이상으로 최저임금에도 전력을 쏟아야 된다. 그렇다면 생활임금제도 도입과 최저임금 인상 및 제도개선 논의는 병행하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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